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상의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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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우리나라 10-30대 청장년층의 사망원인 1위는 자살이었습니다.
40대 이상 중장년부터는 암이 가장 높은 사망원인임이 확인됐습니다. 그래서 지난 주중 발표된 통계청 자료에 대해 <못 버티면 자살하고 버티면 스트레스로 암에 걸려 죽는 시대> 혹은 <양치질만 열심히 해도 암에 걸리는 나라>라는 등의 극단적인 불신과 냉소적 반응이 인터넷을 도배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악명 높은 자살 공화국입니다.
지난해 자살로 사망한 사람은 모두 1만 4427명으로 하루 40명, 평균 33분당 한 명꼴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인구 10만 명 당 자살자 수는 27.3명으로 OECD 회원국 중 13년 연속 1위며, 그것도 OECD 평균 12.2명의 2배가 넘는 압도적 1위였습니다. 참고로 자살 대국으로 알려진 2위 일본은 18.7명, 3위 미국은 13.1명, 4위 독일은 10.7명 ...
몇 개월 전 30대 초임 검사가 자살했을 때도 참 충격이었습니다. 그 어려운 사법고시도 뚫어낸 전도유망한 젊은이가 못된 부장검사의 갑질에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사실이 우리 모두를 안타깝게 했습니다. 지지난달 26일에는 이인원 롯데그룹 부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데 이어 지난달 8일에는 다시 야구해설가로 명성이 높았던 하일성씨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또 안산에서는 20-40대 남녀 네 명이 함께 질소를 흡입하고 숨진 채 발견된 사건도 있었습니다. 고령층 자살률 역시 80대 이상은 10만 명 당 83.7명, 70대 62.5명, 60대 36.9명으로 세계 어디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하루가 다르게 급증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모두가 집단 우울증입니다. 고질적인 물질만능주의, 학력 지상주의, 사회 양극화, 무한경쟁, 청년 실업, 상대적 박탈감, 극빈 노인, 입시, 취업 스트레스 등이 가파르게 우울증, 자살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연암 박지원(1737-1805)이 쓴 <민옹(閔翁)전>을 보면 그의 나이 18세에 심한 우울증에 걸려 <음식 먹기도 싫고 밤에 잠도 오지 않아 몹시 고통을 겪었다>는 고백이 나옵니다. 그래서 당시 일흔 세 살의 민씨 할아버지라는 의원을 초대했는데 연암의 병증을 듣고 난 그 민옹이 대뜸 <음식을 싫어한다니 당신은 곧 부자가 되겠고, 더구나 밤에 잠이 오지 않는 다니 남보다 곱절을 사는 게 아니오? 복도 많소이다!>하며 유쾌한 해학으로 연암의 우울 모드를 변환시켜 밝은 정서로 나오게 했다고 적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250년 전 연암 박지원이 자신의 임상 경험을 통해 제시한 우울증 치료 혹은 자살 방지책은 민옹과 같은 적극적인 대화의 원리였던 겁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결정적인 것은 역시 2천 년 전 주님이 제시하신 신앙적 원리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어거스틴은 인간이란 원래 <무로부터 창조>(creatio ex nihilo) 되었기 때문에 누구나 그 깊은 내면에 허무에 대한 원초적 그리움이 있다고 했습니다. 폴 틸리히는 그게 바로 불안의 실체고 우울증이고 자살의 유혹이라고 합니다. 어거스틴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는 당신의 품에 안겨 쉬기 전까지는 진정한 평안이 없습니다>(고백록 1권 1장). 그렇습니다. 폴 틸리히의 말처럼 우리는 참 존재이신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으므로 존재에도 참여하고, <무로부터 창조>되었으므로 허무에도 한 발을 딛고 있는 경계선상의 존재입니다. 따라서 어느 쪽으로 투신하느냐가 영원한 허무냐 영원한 존재냐를 결정합니다.
부디 허무의 유혹을 물리치시고 어거스틴처럼 주님의 품에 안기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