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전쟁의 북소리



최근 미국에서는 그동안 오바마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에 대해 너무 소극적으로 대응해 왔다는 비판과 함께 <말만 하지 말고 보다 과감한 군사적 수단을 동원하라>며 전쟁을 부추기는 듯한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습니다. 요즘 국내 매체에도 원점 타격이니 참수작전이니 하는 섬찟한 전쟁 용어들이 공공연하게 등장하지만 미국도 그렇습니다. 킬 체인(선제 공격), 레짐 체인지(체제교체) 같은 말들이 부쩍 많이 쓰이면서 며칠 전에는 미국의 어떤 싱크탱크에서 전직 합참의장이 북한에 대한 선제 타격의 필요성을 강하게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냉전체제가 붕괴되면서 미국의 군수산업이 극도로 위축되자 큰 손 무기상들이 움직이면서 의회와 군부에 집중적인 로비를 펼쳐 전쟁을 충동질하고 있다는 지적도 영 근거 없는 소리는 아닐 테지만 새삼 인간사 속의 악의 뿌리를 도려내는 일이 이토록 어렵구나 하는 상념에 곤혹스러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실은 그래서 주님의 메시지도 언제나 악의 외양보다는 그것의 뿌리를 향해 가차없이 진격해 들어가십니다. 율법주의자들이 인간 행동의 외면적 방식에 주목했다면 주님은 자칫 그런 것들이 내포할 수 있는 사악한 위선을 폭로하시며, 무엇보다 먼저 인간의 영혼이 가난하고 투명해지는 것이 이 세상 모든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임을 선언하셨습니다. 

이윽고 밤이 왔습니다. 그리고 주님이 그 어둠 속으로 끌려가셨습니다. 모두가 열광하며 전쟁의 북소리를 울릴 때 홀로 평화를 외치시던 분, 물질의 힘으로 세상을 사는 것이 대세인 시대에 홀로 정신의 성숙이 갖는 의미를 가르치시던 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여론 속에서도 오직 홀로 용서를 실천하시던 분, 모두가 보복의 칼날을 갈고 있는 세상을 향해 오직 사랑의 촛불을 밝히시던 주님이 그 밤의 한복판으로 끌려가셨습니다. 제자들에게도 그것은 이제까지의 확신이 상실되는 순간이자 신앙의 걷잡을 수 없는 붕괴며 악의 세력이 주도권을 행사하는 현실에 대한 불가피한 승인이었습니다. 

베드로가 멀찍이서 주님을 따릅니다. 말하자면 주님과 자신 사이에 안전거리를 확보한 것입니다. 따르기는 해야겠고 제대로 따르자니 세상이 두려워 그렇게 멀찍이서 흉내만 낸 것입니다. 그것은 오늘날 많은 교회들의 엉거주춤한 모습이자 영락없는 우리 모두의 신앙현실입니다. 주님이 침 뱉음과 주먹질과 온갖 모욕과 수모를 다 당하시며 심문 받는 동안 베드로는 대제사장의 집 안마당까지 들어가 하인들과 함께 숯불을 쬐고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우리나라를 결코 전쟁에 직면하도록 내버려 두시지는 않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전쟁의 북소리에 모두가 다투어 깃발을 올릴 때 끝까지 그 가락에 춤추지 않고 평화와 사랑을 외칠 용기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불을 쬐고 있을 때 하인 하나가 그를 알아보고 기관원처럼 날카롭게 추궁했습니다. <아, 너도 평화를 외치며 원수를 사랑하라고 한 저자와 한 패지? 맞지?> 졸지에 평화와 사랑이 죄로 몰리는 기막힌 상황인데도 베드로는 결국 세 번이나 거푸 주님을 모른다며 잡아뗐습니다. 

믿는 자들은 끝까지 평화를 합창해야 합니다. 
평화의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평화의 촛불을 켜고 전쟁의 바람이 부는 광야에서 목숨을 걸고라도 원수됨의 벽을 허무신 주님을 내가 아노라고 고백해야 합니다. 결코 그분의 평화의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결국 베드로처럼 닭 우는 소리가 들릴 때 전쟁의 잿더미에 앉아 통곡하게 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