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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20161218m] 성탄의 신비 (눅 2: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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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20161218m</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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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눅 2:8-14</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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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성탄의 신비</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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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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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성탄은 우리가 감당하기 벅찬 신비입니다. 그 자체가 역사상 전무후무한 하나님의 기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오늘은 주님의 성탄에 얽힌 신비의 베일을 조금이나마 벗겨보겠습니다.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어떤 교훈이 있는지 확인해 보겠습니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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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우선 예수님의 탄생입니다. 우리가 역사를 주님의 탄생을 기점으로 둘로 나눕니다. 주전과 주후입니다. BC는 before christ입니다. 주후가 있습니다. AD라고 하는데, 이건 라틴말입니다. anno Domini입니다. 주님 이후라는 뜻입니다. 왜 주님은 2016년 전에 탄생하셨을까?</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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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그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족보는 마태복음 1장과 누가복음 3장에 나옵니다.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주님의 족보를 살펴보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고 합니다. 이에 따르면 주님은 아브라함의 42대손입니다. 마태복음은 주님의 42대손을 이렇게 나누어 놓습니다. 17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까지 열네 대요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네 대더라.” 왜 이렇게 구획했을까요? 14대로 묶어 셋으로 나눈 이유가 무엇일까요? 성경이 말씀하는 완전수는 7입니다. 그런데 14는 완전수 7이 두 번이나 겹쳐 만들어진 수입니다. 그것도 세 번 반복됩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한 번은 억울하고, 두 번은 아쉽고, 적어도 세 번은 해야 미련이 없습니다. 세 번은 해야 누구나 그 결과에 승복합니다. 유대 사람들도 삼세판을 좋아합니다. 마태복음의 족보를 보면 7이 두 번 겹치고, 그것도 세 번이나 겹친 후에 주님의 성탄이 이뤄집니다. 주님의 성탄일이 유사 이래 가장 귀한 날이라는 겁니다. 주님은 결코 우연히 성탄하신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용의주도한 역사적 플랜에 의해 성탄하신 겁니다. 이것을 전하려고 주님의 성탄의 족보를 14씩 세 번으로 나눠놓은 겁니다. 누가복음 3장에도 대수가 나옵니다. 모두 세어보면 77이 나옵니다. 이런 걸 우연으로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주님의 성탄은 하나님의 구속사적 계획에 따라 한 치의 오차 없이 집행되고 성사되었습니다. 그러니 주님의 성탄이 그 얼마나 신비하고 아름다운 사건입니까.</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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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다음은 성탄의 장소입니다. 성탄이 발생한 곳은 잘 아시는 대로 베들레헴입니다. 본문 11절을 보십시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여기 나오는 다윗의 동네가 베들레헴입니다. 2장 4절 이하를 보십시오. “[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베들레헴은 이새의 고향이자 다윗이 태어난 곳입니다. 이곳은 다윗 후손들의 집성촌이요 원적지입니다. 그런데 요셉이 다윗의 후손이었기에 마침 나라에서 호적령이 내려 호적하기 위해 만삭의 마리아를 데리고 베들레헴까지 갔다가 거기서 출산하게 된 겁니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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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그런데 실은 이것도 우연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연출하신 정교한 구속사적 사건이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700년 전에 기록된 구약 미가서 예언에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5장 2절입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이 얼마나 정확한 예언입니까?</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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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이뿐만 아니라 베들레헴은 벧과 레헴의 결합입니다. 벧은 집이고, 레헴은 떡입니다. 떡집입니다. 주님이 당신 자신을 생명의 떡이라고 하십니다. 요한복음 6장 35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생명의 떡이신 주님이 떡집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으니 이 얼마나 어울립니까? 우연이 아니라 필연입니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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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주님이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것까진 좋은데, 실제 주님이 탄생하신 장소는 떡집이라는 넉넉하고도 훈훈한 지명과는 달리 구차한 외양간에서, 여물통 구유에서 탄생하셨습니다. 말이 좋아 떡집이지 실제로는 가장 누추하고 구차한 짐승들의 처소에서 탄생하셨습니다. 왜 그럴까요?</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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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표면적으로는 산통이 급박해 여관의 외양간에서 출산한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만, 이것 또한 우연을 가장한 필연입니다. 그 외양간 탄생을 통해 하나님이 구속사적 계시를 연출하셨습니다. 어째서 그럴까요? 세례요한이 처음 주님을 뵙고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다’고 했습니다. 일면식도 없던 주님을 보자마자 세례요한은 주님을 가리켜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처음부터 우리를 대신해 희생되실 어린양으로 오셨습니다. 유월절 희생양으로 오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중요한 정체성입니다. 그렇다면 어린양이 태어날 장소가 어디겠습니까? 양이 안방에서 태어나겠습니까? 당연히 양이니까 외양간에서 태어나야 합니다. 이처럼 외양간 탄생조차도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어린양의 정체성에 맞게 오신 겁니다. 주님은 한마디로 완벽한 처소에서 탄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희생양으로 외양간에서 탄생하심으로써 그때 이미 자신의 죽음까지도 계시하셨습니다. 자신의 존재의 비밀까지 계시하신 겁니다. 유월절을 기해 대속하기 위한 양의 숙명으로 주님이 오심을 나타내셨다는 겁니다. 이것을 우리는 놓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주님의 성탄에서 이미 주님의 죽음까지도 봐야 합니다. 그래야만 주님의 죽음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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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주님이 어떤 모습으로 성탄하셨습니까? 본문 12절입니다.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주님은 강보에 싸인 아기로 오셨습니다. 왜 아기로 오십니까? 어차피 주님은 요셉과 마리아의 정상적인 부부관계에 의해 오신 분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은 초자연적으로 오셨습니다. 최초의 인간 아담을 보십시오. 아담은 이 세상에 몇 살짜리로 태어났습니까? 1살로 태어난 게 아니라 청년으로 태어났습니다. 미켈란젤로가 1510년에 그린 천지창조의 연작 가운데 아담의 창조가 있습니다. 미켈란젤로의 그림을 보면 아담은 청년입니다. 아담은 창조된 즉시 에덴동산을 관리하고 하와를 아내로 맞았으니 20대 초중반은 되었을 겁니다. 사람이 처음 세상에 태어나면 누구나 한 살 두 살이라는 편견을 버리십시오. 하나님은 원하시면 얼마든지 청년으로 태어나게 하실 수도 있습니다. 물론 과학자들은 지금 막 태어난 아담을 두고도 20년 전에 태어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과학적 결론일 뿐이지 실체적 진실은 아닙니다. 그게 과학의 한계입니다. 하나님은 분명 오늘 20세 된 아담을 창조하셨는데, 과학은 아담의 나이테를 보라고 합니다. 그래서 신자들은 참으로 난감합니다. 아직 출생신고서의 잉크도 마르지 않았는데, 과학자들은 20년 전에 태어났다고 하면서 오늘 탄생을 믿는 우리를 무시합니다. 이것이 신앙과 과학의 차이입니다. 과학자들은 우주의 나이테를 보고 우주의 나이를 말합니다. 그렇다고 그게 진리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신앙인도 겸손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몇 살짜리 우주를 창조하셨는지 알 수 없습니다. 금방 5분 전에 창조했는데 아담이 20살이 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기 예수가 아니라 얼마든지 2-30대의 메시아로 우리 앞에 나타나게 하실 수도 있었습니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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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그러면 왜 굳이 예수님이 아기로 오셨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우리의 진정한 선구자가 되게 하시기 위해섭니다. 당신이 친히 인생의 밑바닥을 체험하기 위해서입니다. 주님은 인생의 밑바닥을 친히 경험하셨기에 우리의 아픔과 눈물과 속사정을 속속들이 아십니다. 지금도 주님은 우리의 탄원을 들으시고 우리의 눈높이에서 우리를 이해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모든 사정을 주님은 다 공감하십니다. 주님은 가장 비천하고 낮은 자리에서 살아보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누구보다 더 우리의 눈물을 잘 아십니다. 그래서 주님만이 유일한 우리의 메시아이십니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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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주님의 성탄이야 말로 얼마나 신비하고 놀랍고 복된 사건입니까? 절대 건성으로 성탄절을 맞으시면 안 됩니다. 성탄의 신비와 비밀을 깊이 묵상하셔서 다음주일 성탄하실 주님께 더 많은 기쁨과 감사와 영광을 바칩시다. 여러분의 가정에 성탄의 아름다운 복이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span><spa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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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br></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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