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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20170101m] 곧 닭이 울더라 (마 26:6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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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20170101m</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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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마 26:69-75</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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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곧 닭이 울더라</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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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69] 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여종이 나아와 이르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70]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71] 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여종이 그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72]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73]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74]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 [75]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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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이 무슨 비극이고 운명의 장난입니까? 닭띠해가 막 시작되려는 참인데 닭들이 모조리 생매장을 당하고 있습니다. 지금 북한 인구가 약 2000만인데, 그것보다 훨씬 많은 3000만 마리가 살처분을 당했고, 지금도 생매장을 당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끔찍한 노릇입니다. 탄핵 정국으로 초토화된 현 우리 사회의 자화상과 함께 정유년 새해 닭들의 무참한 살처분이 우리 마음을 무겁게 합니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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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성서적으로 보면 닭은 의미가 깊고 복음적입니다. 주님이 제자들과 최후만찬을 드시며 오늘밤 너희가 다 나를 버린다고 하십니다. 그때 베드로가 말하기를, 본문 앞 33절을 보면 ‘결코 버리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합니다. 주님이 베드로에게 오늘밤 닭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베드로는 주님과 함께 죽을지언정 주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겟세마네에서 체포된 주님이 대제사장에게로 잡혀 가 거기 뜰에서 온갖 조롱을 당했습니다. 67절 이하입니다. “[67] 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어떤 사람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68] 이르되 그리스도야 우리에게 선지자 노릇을 하라 너를 친 자가 누구냐 하더라.” 이때 베드로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58절 말씀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그 결말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 하인들과 함께 앉아 있더라.” 69절 이하를 보십시오. “69] 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여종이 나아와 이르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70]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베드로의 주님 부인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71절 이하입니다. “[71] 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여종이 그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72]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심지어 나중에는 저주까지 하며 부인합니다. 74절입니다.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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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이렇게 세 번을 주님을 부인하고 저주까지 하자 닭이 웁니다. 주님이 최후만찬에서 예고하신 그대로입니다. 75절을 보십시오.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따라서 닭소리는 회개를 뜻합니다. 회개를 촉구하는 소리입니다. 베드로를 보십시오. 닭소리를 듣고 비로소 주님 말씀이 생각나 통곡합니다. 이렇듯 닭소리는 통곡을 뜻합니다. 닭소리를 기점으로 베드로의 모습이 나뉩니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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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유럽의 교회, 특히 독일 교회는 성당이나 개신교나 교회 첨탑에 십자가가 아니라 닭 문양을 올려놓습니다. 십자가보다 닭이 올라가 있는 교회가 많습니다. 예루살렘에도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하고 통곡한 자리에 베드로 통곡 기념교회, 갈리칸투가 있습니다. 갈리칸투는 라틴말로 닭이 운다는 뜻입니다. 거기에도 첨탑에 수탉이 올라가 있습니다. 베드로가 그 닭소리를 듣고 회개했기 때문입니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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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교회는 회개한 죄인들의 공동체입니다. 교회와 세상이 같은 점은 교회도 세상도 다 죄인이라는 점입니다. 다른 점은 교회는 회개한 죄인들의 공동체, 세상은 회개하지 않은 죄인들의 무리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 신앙에서 회개를 강조하기 위해 첨탑에 닭문양을 올려놓는 겁니다. 베드로의 통회를 상기하라는 겁니다. 교회는 회개한 죄인들의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올해도 회개하고 통회하는 데 인색하지 맙시다. 올해가 닭의 해라는 것은 회개를 촉구하시는 주님의 계시라고 믿읍시다. 회개하고 통회하는 데 용감합시다. 베드로와 가룟 유다의 차이가 무엇일까요? 물론 가룟 유다는 주님을 배신하고 또 팔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도 만만치 않습니다. 세 번씩이나 주님을 부인하고 저주까지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 두 사람은 갈립니다. 베드로는 닭소리를 듣고 즉각 회개했는데, 가룟 유다는 회개치 않고 목 매어 자살합니다. 가룟 유다도 회개했다면 저주 받았겠습니까? 베드로는 회개했기에 위대한 사도로 남았습니다. 가룟 유다는 회개하지 않았기에, 단테의 신곡에 따르면 가장 깊은 지옥인 제9지옥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처럼 회개합시다. 주님의 용서와 사죄의 은총을 누립시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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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닭소리는 치유와 회복을 뜻합니다. 요한복음 21장을 보면, 부활하신 주님이 낙향한 제자들을 찾아 갈릴리로 가시는 대목이 나옵니다. 베드로를 위시한 몇몇 제자들이 어부로 돌아가 밤새도록 그물질을 하지만 소득이 없습니다. 그때 주님이 나타나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고 합니다. 그러자 그물을 끌어올릴 수도 없을 만큼 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주님은 이미 숯불에 고기를 구우시면서 ‘와서 조반을 먹으라’고 하십니다. 식사를 마치고, 주님이 베드로에게 묻습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론 요한복음 21장에는 없습니다만, 그때도 가까운 어촌 마을에서 새벽닭 우는 소리가 들렸을 겁니다. 요한복음 21장 4절을 보면 그때가 날이 새어갈 때라고 했습니다. 그때 주님이 제자들을 만나시고, 베드로에게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신 겁니다. 대제사장의 집 숯불가에서 주님을 세 번 부인할 때도 닭소리가 들렸고, 갈릴리 호숫가에서 주님이 나를 사랑하느냐고 주님이 물으실 때도 닭소리가 들렸을 겁니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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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이미 베드로가 부활하신 주님을 예루살렘에서 만났습니다만, 그는 좀처럼 주님을 부인한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는 낙향한 겁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자신에 대한 상실감 때문에 그는 낙향한 겁니다. 주님도 그 사실을 알고 그를 치료하시기 위해 이른 새벽에 그를 찾아오셔서 숯불을 피우고 세 번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며 그의 상처를 어루만집니다. 그때 가까운 마을에서 새벽닭 우는 소리가 들려왔을 겁니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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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닭소리는 주님이 우리를 치유하시는 은혜의 소리입니다. 베드로를 보면, 그 이후에 불같이 뜨겁게 살다가 네로 황제에게 순교를 합니다. 거꾸로 십자가에 달려서 말입니다. 부디 닭의 해인 새해, 여러분의 모든 아픔과 마음의 상처가 다 치유되고 회복되는 큰 은혜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우리 사회와 나라도 상처의 수습과 회복이 있기를 기원합니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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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닭소리는 새벽을 깨우는 소리입니다. 새 아침을 알리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새 시대를 여는 소리입니다. 닭은 새벽을 알리는 짐승입니다. 옛날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닭소리를 듣고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닭소리는 아침을 여는 소리입니다. 닭이 울면 마을에 내려왔던 산짐승도 돌아가고, 어둠 속에 다니던 악한 귀신도 닭소리를 듣고 물러간다고 했습니다. 초대교회 우리 한국교회는 닭소리를 듣고 새벽종을 울렸습니다. 그렇게 새벽기도회를 열며 하루를 시작한 겁니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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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이 새벽을 알리는 닭소리와 관련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로마서 13장 11절 이하입니다. “[11]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12]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13]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14]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자다가 깰 때가 되었고,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다는 것은 정확히 닭소리가 들리는 때라는 겁니다. 그러니 닭소리가 들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13절을 다시 보십시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이것들은 다 밤에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그런데 꼬끼오하는 닭소리가 들리면 낮이 가까웠기에 모든 밤의 문화를 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고 제대로 살라는 것입니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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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올해가 닭의 해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이제 우리 앞에서 모든 어둠이 물러가고 새벽이 온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희망과 기대를 갖고 새 날을 맞을 채비를 해야 합니다. 닭이 우는데도 여전히 밤의 문화를 즐길 것이 아니라 건강하고 건전하고 반듯하게 낮의 사람, 아침을 맞는 사람처럼 행하라는 것입니다. 올해는 방탕하거나 술 취하거나 호색하지 마시고, 남과 다투지도 마십시오. 그것은 다 지나 간 밤에 하던 것들입니다. 빛의 갑옷을 입고 보다 경건하게 삽시다. 육신의 일뿐 아니라 신앙적이고 영적이며 경건한 일에도 관심을 쏟읍시다. 그래서 2017년이 더욱 은혜로운 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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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br></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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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br></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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