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루터와 볼링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위대한 종교개혁가일 뿐 아니라 뜻밖에도 볼링 역사의 진정한 개혁가이기도 했습니다. 볼링은 세련되고 대중적이고 도회적인 스포츠여서 그 역사가 짧을 거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실은 현존하는 스포츠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 중의 하나로 알려져 있습니다. 

볼링의 기원은 원시 수렵시대 목표물을 향해 힘껏 돌을 던지던 원초적인 사냥행위에서 비롯됐다는 게 거의 정설입니다. 볼링에는 요즘처럼 열 개의 핀을 사용하는 <텐 핀 볼링>뿐 아니라 <나인 핀 볼링>도 있고, 옥외에서 하는 <론 볼링>, 핀이 양초를 닮은 <캔들 핀 볼링>도 있습니다.

그런데 중세 유럽에서는 볼링이 원래 사제들과 수도사들의 전유물이었습니다. 그 때는 볼링이 게임이나 스포츠가 아니라 수도와 종교의식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수도원의 수도사들은 요즘의 핀에 해당하는 <케겔>(곤봉)을 긴 복도에 세워 놓고 둥근 나무(오크) 공을 굴려 쓰러뜨렸는데, <케겔>을 악마의 상징물로 삼았기 때문에 그걸 많이 쓰러뜨리는 사람은 그 만큼 신앙심이 돈독하고 영성이 깊은 수도사로 평가되어 모두가 열심히 공을 굴렸습니다. 

그런데 루터가 종교개혁을 단행하면서 수도원의 이 볼링 행위도 파격적으로 개혁한 것입니다. 볼링이란 신앙이나 수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단지 믿는 자들의 건전한 오락이나 스포츠로서는 권장할 만하다며 교회 내 일반 성도들에게도 그 문호를 개방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그 때까지만 해도 일정하지 않았던 <케겔>을 9개로 확정하고 이를 다이아몬드 형으로 배치했을 뿐 아니라 레인의 길이와 볼의 지름까지도 규정함으로써 <나인 핀 볼링>의 최초 고안자가 된 것입니다. 그 이후 볼링은 급속히 대중화되어 신앙심과는 관계없이 오락성이 강해지면서 독일 전역은 물론 프랑스, 스위스, 네덜란드 등 유럽 전역으로 보급됐고, 1625년에는 네덜란드 이민자들에 의해 미국에까지 전파되면서 붐을 일으켰는데 미국에서는 이것이 도박 게임으로 변질되면서 청교도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쳐 당국이 금지령까지 내려 한 때는 거의 사라질 뻔 했습니다만 뉴욕의 그리니치 빌리지 교회의 목회자가 <나인 핀>이 안 된다면 <텐 핀>으로 하면 되지 않느냐며 교회 지하실에 <텐 핀> 레인을 설치하고 교회 청년들에게 개방한 것이 오늘날의 <텐 핀스 볼링>의 새로운 기원이 된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볼링 역사는 1920년대 서양 선교사들이 사택 마당에서 즐기던 <론 볼링>이 그 시초로 알려져 있습니다. 90년대 초 한국을 방문했던 미국 최대 볼링장비 업체 <브룬즈윅>의 데이비스 회장이 <서울 하늘에서 내려다보니 빌딩 옥상마다 십자가와 볼링 핀 모형 밖에는 안 보이더라>고 해 한 때 국내의 볼링 붐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루터도 누구보다 볼링에 능한 고수였습니다만 우리나라 목회자들 가운데도 마니아들이 많습니다. 한 때는 목회자들이 만나면 으례 볼링장으로 갔고 열심히 마귀를 쓰러뜨리느라 아예 하루 종일 볼링장에서 산 분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우리 교회도 수요일 오후 몇몇 분들이 볼링장을 찾는데 특히 한신애, 노창순 권사님의 실력은 에버리지 2백 점을 넘나드는 대단한 수준입니다. 

저는 마귀라는 케겔 10핀 중 단 하나도 못 건드릴 때가 많아 볼링이 성직자 운동이란 말을 무색케 하는 실력입니다만 다행히 볼링 점수와 믿음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개혁가 루터의 말에서 큰 위안을 얻습니다.  역시 루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