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30m 요한이 잡힌 후(막 1: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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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30m
막 1:14-15
[14]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15]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하나 여쭙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예수님의 이미지는 어떤 겁니까? 주님은 혁명가나 개혁가나 운동권으로 생각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주님을 전투적 이미지로 연상하지는 않습니다. 이게 과연 옳은 것일까요? 지금 우리가 가진 주님 상이 얼마나 성서적일까요? 이점은 우리가 진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주님이 공생애 3년간 동분서주하며 가르친 복음의 구체적 내용이 무엇입니까? 본문 15절입니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나님 나라가 주님 선포의 핵심이자 가르침의 주어입니다. 사도행전 1장 3절입니다. “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하나님 나라는 <바실레이아 투 데우>입니다. 이 말은 영토나 지리적 개념이 아니라, 통치, 주권, 지배, 정치를 가리킵니다. 천국이야말로 오직 하나님만이 지배하는 정치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천국만이 아니라 이 땅에 하나님이 통치하는 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내 심령이, 내 가정이 하나님의 통치 하에 있다면, 이미 거기에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된 겁니다. 반드시 죽어서만 가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닙니다. 천국도 내가 살아서 살던 세계의 연장입니다. 주님의 공생애가 그걸 증명합니다. 천국은 훨씬 더 역동적이고 도전적이고 개혁적이었습니다.
14절입니다.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것은 주님의 공생애 시점을 특정하는 대목입니다. 요한이 잡힌 후라고 합니다. 요한은 왜 잡혔습니까? 헤롯의 폭정과 허무를 고발하고 성토하다가 정치범으로 잡혀갔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바로 요한이 잡힌 직후부터 공생애를 시작합니다. 어디냐면 요한이 잡힌 바로 그 갈릴리에서입니다. 아직 분위기가 험악하고 살벌한데 바로 거기로 가셔서 하나님 나라의 가까움을 선포합니다. 이것은 대단단 도발입니다. 절대 권력에 대한 도전입니다.
어쨌든 요한이 잡힌 후 갈릴리에서 공생애를 시작하신 주님의 그 다음 행보는 무엇이었습니까? 요한복음 2장 13절 이하입니다. “[13]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더니 [14] 성전 안에서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과 돈 바꾸는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노끈으로 채찍을 만드사 양이나 소를 다 성전에서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사람들의 돈을 쏟으시며 상을 엎으시고 [16] 비둘기 파는 사람들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여기서 가져가라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시니 [17] 제자들이 성경 말씀에 주의 전을 사모하는 열심이 나를 삼키리라 한 것을 기억하더라 [18] 이에 유대인들이 대답하여 예수께 말하기를 네가 이런 일을 행하니 무슨 표적을 우리에게 보이겠느냐 [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그러니까 공생애 첫 사역지였던 갈릴리에서의 하나님 나라 선포가 사회개혁을 얘기했다는 겁니다. 예루살렘에서의 두 번째 사역은 종교개혁입니다. 주님의 유대교의 본산인 예루살렘에 진격해서 이 성전을 헐라고 한 것은 타락한 종교에 대한 격렬한 고발이자 개혁입니다. 주님은 처음부터 역동적이고 사회개혁과 종교개혁의 확실한 모범을 보이신 분입니다.
500년 전 루터의 종교개혁도 바로 이런 주님의 개혁 정신을 계승한 것입니다. 오늘이 종교개혁기념주일입니다. 루터는 원래 독일 동부지역의 광산촌 아이슬레벤에서 태어났습니다. 루터는 원래 문학도였습니다. 에어푸르트 대학에서 문학으로 석사학위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간곡한 요청으로 거기서 법학을 다시 공부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운명적인 사건을 접합니다. 친구와 귀가하다 심한 폭우를 만나고, 함께 가던 친구가 벼락을 만나 한순간에 새카만 숯덩이가 되고 맙니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루터는 거기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데 그 내용이 앞으로 성직자가 되겠다는 서원이었습니다. 루터는 법학대학을 졸업하고 수도원으로 들어갑니다. 거기서 신부 서품을 받습니다. 그러고 나서 비텐베르크 대학의 철학교수가 되고, 그곳 수도원의 부원장이 됩니다. 1512년에는 신학박사 학위를 얻고 신학부 교수로 봉직합니다. 그는 성서신학 교수였습니다. 거기서 구약 시편과 신약의 로마서, 갈라디아서를 강의했습니다.
그렇게 성경을 연구하며 학생들을 가르치는 중에 대단히 중요한 사실들을 깨닫습니다. 성경을 가르치면 가르칠수록, 성경의 가르침과 당시 로마교회의 가르침이 다르다는 겁니다. 괴리를 발견한 겁니다. 그래서 그는 자주 회의에 빠집니다. 한 번은 로마 교황청에 방문할 기회를 얻어 다른 순례자들처럼 교황청의 계단 수백 개를 기어올라가다가 엄청난 혼란에 빠집니다. 이게 무슨 짓인가? 이게 성경적인가? 고행을 해야 구원을 얻는가? 그의 마음이 뜨거워졌습니다. 로마서 1장 17절이 떠오릅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루터는 그 자리에 벌떡 일어납니다. 그렇다 고행이나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이다. 사람은 믿음으로만 의로워지고,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다. 루터는 그 길로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일 후에 또 하나 큰 사건이 발생합니다. 당시 가톨릭이 지금 교황청으로 사용하고 있는 성 베드로 성당을 짓다가 자금난에 시달리자 면죄부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교황이 대대적으로 면죄부를 팔기 시작합니다. 면죄부는 그야말로 부적입니다. 그동안 이렇다할 공적을 축적하지 못했을지라도 면죄부를 사면 그 사람은 곧장 천국에 간다는 겁니다. 공적이 모자라 연옥에 대기하고 있는 자기의 부모, 형제, 조상이 내가 여기서 면죄부를 사면 그 면죄부 값이 헌금통에 짤랑 하고 떨어지는 순간 모두 천국으로 간다고 하면서 면죄부를 팔았습니다. 루터는 더는 참을 수 없어서 마침내 1517년 10월 31일, 그러니까 499년 전에 비텐베르크 대학 교회 문에 95개 조항의 대자보를 내거는 것으로 종교개혁의 기치를 들었습니다.
당시 루터가 제시한 종교개혁의 원리는 3가지입니다. 95개조의 반박문의 원리가 바로 이것입니다.
첫째, 솔라 피데(sola fide), 오직 믿음입니다. 공적을 쌓거나 면죄부를 사는 게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천국 간다는 겁니다.
둘째, 솔라 스크립투라(sola scriptura), 오직 말씀입니다. 루터는 가톨릭의 근본적 타락의 원인을 말씀을 멀리하고, 성도들로부터 말씀을 차단하고, 교황의 권위나 교서를 신앙원리의 표본으로 삼은 데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종교개혁을 하며 가장 먼저 한 게 성경 번역 사업이었습니다. 당시는 말씀을 사제들이 독점하고 있었습니다. 성도에게 말씀을 되돌려줘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라틴어로 된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한 겁니다. 지금도 독일 사람들은 루터가 번역한 성경을 애독합니다.
셋째, 솔라 그라치아(sola gratia), 오직 은혜입니다. 구원은 교황 같은 중보자를 통해서가 아니라 주님이 우리에게 직접 주시는 선물이라는 겁니다. 가톨릭에서는 교황이나 사제가 중보자였습니다. 죄를 지어도 중보자인 사제에게 가서 고해성사를 합니다. 신부가 그걸 듣고 주님을 대신해 사죄선언을 합니다. 그게 잘못 되었다는 겁니다. 주님이 직접 베푸시는 게 속죄의 은총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가톨릭의 마리아 숭배 사상도 다 중보사상에서 연유한 것입니다. 여러 성자들이 다 중보자들입니다. 그래서 숭배하는 겁니다.
결국 교황청은 파문을 당했고, 루터는 그 파문장을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불 태웁니다. 그의 종교개혁은 걷잡을 수 없이 번집니다. 프랑스, 스위스 등에서 불 같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들을 저항자, 반항자라는 뜻의 프로테스탄트라고 불렀습니다. 이게 우리 개신교의 공식 호칭이 되었습니다. 감히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종교개혁을 통해 중세 천 년의 암흑기로부터 구출해 낸 루터는 불처럼 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종교개혁은 지금으로부터 500년 전에 있었던 일회적 사건이 아닙니다. 개혁교회의 제1강령은 끊임없이 개혁하는 교회입니다. 이게 루터로 비롯하는 개신교의 제1원리입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교회의 본래 정신을 계승해 가는 것이 개신교도들의 중요한 사명입니다. 요한복음 2장에서 주님이 성전을 헐라고 하시며 뭐라고 하십니까?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말라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21장에서는 성전이 기도하는 집인데, 너희가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하십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지금 교회에서 상거래를 하며 남을 속이는 도둑들이고, 산적이요 해적들입니다. 오죽하면 주님이 성전을 헐라고 하셨겠습니까? 구약 말라기에서는 너희 가운데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으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나 나라가 사망 직전입니다. 최순실 게이트로 지금 이 순간도 대통령 탄핵을 외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최악의 재앙입니다. 국민들의 마음이 갈가리 찢겼습니다. 나라 전체가 시궁창에 쳐박혔습니다. 한국 교회의 위상도 나라꼴과 진배 없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과연 어떻게 해야 무너진 나라와 교회를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요?
우리의 생존을 위한 유일한 선택은 개혁 밖에 없습니다. 주님이 채찍을 휘두르시며 성전에서 사람과 짐승을 몰아내시고, 돈을 다 쏟으시고, 책상을 둘러엎으시며 이 성전을 헐라고 분노하신 것처럼 과격하게 극단적으로 조금은 폭력적으로 개혁하는 겁니다. 그렇게 하면 삽니다. 개혁을 통해 타락한 인간의 권력을 심판하고, 공의로운 하나님의 통치를 실현하면 우리나라도 사회도 교회도 희망이 있습니다. 그러한 철저한 개혁 없이, 폭력적인 개혁 없이 대통령만 바꾸고, 정당만 바꾼다고 개혁되지 않습니다. 종교개혁기념주일을 맞아 우리나라와 한국 교회의 생존을 위해 모두가 주님의 개혁 정신을 이어받아, 진정한 개혁의 기수들이 될 것을 굳게 다짐하고 결단합시다.
원문 자료와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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