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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겨울이 왔으면, 어찌 봄이 멀었으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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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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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span>고 함석헌 선생이 &lt;슬프면서도 녹아드는 혼의 기도이자, 나를 몇 번이고 다시 일으켜 세워준 시&gt;라고 평했던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lt;퍼시 비시 셀리&gt;(Percy Bysshe Shelley, 1792-1822)의 &lt;서풍에 부치는 노래&gt;는 찬바람이 불어 모든 것이 죽은 듯 앙상하게 얼어붙은 자신의 삶을 슬퍼합니다. &lt;기껏 웃어본다는 그 웃음의 밑바닥에는 고통이 도사렸고, 한껏 기쁨을 부르는 노래 속에도 언제나 슬픔이 깔려 있네.&gt; 그는 자신의 삶을 &lt;인생의 가시밭에 엎드려 피 흘리는 아픔&gt;이라며 &lt;오, 거센 서풍이여, 마치 마법사에게 쫓기는 유령의 떼와도 같이 죽은 잎사귀들이 다투어 대지에 흩어지누나&gt;하고 고뇌하다 멀리서 오는 봄을 앞당겨 보며 서풍을 향해 이렇게 노래합니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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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span> </span><span>&lt;거센 정신이여, 시든 나뭇잎들은 멀리 날려버리고 다시 새 잎으로 갈아 입으라 꺼지지 않은 아궁이에서 재와 불꽃을 날리듯 내 입술을 빌어 예언의 나팔이 되어다오. 오, 바람이여!&gt;</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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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span>독일 유학시절 알프스의 고지 쉴트호른에 올라 강풍에 쓸려 모두 비스듬히 누워있는 겨울나무들의 장관을 본 적이 있습니다. 눈은 무겁게 나무들을 덮었고 거센 바람은 끊임없이 앙상한 가지들을 흔들어댔습니다. 저는 그때 저 나무들이 과연 내년 봄 다시 잎을 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는데, 그러나 나무는 그게 어디에 있든 다 나름 겨울을 대비하고 봄을 준비합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푸르던 잎사귀에 붉고 노란 물이 들기 시작하는데 그것은 겨울을 나기 위해 모든 영양분을 안으로 빨아들이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혹독한 겨울을 이겨내기 위해 거추장스런 잎들은 서풍에 날려버리고 오직 내실화를 꾀하는 겁니다. 그래서 겨울에는 죽은 듯 눈 속에 파묻혀 있던 나무도 봄이 되면 다시 그 두꺼운 목피를 뚫고 마치 기적과도 같은 새 생명의 움을 틔우는 겁니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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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span>우리 인생에도 밤이 있고 겨울이 있습니다. 그런데 밤이 지나면 반드시 낮이 오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음을 믿는 사람은 다가온 밤이나 겨울에 쓰러져 죽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진 생활고나 마음의 극심한 고통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을 봅니다. 그들은 아마도 지금의 밤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절망감 때문에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일 겁니다. 그러나 이 혹독한 겨울이 지나면 머지않아 봄이 다시 온다고 믿는 사람은 절대 그러질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밤을 새 날을 맞기 위해 모든 더럽고 추한 악습들을 털어버리는 기회로 삼습니다. 마치 나무들이 서풍을 이용해 모든 낡은 잎들을 날려버리듯이 지혜로운 사람은 역경에 처했을 때 그걸 자신의 삶의 장애물들을 말끔히 정리하는 계기로 만듭니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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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span>분명 우리는 지금 위기 속에 있습니다. 나라가 그렇고, 개인과 세계가 그렇습니다. 지금이 겨울이라면 엄동설한이고, 밤이라면 진통과 전환의 칠흑 같은 한밤중입니다. 이런 때는 자칫 모든 걸 포기하거나 체념하게 하여 우리 모두를 허무주의나 냉소주의에 빠지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그리스도인의 참모습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삶을 바라보는 눈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가령 어떤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이 가까워질수록 기뻐할 것입니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은 약속의 날이 가까워질수록 만났다 다시 헤어질 날도 그만큼 가까워진다는 생각 때문에 슬퍼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밤이란 지나간 시간에서 볼 때는 점점 더 깊어가는 것이지만 다가올 새벽을 기점으로 보면 그만큼 아침이나 새 날에 가까워진 것이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 내일을 기점으로 오늘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지금은 비록 모든 게 다 막힌 것 같고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움이 짙은 것 같아도 이 암흑의 틈새로 비춰오는 내일의 여명을 앞당겨 봄으로써 희망을 숨 쉬고 사는 족속들입니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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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3"><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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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span>&lt;셀리&gt;의 &lt;서풍에 부치는 노래&gt;는 이런 외침으로 끝납니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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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n><!-- paragraph:p0009 -->
<p class="p2"><span>&lt;겨울이 왔으면, 어찌 봄이 멀었으리요?&gt;(If winter comes, can spring be far behind?)</span></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