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016n 피리를 불어도 슬피 울어도 (마 11: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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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16n
마 11:16-19
피리를 불어도 슬피 울어도
[16]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17]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18]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19]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노회에 가서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일선 목회자들의 고민은 설교가 성도들에게 먹히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대도 없고, 감동이나 도전도 없다는 겁니다. 원인을 여러 가지로 분석하던데 다 일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인터넷 발달로 여러 유명 목회자의 설교를 들을 수 있기에 듣는 귀가 높아져 자기 목사님 설교가 성에 안 차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형 교회의 비리가 연이어 터져 목사들에 대한 신뢰가 바닥이라는 겁니다. 게다가 지금은 한국 교회 전체가 바닥으로 가라앉는 분위기여서 그렇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디모데전서 4장 1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마지막 때가 되면 많은 사람이 양심에 화인을 맞아 미혹하는 영을 따라간다고 합니다. 화인을 맞는다는 것은 말씀에 대한 감각을 잃는다는 의미입니다. 말씀을 들어도 아무런 감흥을 못 느끼는 겁니다. 본문도 바로 그런 문제에 대한 주님의 비유입니다.
팔레스틴은 넓은 공터가 귀합니다. 아이들이 뛰놀 수 있는 넓은 마당이 여의치 않아 아이들은 장터에서 많이 놀았습니다. 당시 아이들의 놀이는 주로 결혼식이나 장례식 놀이였습니다. 어느 나라 어느 시대나 결혼식과 장례식은 인생사의 보편적인 것이기에 아이들의 놀이문화의 주요 소재였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것을 들어서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아이들이 결혼식 놀이를 하면서 피리를 부는데 아무도 춤추지 않더라는 겁니다. 그러면 장례식 놀이하자며 슬피 우는데 아이들이 애통해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놀이가 안 되는 겁니다. 피리를 불고 슬피 울어도 춤도 안 추고 가슴을 치는 시늉도 않더라는 겁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게 바로 그 시대의 진상이라고 하십니다. 무관심, 무반응, 타성, 만성병, 불감증의 시대 말입니다. 이게 주님이 진단하고 고발하시는 당시의 세태였습니다. 본문 18-19절입니다. 얼마나 리얼한지 모릅니다. “[18]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19]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춤추거나 곡을 하기는커녕 도리어 모욕했다는 겁니다. 실제 세례요한은 금욕주의자였습니다. 세례요한의 사명은 장례식 놀이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곡소리를 듣고도 아무도 가슴 치며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귀신 들렸다고 모욕하고 조롱했습니다. 주님은 세례요한과는 달리 결혼식 놀이를 하시는 게 사명이었습니다. 그래서 늘 죄인들과 어울려 먹고 마셨습니다. 그러자 이제는 주님의 피리 소리에 맞추 춤추기는커녕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긴다고 조롱했습니다. 원어로는 더 심합니다. 게걸스런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례요한이 촉구한 회개도, 주님이 선포한 복음도 거절했습니다.
본문에 이어지는 20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이 몇몇 성읍을 고발하십니다. “[20]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행하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21] 화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라면 그들이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22]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23]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 네게 행한 모든 권능을 소돔에서 행하였더라면 그 성이 오늘까지 있었으리라 [2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시니라.” 무슨 말씀도 통하지 않았던, 그 어떤 말도 용납하지 않았던 그 시대 이스라엘의 불감증에 대한 주님의 격렬한 심판 선언입니다.
여러분, 믿음이 무엇일까요? 결국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반응이요, 말씀에 대한 결단입니다. 그런데도 주님 당시 세대에는 그런 게 없었습니다. 그 세대는 스데반을 돌로 쳐죽였습니다. 그 누구도 주님이 선포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주님을 십자가에 달았습니다. 그 시대의 합작품입니다. 무관심, 냉소만 있었다는 겁니다. 그들은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심판날 이방인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최악의 도시였던 소돔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라는 경고의 말씀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말씀은 남의 얘기가 아닙니다. 우리의 얘기입니다. 이 비유가 어찌 주님 시대만의 이야기이겠습니까? 여러분과 주님과의 문제입니다. 믿으면 복 됩니다. 부디 주님이 피리를 부시면 제발 춤을 추십시오. 주님이 슬피 우시면 제발 가슴을 치십시오. 강단에서 말씀이 선포되면 반응을 보이십시오. 메아리 없는 말씀처럼 공허한 것도 없습니다. 하여간 이 시대의 가장 큰 문제도 말씀에 대한 무관심, 무감각, 무반응입니다. 선포되는 말씀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응답하여 결단하고 내 삶에 적용해야 믿음이 자라고 성숙해집니다. 말씀에 대한 기대나 준비도 없습니다. 오늘 무슨 선한 것이 있겠느냐며 마음을 닫고 주일에 교회에 나옵니다. 여러분은 좀 더 열린 심령으로 예민하게 말씀에 반응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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