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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08n] 격려 공동체 (히 10:22-25)

20170108n

히 10:22-25

격려 공동체


[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23]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24]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25]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교회를 헬라말로는 <에클레시아>라고 합니다. 이 말은 불러냄을 받은 무리라는 뜻입니다. 독일말로는 게마인데(Gemeinde)라고 공동체라는 뜻입니다. 우리말로는 한자말로 가르칠 교(敎)자를 써서 교회라고 합니다. 라틴 교부들은 교회를 코무니오 상토룸(communio sanctorum), 교제 공동체, 격려 공동체라는 뜻입니다. 24절입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교회는 바로 이러한 공동체입니다. 교회는 성도들이 서로 격려하는 공동체입니다. 옛날 광야생활 때의 이스라엘 백성 숫자가 대략 200만 명으로 추정합니다. 성인 남성이 출애굽할 때 60만이었으니, 여성과 아이를 합하면 200만 정도로 추정합니다. 그러니 이 모든 사람을 모세 혼자 격려할 수는 없었습니다. 백성끼리 서로 격려한 겁니다. 그러므로 당시 이스라엘 공동체는 격려 공동체였습니다. 애굽으로부터 불러냄을 받은 격려 공동체였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집니다. 우리말로 교회는 배움의 공동체일뿐 아니라 격려 공동체입니다. 세상살이뿐 아니라 신앙생활도 만만치 않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에 은혜만 있는 건 아닙니다. 시험과 아픔이 있습니다. 자칫하면 상처받고 실족하기 쉬운 곳이 교회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더욱 격려가 필요합니다. 주님의 제자를 사도라 하고, 사도의 제자를 교부라고 합니다만, 터툴리안이라는 교부가 있습니다. 그는 교회를 노아의 방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노아의 방주로 세상을 구한 것처럼 마지막 날에는 교회를 통해 구원한다는 것입니다. 노아의 방주에는 노아의 가족과 많은 동물이 타고 있었습니다. 거기에는 하늘로 향한 작은 창 하나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노아와 동물들이 1년 이상 살았던 겁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공기가 탁하고, 시끄럽고 혼잡했겠습니까? 그 노아의 방주가 갑갑하다고 거기서 나왔다면 수장되었을 겁니다. 교회도 그와 똑같다는 겁니다. 때로는 냄새도 나고 시끄러운 소리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게 다 우리에게 상처와 아픔이 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교회를 떠날 수 없습니다. 교회야 말로 이 마지막 시대의 유일한 구원의 방주요 방편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든 이 안에서 견뎌야 합니다. 그래서 꼭 필요한 게 격려입니다. 서로 돌아보며 위로하고 격려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코무니오 상토룸, 격려 공동체입니다. 


교회가 이렇게 보다 확실한 격려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선 열심히 모여야 한다고 합니다. 25절입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여기서 권한다는 말씀이 격려한다는 의미입니다. 잘 격려하고 위로해서 어떻게든 그날이 가까움을 올수록, 여러 가지 시대적 징후가 주님 재림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말할수록 더욱 그리하자는 겁니다. 종말로 갈수록 모이기를 폐하는 습관이 더욱 심해질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그 습관을 따라가도 너희는 서로 격려하고 권해서 더 열심히 모이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마지막 시대의 유일한 구원의 방주이기에 절대 모이기를 폐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현실은 마지막으로 갈수록 점점 더 모이지 않습니다. 더 열심히 모이기는커녕 더 안 모이는 추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서로 격려하며 열심히 모이고 있을 때 주님이 오신다면 얼마나 복 되겠습니까? 


교회에 모여서 반드시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사실 우리가 교회에 열심히 모이는 이유는 교회에서 주님을 뵙기 위해서입니다. 서로 격려하면서 모여 예배를 하는 이유는 주님을 뵙기 위해서입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주님은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거기 함께 있다고 하셨습니다. 신자들은 반드시 주님의 격려를 체험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무 개념 없이 맹목적으로 교회에 나오는 게 아닙니다. 무엇보다 주님을 뵙기 위해서 교회에 나오는 겁니다. 주님의 격려를 체험하기 위해 우리는 모입니다. 말씀을 통해, 기도를 통해,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체험하고 힘을 얻기 위해 우리는 교회에 나옵니다. 우리가 교회에 와서 예배를 하면서도 우리 가슴이 공허하면 그것은 문제가 있는 겁니다. 비록 소수가 모였을지라도 거기에 주님이 함께하십니다. 그런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럴 때 소위 은혜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우리는 형제를 만나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주님의 격려뿐 아니라 형제의 격려도 필요합니다. 마치 노아의 여덟 식구가 방주 안에서 서로 격려하며 1년 이상을 잘 버틴 것처럼 말입니다. 요즘은 점점 사람들이 교회에 나와서 형제 만나는 일을 기피합니다. 몰래 와서 예배만 드리고, 겨우 주님께만 눈도장 찍고 달아나듯 합니다. 요즘은 숨어 예배드리기 좋은 큰 교회에 잘 갑니다. 거기에는 익명성이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교회에 나온 이상 그 사람은 공동체의 일원입니다. 우리는 모두 공동 운명체가 된 겁니다. 그러므로 형제를 기피할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만나야 합니다. 끝까지 객이나 고립을 자초하는 것은 신앙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남의 격려할 생각도 격려를 받을 생각도 없다고 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열심히 교회에 모이되 마지막 시대의 최후 방주인 교회에서 주님도 만날뿐 아니라 형제도 만나서 올해는 주님의 위로와 격려 체험도 하시고, 성도간에도 아름다운 격려 경험도 많이 성취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올해가 가장 아름답고 은혜로운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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