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61023m 결산할새(마 25:14-30)

20161023m
마 25:14-30
결산할새

[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7]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그들과 결산할새 [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오늘 이 본문은 우리가 잘 아는 주님의 대표적인 비유 가운데 하나입니다. 어거스틴은 이것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주인은 주님, 달란트는 신자, 주인이 먼 나라로 여행을 떠났다는 것은 부활하신 주님의 승천을 의미하고, 오랜 세월 후에 주인이 다시 돌아온 것은 주님의 재림을, 돌아온 주인이 종들과 결산한 것은 종말 심판을 뜻하고, 다섯과 두 달란트 남긴 자를 칭찬한 잔치는 천국을, 한 달란트 남긴 자가 쫓겨난 곳은 지옥을 가리킨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이렇게 해석합니다.

그러나 이 비유가 많은 비판을 받아 왔습니다. 현대에 와서는 더욱 그랬습니다. 주인이 달란트를 세 종에게 공평하게 나눠주지 않았다는 겁니다. 분배 균등, 기회 균등의 원칙을 깼다는 겁니다. 여기에는 보다 근본적으로 인간 차별이 전제되어 있다는 겁니다. 또 하나 28절 이하를 보십시오.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어떻게 한 달란트 가진 자의 것을 빼앗아 이미 많이 가진 자에게 주느냐는 겁니다. 무릇 있는 자는 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있는 것마저 빼앗긴다는 것이야말로 자본주의의 부익부 빈익빈을 조장하는 처사라는 겁니다. 그래서 칼 막스나 엥겔스 같은 사람에게서 호된 비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넌센스입니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비유는 모두 천국에 대한 비유입니다. 어디까지나 하나님 나라의 새 질서를 교훈하기 위한 비유였습니다. 주인이 인간 차별을 했다구요? 분배 균등의 원칙을 범했다구요? 따라서 이 주인이야말로 근본적으로 정의롭지 못하고 악덕 기업주라고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주인이야말로 개인의 능력차를 인정하고 각 사람의 재능에 맞게 달란트를 맡긴 사람입니다. 사람은 다 그 재능이 다릅니다. 사람은 다 능력이 다릅니다. 그럼에도 그걸 무시하고 각자에게 일률적으로 같은 것을 맡긴다는 것이야말로 역차별입니다. 그런데 주인은 각 자의 능력에 맞게 차등 분배를 했습니다. 배려가 깊은 주인이었습니다. 종들에 대한 이해가 깊은 주인이었습니다. 

훗날 여행에서 돌아와 주인이 결산하는 대목도 보십시오. 분명 다섯과 두 달란트라는 차이가 있음에도 주인은 그 둘을 똑같이 칭찬합니다. 비록 자기 재능에 따라 다섯과 두 달란트를 받긴 했지만, 자기 능력에 최선을 다했기에 주인은 똑같이 치하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일이냐, 몇 달란트냐가 아니라 주어진 과제에 내가 얼마나 성실히 임했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그러면 비록 재능의 한계로 두 달란트 밖에 못 받았더라도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과 같은 영광을 받는다는 겁니다.

달란트는 금 33kg을 가리킵니다. 요즘 가치로도 엄청난 돈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6-17절을 보면, 다섯과 두 달란트 받은 종이 바로 가서 사업을 해 이익을 남겼다고 합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그에 걸맞은 이익을 냈고, 두 달란트 받은 사람은 거기에 걸맞은 이익을 남긴 겁니다. 이 둘은 투자자의 기대에 부응했습니다. 문제는 한 달란트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받은 돈을 은행 비밀금고에 넣었습니다. 그는 땅을 파고 주인의 돈을 감춰뒀습니다. 주인은 열심히 사업해서 이익을 남기라고 투자한 것인데 그는 투자금을 땅에 묻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주인이 돌아왔습니다. 오랜 후란 종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주인이 더디 왔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주님의 재림이 늦을 수도 있다는 의미입니다. 벌써 2000년입니다. 주님이 천국으로 가신 지 2000년이 지났습니다. 그래서 실제 많은 종이 긴장을 푹고 무장을 해제한 채 모두가 재림 불감증에 걸려 아무 위기의식 없이 살아가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종말에 대한 내성이 생겨 이제는 어떤 고민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결국 주인이 돌아왔습니다. 좀 늦게 왔을 뿐이지 주인은 왔습니다. 주인이 종들과 결산을 합니다. 종말은 반드시 옵니다. 이것을 반드시 기억하십시다. 종말은 단순히 끝이 아닙니다. 시간의 종지부를 찍는 게 종말이 아닙니다. 그날은 무엇보다 심판의 날입니다. 그간의 내 모든 삶의 과정과 진상이 낱낱이 폭로되는 결산의 날입니다. 그래서 무섭고 엄숙한 날입니다. 그간의 내 삶의 내용이 드러나면서 선악 간에 철저한 심판을 받는 날입니다. 다섯과 두 달란트를 받은 종은 그동안의 수고와 헌신만큼 칭찬과 영광을 받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종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21절입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다음은 두 달란트 남긴 종에 대한 칭찬입니다. 23절입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이제 한 달란트를 그대로 들고 온 종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26절입니다. “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30절도 보십시오.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 

한 달란트를 그냥 가져온 종이 책망 받은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가 원금 손실을 본 게 아닙니다. 25절을 보면 그 종이 주인을 설득합니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주인에게 손해 끼친 게 없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주인은 그를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하며 이 무익한 종을 어두운 데 내쫓으라고 합니다. 손해를 입힌 게 아니라 불충이라는 겁니다. 이 달란트 비유의 주제가 충성과 헌신입니다. 주인이 다섯과 두 달란트를 칭찬하는 말을 다시 보십시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했으니 내가 큰 일을 맡긴다”고 합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종은 그 받은 것을 묻어두기만 했을 뿐 주인에 대한 희생이 없었습니다. 예를 들어 그가 받은 것으로 사업을 하다가 그 한 달란트마저도 날려버리거나 오히려 빚을 졌다 해도 주인은 그를 당연히 위로하고 축복했을 겁니다. 충성하다가 본의 아니게 원금을 날렸기 때문입니다. 잘 하려고 하다가 손해를 볼 수도 있다고 위로하십니다. 장사란 원래 그런 거다. 너도 주인의 잔치에 참여하라고 하셨을 겁니다. 얼마나 수고하고 희생하고 헌신했느냐는 그 과정을 보십시다. 결과가 아닙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자에게는 그 과정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책망 받고 저주 받은 겁니다. 최소한 본전은 건졌지만 주인은 그를 실랄하게 비판합니다.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궁금증은 이것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왜 그랬을까요? 왜 그는 그것으로 사업할 생각도 하지 않고 땅에 묻었을까요?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걸 하찮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으로는 생색이 안 난다는 겁니다. 한 달란트가 그 사람의 성에 안 찼다는 겁니다. 그래서 차라리 잘 놔뒀다가 주인에게 본전이라도 돌려주자고 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자기가 받은 달란트를 철저히 과소평가하는 겁니다. 주인은 분명 달란트를 맡겼는데, 그 사실 조차도 무시하며 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올해만 해도 년초에 받은 달란트를 그대로 땅에 묻어 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게 다섯 달란트나 두 달란트였다면 그렇게 무시하지 않았을 겁니다. 한 달란트이기에 시시하게 생각해서 방치한 겁니다. 

그러나 주인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주인은 작은 것을 통해 시험하십니다. 작은 일에 충성해야 큰 일에도 충성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자를 칭찬할 때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했으니 큰 일을 맡기겠다’고 하십니다. 한 달란트에 얼마나 충성하느냐가 큰 일에 어떤 자세로 임하느냐를 결정합니다. 작은 일에 불성실하면서 큰 일을 잘 할 수 있다는 것은 허풍입니다. 정말 큰 일을 잘하려면 먼저 작은 일에 충성해야 합니다. 언제나 우리에겐 작은 일이 함정이자 시금석입니다. 부디 작은 일에 충성하고 한 달란트를 소중히 여깁시다. 주님은 우리에게 한 달란트를 맡기신 후에 우리가 어떻게 하는지 예의 주시하고 계십니다. 한 달란트에 어떻게 임하느냐가 우리의 모든 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다음은 주인에 대한 오해 때문일 수 있습니다. 24절입니다.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이 사람은 주인이 심지 않은 데서 거두는 사람으로 알았다는 겁니다. 주인을 마피아나 조폭으로 알았다는 겁니다. 강도로 알았다는 겁니다. 터무니없이 일방적으로 주인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주인은 각 사람의 능력만큼 심고 거둔 사람입니다. 그는 다섯 달란트 그릇이 되는 종에게 다섯 달란트를, 두 달란트 그릇이 되는 종에게 두 달란트를 준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이 종은 주인을 강도로 해석합니다. 얼마나 황당하고 잘못된 변명입니까? 26절입니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어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억울하고 황당하다는 겁니다. 주인을 제멋대로 이해하는 분들 많습니다. 제 맘대로 결론을 내리는 사람들 많습니다. 그런 사람은 신앙생활도 자기 판단대로 합니다. 그러면서 그게 옳다고 믿습니다. 보십시오. 드디어 주인의 추상 같은 심판이 선포됩니다.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이게 악하고 무익하고 무심한 종에 대한 최후입니다.

우리는 다 달란트를 받은 종들입니다. 능력에 따라 달란트를 받았을뿐 안 받은 종은 아닙니다. 우리는 반드시 결산을 합니다. 가까이는 올해 연말결산이 기다립니다. 올해도 부끄럼 없이 연말결산에 임할 자신이 있으십니까? 끝까지 최선을 다하십시오. 모두가 악하고 게으르고 무책임 종이 아니라 착하고 신실한 종으로 올해를 아름답게 마무리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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