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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18m 네 이름이 무엇이냐?(창 32:22-32)

20160918m
창 32:22-32
네 이름이 무엇이냐?

[22] 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23]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너가게 하며 그의 소유도 건너가게 하고 [24]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25]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26]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27]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28]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29] 야곱이 청하여 이르되 당신의 이름을 알려주소서 그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내 이름을 묻느냐 하고 거기서 야곱에게 축복한지라 [30] 그러므로 야곱이 그 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이르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31]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32] 그 사람이 야곱의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쳤으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금까지 허벅지 관절에 있는 둔부의 힘줄을 먹지 아니하더라

여러분은 구약 성경의 인물 가운데 누구를 가장 좋아하십니까? 어떤 이는 이삭을 좋아합니다. 요셉을 좋아하기도 합니다. 사무엘, 다니엘, 엘리야, 다윗, 솔로몬을 좋아합니다. 저는 신앙생활의 철이 들면서부터 가장 절망했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입니다. 그대 앞에만 서면 나는 왜 이리 작아지는가? 라는 노래처럼 제가 꼭 그랬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느 날 하나님이 명하시자 아무 저항 없이 본토와 아비 집을 떠났습니다. 당시는 고향을 떠난다는 건 죽음을 뜻합니다. 하나님이 100세에 얻은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 했을 때도 저항하지 않고 이삭의 목에 칼을 댔습니다. 저는 아브라함만 생각하면 기죽습니다. 믿는다는 게 이런 것이라면 나는 틀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아닙니다. 야곱을 생각하면 나도 해볼만 하다는 용기를 얻게 됩니다. 저는 야곱을 가장 좋아합니다. 

잘 아는 대로 유대인은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을 자신들의 뿌리로 삼습니다. 물론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 아브라함입니다. 그에 못지 않은 인물이 야곱입니다. 그들은 야곱의 새 이름인 이스라엘로 자신의 국호를 삼습니다. 우리가 다 야곱의 후예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은 12지파로 구성됩니다. 그게 바로 야곱의 12아들이 원조입니다. 야곱이라는 인물이 실제 유대 민족사에 얼마나 깊은 영향을 미칩니까. 

그럼에도 우리가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은 그들이 야곱을 소개하는 모습입니다. 조금도 야곱을 미화하지 않습니다. 그의 약점, 한계, 모순을 무서우리만치 적나라하게 폭로합니다. 자신의 역사나 조상에 대해서는 과는 숨기고 공은 과장하는 게 상식입니다. 구약은 그런 모습이 안 보입니다. 야곱을 각색하지 않고 원색적으로 드러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째서 하나님은 야곱 같은 영악한 사람을 이스라엘의 조상으로 삼으셨을까? 생각합니다. 아브라함이나 이삭은 괜찮은데 야곱은 좀 의구심이 든다는 겁니다. 야곱의 인생 역정에는 하나님의 깊은 메시지가 깃들어 있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은 야곱의 유명한 기도 장면입니다. 세상에서 이 기도만큼 충격적인 기도도 없습니다. 야곱의 이 기도만큼 더 전투적이고 공격적이고, 투쟁적인 기도는 없습니다. 야곱의 얍복나루터 기도보다 더 호전적인 기도는 없습니다. 오죽하면 성경은 이 기도를 하나님과의 씨름, 싸움이라고 했겠습니까? 야곱은 기도의 조상이라 부르는 이유도 그는 기도의 명불허전이어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야곱의 얍복강가의 기도에도 숨은 진실이 있습니다. 이것을 알아야 야곱의 기도의 진수를 제대로 알 수 있습니다. 

얍복나루터의 씨름의 주체가 누구입니까? 본문 24절입니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씨름의 주체가 어떤 사람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입니다. 25절 상반절도 마찬가집니다.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렇습니다. 모든 재산과 사랑하는 가족을 얍복강 건너로 먼저 보내고, 홀로 그 나루터에 남아 절망하는 야곱에게 처음 씨름을 걸어 온 분은 하나님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야곱을 이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야곱에게 져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이 고의로 져주시기 위해 야곱에게 도전장을 내민 씨름이 얍복나루터의 씨름입니다. 하나님이 야곱과 씨름해서 졌다는 게 말이 안 됩니다. 하나님과 겨뤄서 이길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고의로 씨름을 거시고 일부러 져주셨습니다. 여러분, 모래판의 최강자인 천하장사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놀랍게도 천하장사의 세 살 먹은 자기 아들입니다. 아버지가 일부러 져주기 때문입니다. 아들의 기를 살리려고 말입니다. 세 살짜리 아들이 자기 아버지를 쓰러뜨리고 나면 기가 나서 자꾸만 더 하자고 합니다. 얍복나루터에서 낙심천만한 야곱에게 져주신 하나님이 그에게 새로 주신 이름이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과 겨루어서 이겼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겨뤄서도 이긴 사람인데 이 세상에서 두려울 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아무리 저 강 건너편에서 형 에서가 400명과 함께 보복하러 달려오고 있다 한들 그게 무슨 적수가 되겠습니까? 이제는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과 겨뤄서 이긴 사람입니다. 천하에 더는 맞수가 없습니다. 원래는 하나님과 겨루어 졌다고 해야 상식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겁니다. 말이 안 됩니다.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하나님이 낙심한 자기 자식 구하려고 하십니까? 나는 져도 괜찮다. 무시를 당해도 괜찮고, 부디 너나 빨리 기운을 차리고 용기를 내어 새 출발해라. 내 바람은 자나깨나 그것 하나 밖에는 없다. 여러분, 하나님이 야곱에게 씨름을 거시고 그 씨름에서 기꺼이 져주시고, 새 이름을 주신 것은 그로 하여금 재기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새 출발을 하게끔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새로운 인생의 장을 열어주시려고 그랬습니다. 우리도 저 강을 건너기 전에 여기에서 내게 씨름을 걸어오시는 주님을 치열하게 만나고, 주님을 깊이 체험하고 강을 건너냐 합니다. 내게 져주시고, 내게 새 이름을 주시고, 나로 하여금 새 출발하도록 복 주시는 주님을 꼭 뵙고 우리 앞에 놓인 저 강을 건너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하나의 전제가 있습니다. 27절입니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하나님이 새삼 야곱의 이름을 물으십니다. 하나님이 몰라서 물으신 게 아닙니다. 네가 어떤 사람이고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고백하라는 뜻입니다. 회개하라는 뜻입니다. 자백하라는 것입니다. 지난 삶을 청산하고, 강을 건너서부터는 그야말로 새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런 촉구에 비로소 그가 <야곱>이라고 답합니다. 야곱은 <발목을 잡은 자>라는 뜻입니다. 사기꾼, 약탈자, 강도라는 뜻입니다. 실제 야곱은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형의 발목을 잡고 나와 결국 형의 장자권을 빼앗고, 눈 먼 아버지를 속여 장자의 축복을 빼앗고, 외삼촌 라반을 속여 그의 많은 재산을 자기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얍복은 <자신을 비우다, 다 털어놓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얍복나루터에서 그간의 치부를 다 털어놓고 그의 속을 다 비우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밤새도록 씨름하며 촉구하지만, 야곱이 말을 듣지 않아서, 날이 새는데도 고집을 꺾지 않아서, 그의 엉치뼈를 치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회개하지 않고 끝까지 고집을 부리면 우리의 환도뼈를 쳐서 치명상을 입히십니다. 날이 새려고 하는데도 버티고 반항하면 결국 결정타를 날립니다. 야곱은 그제서야 <예, 제가 야곱입니다>라고 자백합니다. 버티고 버티다가 새벽녘에야 고백합니다. 맞습니다. 저로 말하면 사기꾼, 협잡꾼, 강도요 절도자 야곱입니다. 오늘까지 그렇게 살아왔다고 고백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비로소 복을 주십니다. 새 이름을 주십니다. 이제는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제가 야곱입니다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자에게 새 이름을 주십니다. 새 삶을 허락하십니다. 새 출발할 수 있는 기회를 베푸십니다. 제가 야곱입니다고 회개하자 하나님은 다시는 야곱이라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시는 야곱으로 살지 말고, 깨끗이 청산하고, 오직 이스라엘로 살라는 겁니다. 늘 하나님을 상대하며 살라고 하십니다. 언제나 우리에게 져주실 태세가 되어 있고, 언제나 우리에게 새 출발할 수 있도록 하실 수 있는 하나님만 상대하며 살라는 겁니다. 사람과 겨루어 이기지 말고 하나님과 겨루어 이기며 살라고 하십니다. 

저 얍복강 건너편에서 분노한 형 에서가 달려오고 있습니다. 얼마나 두렵고 좌절이 크십니까?우리는 얍복나루에서 꼭 주님과 씨름해서 허벅지 뼈가 나가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옛 사람을 청산하고 가야 합니다. 어떻게는 얍복나루터에 옛 과거를 묻고 가야 합니다. 31절입니다. “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비록 엉치뼈가 골절되어 절었지만, 저 얍복 나루터에 떠오르는 아침 해가 환하게 그를 비춥니다. 야곱의 얍복나루터의 기도가 여러분의 기도, 새 출발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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