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id": "xe-52218",
  "title": "밀레의 &lt;이삭줍기&gt;",
  "authors": [],
  "category": "column",
  "dates": {
    "registered_at": "2016-11-19T11:15:53",
    "original_updated_at": "2016-11-19T11:15:53",
    "published_on": null,
    "delivered_on": null
  },
  "tags": []
}
---
<!-- paragraph:p0001 -->
<p class="p1"><br></p>
<!-- paragraph:p0002 -->
<p class="p1"><br></p>
<!-- paragraph:p0003 -->
<p class="p1">한불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열리는 &lt;프랑스 국립 오르세 미술관-이삭줍기전&gt;을 다녀왔습니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명작 130점을 선정해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에서 막을 올린 이번 전시회는 밀레를 비롯해 반 고흐, 르누아르, 모네 등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의 주요 작품들을  비싼 비행기 값을 지불하지 않고도 서울에 앉아 다 볼 수 있는 참 좋은 기회입니다. </p>
<!-- paragraph:p0004 -->
<p class="p1"><br></p>
<!-- paragraph:p0005 -->
<p class="p1">이번 전시의 간판 작품은 역시 밀레의 &lt;이삭줍기&gt;와 고흐의 &lt;정오의 휴식&gt;입니다. &lt;이삭줍기&gt;는 밀레가 1857년에 그린 작품으로 &lt;만종&gt;과 함께 가장 완성도 높은 그림으로 평가되어 왔습니다. 고흐의 &lt;정오의 휴식&gt;도 그가 죽기 직전인 1890년 마무리한 작품으로 농민들이 한낮의 더위를 피해 건초더미 아래서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담았는데 특히 노란색을 최대한 활용하던 때의 테크닉이 응축된 걸작으로 사랑 받아 온 작품입니다. 고흐는 밀레가 농촌과 농민을 주제로 그린 작품들을 보며 데생을 공부했을 만큼 그를 진심으로 존경했고, 또 그의 작품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따라서 &lt;이삭줍기&gt;와 &lt;정오의 휴식&gt;은 위대한 두 화가가 서로 어떤 식으로 교감하며 예술적으로 교류했는지를 미루어 짐작케 하는 대단히 의미있는 조합이라고 생각 합니다. </p>
<!-- paragraph:p0006 -->
<p class="p1"><br></p>
<!-- paragraph:p0007 -->
<p class="p1">오르세 미술관은 이번 전시를 위해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습니다. 흔히 밑그림이라는 데생 전시를 결심한 것인데, 데생은 특성상 한 번 공개하면 작품 보존을 위해 다시 수년간 빛이 차단된 소장고에 보관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번 밀레의 &lt;이삭줍기&gt;는 데생도 전시되었습니다. 밀레가 이 작품 속 인물들을 데생으로도 남긴 것입니다.</p>
<!-- paragraph:p0008 -->
<p class="p1"><br></p>
<!-- paragraph:p0009 -->
<p class="p1"> &lt;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풍텐블로 숲속을 한 번 걸어보라. 키 큰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선 숲속에서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과 자신보다 훨씬 더 큰 존재에 대한 경외심 앞에서 스스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게 될 것이다.&gt;</p>
<!-- paragraph:p0010 -->
<p class="p1"><br></p>
<!-- paragraph:p0011 -->
<p class="p1">이것은 밀레의 말입니다. 이렇듯 밀레는 자연을 사랑하고 또 하나님을 사랑한 화가로 유명한데 풍텐블로 숲은 파리에서 남쪽으로 60km 쯤 떨어진 곳으로 이 숲을 끼고 서북쪽에 위치한 바르비종은 &lt;바르비종파&gt;라는 풍경화가들의 한 사조를 형성할 만큼 많은 예술가들이 머물며 작품활동을 했던 곳입니다. 이번 전시회의 메인이면서 추수감사절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인 &lt;이삭줍기&gt;도 &lt;만종&gt;처럼 바로 이 바르비종 들녘을 배경으로 한 그림인데 이 작품에는 또 하나 아름다운 얘기가 전해집니다.</p>
<!-- paragraph:p0012 -->
<p class="p1"><br></p>
<!-- paragraph:p0013 -->
<p class="p1">밀레도 처음부터 사람들의 관심과 인정을 받았던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의 그림은 평론가들이 아니라 &lt;자연으로 돌아가라&gt;고 외쳤던 사상가 장 자크 루소에 의해 가장 높이 평가됐습니다. 어느 날 절친이었던 루소가 밀레를 찾아와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lt;드디어 자네의 그림을 볼 줄 아는 사람이 나타났네!&gt; 밀레는 친구의 말에 기뻐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의아스러워 했습니다. 아직 한 번도 제대로 인정을 받거나 제 값을 받고 그림을 팔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lt;내가 화랑에 자네 그림을 소개했더니 당장 구입하겠다며 그림을 골라달라고 내게 이렇게 선금까지 맡겼다네.&gt; 루소는 밀레에게 당시로서는 큰 돈이었던 300프랑을 건넸습니다. 하루하루가 힘들어 생활이 말이 아니었던 밀레에게는 그 돈이 그야말로 오랜 가믐에 단비와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자신의 그림이 이제 남의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에서도 큰 희망과 자신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p>
<!-- paragraph:p0014 -->
<p class="p1"><br></p>
<!-- paragraph:p0015 -->
<p class="p1">그러던 어느 날 밀레가 친구 루소의 집을 방문하고는 깜짝 놀랍니다. 몇 년 전 최악의 궁핍 속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할 때 찾아와 누군가가 자기에게 부탁했다며 큰 돈을 주고 사가지고 간 자신의 작품 &lt;이삭줍기&gt;가 바로 그 루소의 서재에 걸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제서야 밀레는 친구의 속 깊은 마음을 알고 고마움에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가난한 친구 예술가의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남의 이름으로 큰돈을 주고 그림을 사 준 루소와의 우정은 그 후로도  계속됐고 루소야 말로 끝까지 밀레의 가장 든든한 고객이자 후원자였습니다. </p>
<!-- paragraph:p0016 -->
<p class="p1"><br></p>
<!-- paragraph:p0017 -->
<p class="p1">쌀쌀한 이 가을날 감동과 사색이 함께하는 밀레의 &lt;이삭줍기전&gt;, 어떻습니까?</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