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04m] 가인의 표 (창 4: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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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4m
창 4:8-15
가인의 표
[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10]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11]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12]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13]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14]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유엔이 정한 세계 인권의 날이 금주 토요일입니다. 1948년 12월 10일이어서 그렇습니다. 우리 교단도 1989년부터 12월 첫째주일을 매년 인권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인권이 무엇입니까? 세계인권선언문 제1조는 “모든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로운 존재로 태어났고,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엄과 권리는 모두 똑같다. 사람에게는 이성과 양심이 있으므로 서로 상대방을 동료애의 정신으로 대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의 기본권이란 게 곧 인권입니다. 사람으로서의 존엄, 권위가 다 인권입니다. 그런데 인권은 신성불가침이란 겁니다. 누구도 함부로 침해할 수 없습니다. 가난한 자도, 부자도,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어린 아이도, 어른도, 서민도, 대통령도 인권에서는 누구나 똑같이 보호받고 인정받아야 합니다. 왜냐면 인권은 후천적이거나 경험적인 게 아니어서 그렇습니다. 인권은 국가가 주는 거나 유엔이 주는 게 아닙니다. 민주주의라는 사회 체제나 정치 체제가 주는 게 아닙니다. 그렇다고 교육이 보장해 주는 것도 아닙니다. 인권은 선험적입니다. 이미 엄마 뱃속에서 나올 때부터 갖고 태어나는 게 인권입니다. 그래서 원초적인 복이자 성스러운 겁니다.
인권의 신성불가침의 근거는 무엇일까요? 인권의 선험성이란 게 무슨 뜻입니까? 성서적 근거로는 창세기 1장 27절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이게 인권헌장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존엄하고 이미 태어날 때부터 사람만의 고유한 권리를 갖고 태어난다는 성서적 근거가 바로 이 구절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우주의 수많은 피조물 가운데 인간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인간만 이마고 데이(imago Dei),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그래서 인권은 선험적이라는 겁니다. 인간의 고유한 권위, 지위, 권세, 권능, 기본권이 인권입니다. 이 사실 때문에 인간은 존엄합니다.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개인도, 이데올로기도, 정치체제, 조직, 권력도 인권을 유린할 수 없습니다. 인권을 범한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형상성을 유린하는 것이고, 하나님에 대한 도전입니다.
시편 8편 5절입니다.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과장이 아니라 하나님보다 조금 부족한 존재들이 인간입니다. 엄연히 영화와 존귀로 관을 쓴 하나님의 형상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시편 8편 6절 이하입니다. “[6]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7] 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8]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지위입니다. 위에는 오직 하나님뿐이고, 인간 발 아래에는 만물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 형상 인간에게 만물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부여하신 권위와 권세입니다. 이것이 인권이요 그 본질입니다. 인간에게 보장된 하나님 형상으로서의 권리, 권세, 권능이 인권입니다. 그래서 인권은 신성불가침이란 것입니다.
그럼에도 과거 군사정권 때처럼 사람을 가두고, 고문하고, 일본군처럼 어린 소녀들을 잡아다가 성노예로 삼는다든가, 사람을 정치 수용소에 가둬서 학대하는 행위는 모두 인간의 고귀한 하나님의 형상성을 무자비하게 짓밟고 파괴하는 가공할 인권유린입니다. 우리는 남의 인권도 침해해서는 안 되지만, 자신의 인권도 스스로 해쳐서는 안 됩니다. 자학이나 자살은 스스로 자신의 인권을 짓밟는 못난 행위입니다.
형인 가인이 동생 아벨을 시기해 들로 불러내 쳐 죽이고 암매장을 합니다. 이게 인류 최초의 살인사건입니다. 창세기 4장 4절입니다.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이 구절을 통해 볼 때 아벨은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가인이 아벨을 쳐 죽입니다. 하나님이 아벨을 가인에게서 찾으시자 가인은 뻔뻔하게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냐며 철면피 인간을 드러냅니다.
오늘 본문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인류 최초의 살인자를 지나치게 편드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파렴치한 살인범은 혹독히 심판해 일벌백계해야 하는 게 우리 상식입니다. 그런데도 본문은 우리 생각과는 좀 다릅니다. 본문 14절 하반절 이하입니다.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 나가서 맞아 죽게 해야 맞는데, 살게 하십니다. 가인에게 하나님은 표를 주시면서 죽임을 면케 하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해석해야 옳을까요?
하나님이 가인에게 주신 표는 히브리말로 <오트>입니다. 살인자 가인에게 치명적인 징계보다 생명을 보장하는 표는 무엇을 뜻할까요? 수많은 학자와 주석가들이 이 표의 메시지를 해석하기 위해 애를 많이 썼습니다. 헤르만 헤세도 <데미안>에서 이 표에 대해 나름의 해석을 합니다. 히틀러도 가인의 표라는 말을 썼습니다. 히틀러는 다윗의 별을 저주의 표로 보았습니다. 이걸 가인의 표로 본 겁니다. 그는 살인자의 표, 저주의 표라고 해석한 겁니다. 히틀러는 예수를 죽였기에 하나님이 내리신 저주의 표로 다윗의 별을 해석한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가인에게 주신 표는 어떤 겁니까? 왕이 암행어사에게 내리는 마패 같은 겁니까?
하나님이 가인에게 주신 표는 가시적인 표가 아니라 죄인에게도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있다고 천명하신 인권 선언, 그 선언의 표였습니다. 비록 살인자라 할지라도 아무나 함부로 해쳐서는 안 된다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담은 표입니다. 동생 아벨을 무자비하게 살해함으로 인권을 말살하고 살인자가 됨으로써 자신의 인권도 무참히 짓밟은 가인이지만 하나님이 표를 주심으로써 그의 인권을 회복시켜 준 것입니다. 범죄하며 망가진 가인의 하나님 형상성을 복원 시켜 주신 겁니다. 그 상징적 표현이 하나님이 가인에게 표를 주셨다고 한 겁니다.
하나님은 누구도 살인자라고 해서 가인을 해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심지어는 그를 해치는 자에게는 벌을 7배나 더 내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가인이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살인자에게는 인권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살인자라 할지라도 인권을 유린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그를 해치는 자에게 벌을 7배나 더한다는 것은 절대 해치지 말라는 말입니다.
인권을 침해하는 사람은 벌을 7배나 받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성을 범하였기 때문입니다. 자식은 부모의 형상이기에 절대 머리털도 하나 베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게 결국 조상의 몸을 범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신체발부수지부모>라는 게 사실 그런 의미가 녹아 있습니다. 성경의 가르침도 이와 같습니다. 사람은 비록 살인자라 하더라도 사람인 한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성을 범한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절대로 남이나 자신의 인권을 유린해서는 안 됩니다.
살인을 저지를 자식을 가슴에 부둥켜안고 안타까움과 연민에 몸부림치는 어머니의 심정 같은 게 오늘 본문에 나오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죄의 벌은 받아야 합니다. 가인이 평생 유랑자가 된다는 게 벌입니다. 죄는 미워할지라도 인간은 죄를 범했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이기에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우리는 다 가인의 후손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표가 있습니다. 인권입니다. 비록 우리가 가인의 후예로 살지만, 누구도 우리를 함부로 범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인권이라는 표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가인에게 주신 표는 히틀러가 해석한 것처럼 살인자, 저주의 표, 누구나 해쳐도 좋다는 주홍글씨가 아닙니다. 절대 존중해야 한다는 은혜와 사랑과 구원의 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표, 인권을 소중히 여기시고 잘 지키십시오. 그래야 사람답게 살 수 있습니다. 나의 인권뿐 아니라 내 이웃의 인권을 소중히 여기며 삽시다. 그래야만 7배의 벌이 아니라 은혜와 복을 누리며 삽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어서 누구도 범할 수 없는 고귀한 인권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기억합시다. 늘 자신의 인권, 이웃의 인권을 살아서 복을 누리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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