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61002m 한 줄기 신선한 바람 (딤후 1:15-18)

20161002m 
딤후 1:15-18
한 줄기 신선한 바람

[15]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는 부겔로와 허모게네도 있느니라 [16] 원하건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그가 나를 자주 격려해 주고 내가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17]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와 만났음이라 [18] (원하건대 주께서 그로 하여금 그 날에 주의 긍휼을 입게 하여 주옵소서) 또 그가 에베소에서 많이 봉사한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

주님도 그러셨지만, 사도 바울도 외로운 사람이었습니다. 막상 가까이 다가가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로마에서 옥살이 하던 말년에는 더욱 그랬습니다. 모든 이가 그에게서 등을 돌렸습니다. 15절입니다.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 그 중에는 부겔로와 허모게네도 있느니라.” 여기서 말하는 아시아란 에게 해 서남북 지역, 소아시아인데 지금의 터키 지역입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일곱 교회만 소개하지만, 훨씬 더 많은 교회가 있었습니다. 바울이 옥에 갇히자, 그 교회들이 다 관계를 끊었다는 겁니다.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이란 말속에는 바울의 허탈감이 드러나 있습니다. 허모게네는 소아시아 교회가 바울을 외면하는 데 가장 선동한 사람입니다. 그는 바울을 죄수에 불과하다며 악선전을 하고 다녔습니다. 바울은 이런 사람들 때문에 상처와 아픔을 겪었습니다. 

여러분은 목회자로서의 바울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바울은 성공한 목회자였습니까? 그를 성공한 목회자로 생각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바울이 유명해진 것은 일단 많은 글을 남겼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글을 단행본이나 논문 저작이 아니라 거의 서신들입니다. 그가 신약성경의 2/3나 되는 많은 편지를 쓴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소아시아 지역을 세 차례나 순례하며 많은 교회를 세웠는데, 사실 그가 세운 교회 가운데 단 하나도 제대로 된 교회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끊임없이 편지를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각 교회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에 대해 그때마다 답을 주고, 책망도 하다보니 본의 아니게 많은 편지를 남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로마 감옥에서 마지막으로 쓴 유언같은 디모데후서도 그렇습니다. 

그때는 67년 늦가을인데, 4장 6절을 보면 떠날 기약이 가까웠다고 합니다. 그는 이때 임박한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이 편지를 쓴 다음 네로에게 참수를 당합니다. 그가 가장 고독할 때, 수감생활한 지 7-8년이 지나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져갈 때, 그가 세운 동역자들이 단체로 그를 버렸다는 겁니다. 얼마나 마음이 쓰리고 아팠을까요? 죽음은 임박했는데, 자기가 전도해 교회를 설립하고 사역자로 세운 사람들이 다 바울을 배신합니다. 물론 완벽하게 다 떠난 것은 아닙니다. 소수는 남아 있습니다. 4장 9절 이하를 보면, 죽기 전에 그는 디모데를 보고 싶어합니다. 속히 오라고 합니다. 겨울이 닥치기 전에 오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데마는 세상을 사랑해 데살로니가로 가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가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다고 합니다. 누가가 바울의 주치의로 바울 곁에 있습니다. 

또 한 사람이 곁에 있는데, 오늘의 주인공 오네시보로입니다. 본문 16절 이하입니다. “[16] 원하건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그가 나를 자주 격려해 주고 내가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17]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와 만났음이라 [18] (원하건대 주께서 그로 하여금 그 날에 주의 긍휼을 입게 하여 주옵소서) 또 그가 에베소에서 많이 봉사한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 그는 에베소 사람입니다. 그가 에베소에서 바울을 만나고 나서부터 바울을 돕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에베소에서뿐만 아니라 로마까지 와서 옥바라지를 돕고 있습니다. 그는 자주 바울을 격려했습니다. 개역성경은 격려 대신 유쾌하게 했다고 썼습니다. 원어로는 <아나푸시코>인데, 그 뜻은 신선한 바람을 불어 넣다는 뜻입니다. 개역성경이 훨씬 더 의미를 잘 드러냅니다. 마치 신선한 한 줄기 가을바람처럼 오네시보로는 바울을 유쾌하게 했습니다. 영어 번역으로는 이 대목을 refresh로 적고 있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보로의 옥바라지를 받으면 행복해졌습니다. 오네시보로는 바울에게 상쾌한 한 줄기 바람 같은 존재였습니다. 모두가 바울을 떠났는데, 드물지만 오네시보로 같은 사람이 있어 그의 숨통을 틔웁니다.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당시 소아시아 교회들은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혀 있다는 사실이 불편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이 자신들이 모르는 중대한 범죄를 저질렀기에 로마 감옥에 갇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오네시보로는 사슬에 매인 바울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감옥에 들어간 사람을 사도로 인정할 수 없다는 사람은 교회의 수치라고 여기던 사람들이 많은 때에 오네시보로는 바울에 대한 신뢰와 애정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에베소에서도 로마에서도 그는 동일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오네시보로를 통해 큰 힘을 얻었습니다. 바울은 그가 얼마나 고마웠으면, 그의 이름을 꺼내면서 일단 축복 기도부터 합니다. “원하건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그러고 나서 그는 자신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밝히고, 다시 축복기도를 합니다. 바울이 어떤 사람을 소개하면서 앞뒤로 축복기도를 한 적은 여기가 처음입니다. 이를 보면 바울이 그에게 얼마나 감사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신구약 성경에서 위대한 한 사람을 꼽으라면, 저는 당연히 바울입니다. 그런 그가 오네시보로를 위해 축복기도를 합니다. 주님이 그의 기도 대로 오네시보로에게 복을 내리지 않으시겠습니까? 오네시보로 가정은 전승에 의하면 아내는 렉트라인데, 그녀는 에베소 교회의 어머니였습니다. 오네시보로는 에베소 교회의 장로와 설교자로서 자신의 말년을 삽니다. 아들이 4명인데 모두 훌륭한 법관과 관료가 되어 그의 집안이 에베소에서 가장 명문가가 됩니다. 그는 바울 사상에 대한 정통한 설교가로 102세를 살기까지 에베소 교회를 섬깁니다.

여러분은 주님께 어떤 존재이십니까? 툭하면 주님을 떠나십니까? 그렇게 주님의 가슴에 못을 박으십니까? 아니면 다 주님을 부끄러워할 때 끝까지 주님 곁을 지키며 한 줄기 신선한 바람처럼 주님께 상쾌함을 선사하는 오네시보로 같은 사람입니까? 소아시아 교회들이 바울을 버리는 데 앞장섰던 부겔로 허모게네 같은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디모데후서 2장에 나오는 후메네오와 빌레도 같은 사람도 되지 마십시오. 그들은 바울을 왜곡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그 둘을 악성 종양이라고 했습니다. 또 디모데후서 4장에는 세상을 사랑한 데마가 나오고, 바울에게 해를 입힌 알렉산더가 나옵니다. 그런 사람이 되면 안 됩니다. 오네시보로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의 간절한 축복 기도가 이뤄져서 에베소에서 가장 명문가가 되는 그런 여러분의 가정이 되십시오. 한 순간도 주님 곁을 떠나지 마시고 끝까지 누가, 오네시보로처럼 주님 곁을 지키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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