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120m 수확불변의 법칙 (갈 6: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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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120m 추수감사주일
갈 6:6-10
수확불변의 법칙
[6]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7]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8]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10]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텔레비전 프로그램 가운데 인기 있던 연애불변의 법칙이란 게 있었습니다. 서로 아무리 사랑한다며 연애를 해도 더 나은 상대가 나타나면 안 넘어갈 사람이 없다는 게 남녀간의 연애에 적용된다는 게 그 오락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연애에만이 아니라 수확에도 불변의 법칙이 있습니다. 가을은 수확의 계절입니다. 수확은 우리만이 아니라 하나님께도 영광이 됩니다. 요한복음 15장을 보면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아버지께서도 영광을 받으신다고 합니다. 오늘은 이 법칙을 짚어봅니다.
수확의 제1법칙이 무엇입니까? 심은 대로 거둔다는 겁니다. 7절입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뿌린만큼 수확합니다. 이걸 인과의 법칙이라고 합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많이 심은 곳에 많은 수확이 있다는 법칙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것은 성경 이전의 자연의 순리입니다. 그럼에도 문제는 우리의 현실은 모두가 심은 대로 거둔다는 법칙을 비웃습니다. 심지도 않고 거두려고 하고, 심은 것보다 수십, 수백 배를 거두려고 합니다. 팥을 심어놓고 콩을 기대합니다. 그러니까 온갖 편법과 갑질이 동원됩니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불노소득, 일확천금을 노립니까? 도박, 사기 이런 것들은 다 수확불변의 제1원칙을 거스르는 것들입니다. 성경은 스스로 속이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않으신다는 겁니다. 창조의 순리를 거역하고 수확불변의 원리에 역행하는 건 자신을 속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도 기만하는 행위라는 겁니다. 개역개정 성경에서는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않으신다고 했는데, 개역성경은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어느 번역이든 속이다는 뜻입니다. 무엇이든 반드시 심은대로 거둔다는 수확불변의 법칙을 존중하십시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도 속고, 하나님을 기만하는 죄가 됩니다.
제2법칙은 육체를 위해 심는 사람은 썩어질 것을, 성령을 위해 심는 자는 영생을 거둔다는 겁니다. 8절입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성경에 따르면 사람은 두 종류입니다. 늘 육체를 위해 심는 사람과 성령을 위해 심는 자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육체를 위해 심는 자는 반드시 썩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해 심는 자는 썩지 않는 영생을 거둔다는 겁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육체를 위해 심는 자는 누구이며, 성령을 위해 심는 자는 누구입니까? 본문은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을 위한 것입니다. 성도 가운데도 이렇게 둘로 나뉜다는 겁니다.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의 나뉨이 아닙니다. 성경은 이걸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 영에 속한 그리스도인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면서 날마다 육신을 위해 심는 자도 있고, 성령을 위해심는 사람이 있다는 겁니다. 육을 위해 심는 사람들, 육적인 것만 열심히 수확하는 사람들은 구체적으로 이런 사람들입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성령의 인도대로 살지 않고 육체적 본능대로만 사는 사람들입니다.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지만 오직 그는 육체적 욕구 충족을 위해서만 동분서주합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모든 시간과 정력과 자원을 육체의 소욕을 채우는 일에 바칩니다. 그 대가로 썩어질 것들만 거둡니다. 그런데도 그는 거기서 만족과 보람을 느낍니다. 그러나 성령을 위해 심는 사람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심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수확은 없더라도, 많은 희생이 요구되더라도, 그는 모든 것을 감수하고 묵묵히 씨를 뿌립니다. 결국 그는 썩지 않을 영생을 수확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쯤에서 확인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가 무엇을 그렇게 열심히 뿌리고, 심었는가 라는 겁니다. 물론 우리는 아직 이 세상에서 살고 있고, 우리는 육체를 지닌 존재이기에, 육체를 위한 수확도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기껏 수고해서 오직 육신적인 것만 수확하고, 그것에만 만족한다면, 그것은 불행한 삶입니다. 우리는 신자로서 반드시 성령을 위해 씨를 심고 수확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영생을 수확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다 영생을 얻겠다고 주님 앞에 나온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출석하는 것은, 우리가 이제는 육체를 위해 심기보다 성령을 위해 심겠다고 다짐한 것의 표출입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여전히 육체를 위해 씨를 뿌리고 수확하려고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우리 자신도 속이고, 주님도 기만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앞장인 5장 21절은 이렇습니다.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2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우리는 십자가에 우리 자신을 못 박은 사람들인데 육체만을 위해 심는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수확불변의 제3법칙은 반드시 때가 되어야 거둔다는 사실입니다. 9절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모든 수확에는 다 때가 있습니다. 각각의 작물의 수확 시기는 각각 다릅니다. 영적인 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다릴 줄 모릅니다. 9절을 다시 보십시오.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여기서 말하는 선은 성령을 위해 심는 것을 가리킵니다. 아니 성령을 위해 심는데도 낙심이 된다고 합니다. 내가 바라는 시점에 수확을 할 수 없어서 낙심 되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포기합니다. 교회도 신앙도 주님도 포기합니다. 자기 기대에 부응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위해 심는 사람은 성령이 수확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는 겁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주님을 생각하며 오래 참고 기다리라고 합니다. 신앙생활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렵습니다. 선한 일, 성령을 위해 심는 일은 훨씬 더 고되고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 수고와 희생은 절대 헛되지 않습니다. 시편 126편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라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5장은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반드시 풍성한 열매를 수확하게 하시기에 선한 일, 성령을 위해 심는 일에 낙심치 말고 매진하십시다. 성령을 위해 심는다는 것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성령의 지시와 명령에 순종해 심는다는 뜻입니다. 부디 하나님의 시간표를 존중합시다. 내가 하나님에게 맞춰야지, 하나님이 내 시간표에 맞추라 위협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영적 열매와 수확은 더욱 그렇습니다. 오래 참으며 믿음, 소망, 사랑의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그 수확을 얻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수확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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