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61009m 내게 부르짖으라 (렘 33:3-9)

20161009m 
렘 33:3-9
내게 부르짖으라!

[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4]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무리가 이 성읍의 가옥과 유다 왕궁을 헐어서 갈대아인의 참호와 칼을 대항하여 [5] 싸우려 하였으나 내가 나의 노여움과 분함으로 그들을 죽이고 그들의 시체로 이 성을 채우게 하였나니 이는 그들의 모든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얼굴을 가리어 이 성을 돌아보지 아니하였음이라 [6]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7]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 [8]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이 내게 범하며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 [9]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나의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내가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내가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안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며 떨리라

본문 3절은 내게 부르짖으면 응답하겠다고 하신 약속입니다. 여기서 부르짖으라는 말은 큰소리로 주여 삼창 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밤에 산에 가서 소나무 흔들며 뽑듯 기도하라는 말도 아닙니다. 예레미야가 말씀하는 부르짖음은 이런 겁니다. “초저녁에 일어나 부르짖을지어다 네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물 쏟듯 할지어다 각 길 어귀에서 주려 기진한 네 어린 자녀들의 생명을 위하여 주를 향하여 손을 들지어다 하였도다.”(애 2:19) 이것은 부르짖으라는 말씀이 구체적으로 밝힌 대목입니다. 

우선 눈물을 강물처럼 흘리라는 겁니다. 눈물로 회개하라는 뜻입니다. 예레미야 선자자의 별명이 눈물의 선지자입니다. 그가 쓴 예레미야 애가는 눈물의 기도, 노래라는 뜻입니다. 가장 비극적인 시대에 부름 받아 눈물로 전해야 했던 비운의 선지자가 예레미야입니다. 우리에게도 눈물을 강물처럼 흘리며 기도하라고 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눈물의 기도에 감동하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눈물 앞에서 가장 약하십니다. 자식이 부모 앞에서 눈물을 흘리면 부모 심정이 미어지듯이 주님도 같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이 부르짖으며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은 꾸준히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기도를 생활화 하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너무 기도를 포기합니다. 꾸준히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시간표와 하나님의 시간표가 다릅니다.

주를 향해 두 손을 들라고 합니다. 항복하라는 겁니다. 주님께 투항하라는 뜻입니다. 두 손을 들고 기도하십시오. 완전히 하나님 앞에 항복을 선언하며 기도하십시오. 아직 자기가 살아 있는 사람은 기도할 자격이 없습니다. 자기 힘으로 살면 되기 때문입니다. 아직 자기 힘과 재주가 있는데 왜 하나님께 기도합니까. 더는 자기를 고집하지 말고 전적으로 주님 뜻에 순종하며 살겠노라 복종하며 두 손을 들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부르짖어 기도하면 내가 응답하겠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이요 다짐입니다. 어떻게 응답하신다고 합니까? 

본문 3절 하반절입니다.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정작 기도하는 나도 미처 알지도 상상치도 못할 크고도 비밀한 그 무엇을 보이시겠다고 합니다. 내 앞에서 연출하시겠다는 뜻입니다. 크고 은밀한 일은 개역성경에는 크고 비밀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위대하고도 기발한 일, 신비한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무엇을 바라고 기도하는 것 이상의 놀라운 응답을 보장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는 흔히 기도하면서 주님의 응답에 대해 나름대로 상상을 합니다. 바람도 아룁니다. 여기서 부르짖는 자에게 응답하시겠다는 크고 은밀한 일은 우리의 상상력을 뛰어 넘는 놀랍고도 기발한 것을 응답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지혜나 방법, 상상력은 한계가 있습니다. 협소한 제한 속에 갇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적 모든 것을 초월하십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길이 안 보일 뿐이지 하나님에게는 비밀한 해결책이 많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열심히 부르짖어 기도하면 그런 신비하고 은밀한 복을 허락하십니다. 그게 무엇이든 인간적 생각이나 계산으로 지레 기도를 접지 마십시오. 섣불리 포기하거나 절망하거나 체념하지 말고, 이 가을에 꼭 부르짖어 기도하셔서 하나님의 크고도 은밀한 기도 응답을 구체적으로 체험합시다.

다음은 황폐해진 성을 치료해서 낫게 해주십니다. 본문 6절입니다. “보라 내가 이 성읍을 치료하며 고쳐 낫게 하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바벨론의 침공으로 완전히 초토화된 예루살렘 성을 다시 일으켜 평안이 풍성한 성읍으로 회복시켜 주마고 하십니다. 이때의 유다의 형편은 이사야 1장에 잘 나와 있습니다. “[5]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6]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7] 너희의 땅은 황폐하였고 너희의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의 토지는 너희 목전에서 이방인에게 삼켜졌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 같이 황폐하였고 [8] 딸 시온은 포도원의 망대 같이, 참외밭의 원두막 같이, 에워 싸인 성읍 같이 겨우 남았도다.”(사 1:5-8) 이것이 우리의 실상, 우리나라의 실상 아닙니까? 요즘은 정말 성한 사람 멀쩡한 사람이 없습니다. 가정도 마찬가집니다. 겉만 보면 그럴 듯하지만, 속은 다 위태위태합니다. 나라도 총체적으로 다 병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제 잘 나서 배는 열심히 산으로 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중병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내년이 대선입니다. 차기 대통령을 잘 뽑으면 이 병을 치유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그런 기대가 있으십니까? 제 눈에는 죄송합니다만, 지금 대통령이 되겠다며 들썩이는 사람들이 훨씬 더 심각합니다. 그 사람들이 국민을 골병들게 한 주범들입니다. 누구도 그 어떤 개인이나 집단도 우리 사회를 온전케 할 수 없습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죄인이 죄인을 구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나라를 위해, 우리의 병든 사회를 위해, 주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우리의 성을 치료하사 낫게 하신다고 분명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이 신자입니다. 사람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능히 이 병든 성, 황폐한 성을 고쳐서 평안과 진실이 풍성한 건강한 성으로 새롭게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 개인의 중병도 다 치료하실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15장 6절입니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시니이다.” 말라기 4장 2절입니다.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공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비추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 같이 뛰리라.” 역대하 7장 14절입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그게 가정이든, 교회든, 나라든, 사회든, 내 몸과 영혼이든 치료가 필요한 분은 주님께 부르짖으십시오. 주님은 평안과 진실을 풍성하게 해주십니다. 우리가 열심히 부르짖으면 만신창이가 된 대한민국이라는 성읍을 구하사 평화가 회복되고 남북이 화해하는 복도 언젠가는 베푸십니다. 

우리가 주께 부르짖으면 찬송과 평안을 주십니다. 9절입니다.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나의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내가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내가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안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며 떨리라.” 나와 내 가정이 주님의 기쁨이 되고, 내 모든 복과 평안으로 말미암아 세상이 두려워 떤다고 합니다. 요즘 여러분의 삶에 가정에 기쁨이 있습니까? 여러분 입에 찬송이 있습니까? 삶에 보람과 낙이 있습니까? 오늘도 이 복된 주일날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40명이 자살합니다. 33분에 한 명씩 자살하기에 우리가 한 시간 예배드리는 동안에도 2명이 자살합니다. 자살율이 OECD 회원국 중 13년 동안 1위입니다. 이게 대한민국의 현주소입니다. 삶이 그만큼 고통스럽고 보람과 희망도 없다는 겁니다. 빈부귀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개인적으로 집단적으로 자기 생을 내던집니다. 우리 사회가 그만큼 위기요 절망적이라는 뜻입니다. 정말 치유하기 어려운 집단 우울증 아닐 수 없습니다. 믿는 사람도 평안보다는 짜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살기 싫은 표정입니다. 주일 아침 교회에 나오면서도 모두 화난 표정입니다. 누구라도 걸리기만 해보라는 표정입니다. 얼마나 다들 까칠하고, 뽀족한지 모릅니다. 우리가 지금 그렇게 메마른 환경에서 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도 마찬가집니다. 그러니 그 입에 무슨 찬송과 평안이 있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은혜롭게도 우리 신자에게는 방법이 있습니다. 유일한 방법은 기도입니다. 건성, 요식, 의식 말고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눈물을 강물처럼 흘리며 자복하고, 밤낮으로 쉬지 않고 기도하고, 온전히 하나님께 투항하며 드리는 기도, 이것이 오늘 본문이 주시는 처방입니다. 이게 살 길입니다. 다음주 17일부터 4주간 특별새벽기도회에 들어갑니다. 이 가을, 우리가 가장 힘써야 할 일, 미션은 기도입니다. 모두가 하나님께 부르짖고 약속하신 은혜를 체험합시다.


원문 자료와 첨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