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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20161204n] 요셉과 성탄 (마 1: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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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20141204n</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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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마 1:18-25</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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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요셉과 성탄</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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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19]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22]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24]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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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저는 성탄절과 관련해서 늘 요셉의 위상에 대해 다소 불만이 있습니다. 요셉의 존재가 너무 과소평가되었다는 겁니다. 마리아와는 아예 비교도 안 되고, 심지어 동방박사나 목자들만큼도 주목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리아가 요셉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성탄에 요셉이 이렇다 할 역할을 못했다는 겁니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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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족보상으로는 엄연히 주님이 다윗 자손 요셉의 아들입니다. 요셉만큼 주님의 성탄을 적극적으로 직접적으로 도운 사람도 없습니다. 본문 24절 이하입니다. “[24]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25]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 만일 그때 요셉이 천사의 현몽을 무시하고 마리아를 데려 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신명기 22장에 보면 마리아는 돌로 쳐 죽임을 당합니다. 요셉은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치 아니했다고 합니다. 요셉은 결혼하고도 1년이 넘도록 첫날밤을 갖지 못한 불행한 신랑이었습니다. 이렇게 요셉은 마리아를 보호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주님의 성탄을 성사시킵니다. 그는 일등공신입니다. 예수님 탄생 후에도 애굽까지 가면서 아이를 지킵니다. 자기는 드러내지 않으면서 아들과 아내를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존재로 만든 사람이 요셉입니다. 요셉이 성탄을 도왔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기여했다는 의미입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요셉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실 자의 성탄을 도왔습니다. 요셉 외에 누가 그런 일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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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그런데도 사람들은 요셉에 대해 소홀합니다. 제대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왜 요셉을 택하셨을까요? 왕이나 제사장 또는 부자를 택하지 않고, 왜 하필이면 시골 목수 요셉을 택하셔서 주님의 성탄을 돕게 하셨을까요?</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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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요셉은 누구보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사람입니다. 19절입니다.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여기에 요셉의 인품이 그대로 드러나있습니다. 그는 비록 가난한 목수였지만, 다윗의 후손으로서 착하고 의로운 청년이었습니다. 당시 그는 마리아와 약혼하고 결혼 날만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는데, 망측한 소문이 들립니다. 약혼녀가 임신했다는 소문입니다. 결혼해서 자기의 소중한 아이를 낳아야 할 약혼녀가 남의 아이를 뱄다는 겁니다. 그때의 당혹감, 요셉이 느꼈을 배신감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는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요셉은 마리아를 사랑했기에 소문을 듣고 고뇌가 컸던 겁니다. 마침내 그는 일을 크게 만들지 말고 조용히 끊기로 합니다. 일을 크게 벌이면 마리아가 다칩니다.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습니다. 요셉은 마리아의 부정을 무조건 묵과하기엔 너무도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흥분하며 성토하며 보복하기에도 너무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끊기로 한 겁니다. 얼마나 냉정하면서도 온유합니까? 얼마나 공의로우면서도 남을 배려하는 사람입니까? 사랑하지만 결코 부정은 용납할 수 없었고, 응분의 책임을 물으면서도 결코 파멸하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이게 요셉의 인품이었습니다. 이게 그대로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것입니다. 하나님이야말로 사랑의 하나님이시면서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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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사실 요셉의 이런 인품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택해서 예수의 육신의 아버지가 되게 하신 겁니다. 어느 시대나 하나님은 늘 의로운 자를 불러서 쓰십시다. 당신의 구속사에 참여시킵니다. 하나님이 의로우셔서 그렇습니다. 따라서 의로운 사람이었던 요셉을 당시에 하나님이 택하셨다는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한 나라와 사회의 운명도 의로운 자를 통해 결정하십니다. 소돔과 고모라도 의인 10명이 없어 망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요셉과 같은 사람 10명만 있어도 그 나라, 그 사회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 의인 10명을 통해 그 나라와 사회를 구하십니다. 부디 의로움과 사랑이라는 하나님의 성품을 닮읍시다. 그래서 우리도 금년 성탄절에는 요셉처럼 주님의 성탄을 돕고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동참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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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요셉은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24절입니다.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요셉은 원래 소문 내지 않고 가만히 끊기로 작정했습니다만, 지난 밤에 천사가 나타나 요셉에게 아내를 데려오라고 현몽했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잉태했음을 알려줬기 때문입니다. 천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자 요셉은 일말의 회의나 주저도 없이 일어나자마자 꿈의 분부대로 행합니다. 하나님이 주님의 성탄을 위해 택한 요셉의 가장 돋보이는 덕목입니다. 순종입니다.</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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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순교란 일제 강점기나 공산치하의 사건만이 아닙니다. 지금도 어떤 희생이나 아픔에도 불구하고 순종하여 나는 내 길을 가겠다고 하면 그게 곧 순교입니다. 신앙이란 무엇일까요? 교회 나와 헌금 내고 돌아가는 게 아니라 주님의 요구나 명령에 순종하는 겁니다. 그렇다고 다 용납 되기에 순종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어떤 것은 도저히 수용하기 어려운 것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순종하는 겁니다. 그게 주님의 분부라는 이유 하나 만으로 복종하는 겁니다. 모순처럼 보이고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언제나 나의 부족함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이것을 맹종이라 하지만, 우리는 이것을 신앙이라고 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동정녀가 애를 뱄다는 게 이성적으로 수용되십니까? 그럼에도 그게 하나님의 말씀이었기에 그냥 용납하고 순종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신비를 수용하기에는 벅차다고 하면서 순종한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해 보면, 요셉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은 가혹했습니다. 임신한 약혼녀를 버리지 말고 아내로 맞으라고 합니다. 집으로 데려온 이후에도 부부관계를 금합니다. 법적으로는 자기의 맏아들임에도 아버지가 아들 이름을 못 짓습니다. 예수라 하라고 명령하십니다. 자기 아들 이름임에도 아버지가 아들의 이름을 짓지 못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릅니다. 그는 초인적으로 하나님의 모든 말씀에 순종합니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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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세상 모든 종교는 신을 잘 달래고 감동시켜 내 뜻, 소원을 이루는 것이지만, 기독교는 그 반대라고 했습니다. 내 뜻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자는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칼 바르트라는 신학자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최대 위기는 말씀에 대한 불순종으로 진단했습니다. 요즘은 모두 자기 뜻을 하나님이 승인해 주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내 원대로 마시고 아버지 뜻대로 하소서라는 시대는 가고, 아버지 뜻대로 마시고 내 원대로 하소서라는 시대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인간의 뜻에 하나님이 강요 받는 시대가 되었다고 진단했습니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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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요즘에 누가 요셉 같은 사람이 있습니까? 만이 요셉이 당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성탄이 성사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의 구원사역에 큰 차질이 오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므로 성탄절은 요셉의 순종이 연출한 인류 최대의 사건이었습니다. 따라서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각오가 없이는 지금도 누구나 주의 성탄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성탄 자체가 성사되지 못합니다. 마태복음 2장 3절입니다.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동방박사가 성탄 소식을 전하자 온 예루살렘이 소동합니다. 그럼에도 누구 하나 10km 떨어진 베들레헴으로 달려간 사람은 없었습니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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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span>이제 성탄절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의로움과 순종입니다. 요셉과 같은 자세, 믿음, 덕성이 필요합니다. 올해는 모두가 성탄하신 주님을 뵙고, 주님의 구원사역에 깊이 동참하는 복 있는 성도가 됩시다.</span><span> </span></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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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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