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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904n 기도하실 때 (눅 3:21-22)

20160904n

눅 3:21-22

기도하실 때

 

[21]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주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고 기도하실 때 체험한 사건입니다. 21절을 보십시오.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게 반드시 주님의 것만이 아니라는 겁니다. 주님이시기 때문에 특별히 이런 체험을 하신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성도라면 누구나 이런 영적 체험이 가능하다는 겁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약속된 보편적인 영적 체험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세례 받고 기도하실 때 경험한 초자연적 사건을 좀 더 구체적으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우선 하늘이 열립니다(21하반절). 사람은 누구나 하늘을 이고 삽니다. 문제는 어떤 이는 그 머리 위에 하늘이 열려 있고, 어떤 이는 그 머리 위에 하늘이 닫혀 있습니다. 식물은 머리를 땅에 박고 삽니다. 땅에서 온갖 것을 섭취하며 삽니다. 짐승도 오직 땅만 내려다보고 거기서 먹이를 찾습니다. 사람은 아닙니다. 사람은 머리를 하늘에 두고 삽니다. 하늘로부터 모든 것을 공급 받아야 합니다. 모든 게 하늘로부터 조달 되어야 합니다. 헬라말로 안트로포스(anthropos)를 사람이라고 하는데, 뜻은 머리를 하늘로 두고 사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 머리 위의 하늘은 늘 활짝 열려 있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하늘로부터 취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가 답답하고, 우울하고, 절망합니까? 하늘문이 닫혀 있어서 그렇습니다. 내가 쓰고 사는 하늘이 닫혀 있으면 우선 하나님과 소통이 안 됩니다. 내가 아무리 기도해도 하늘에 상달되지 않습니다. 문이 닫혀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아무리 내 소원을 고해도 그게 하나님께 전달이 안 됩니다. 하늘이 닫혀 있으면 하늘로부터 아무것도 공급 받지 못하기에 우리 영혼이 갈급할 수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머리 위의 하늘이 열릴 수 있을까요? 주님처럼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할 때 하늘이 열립니다. 스데반도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말라며 기도할 때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선 것을 봤습니다. 엘리야도 기도할 때 하늘이 열려 하늘에서 불도 내리고 비도 내렸습니다. 기도가 하늘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하늘문을 열어야 합니다. 하늘문을 활짝 열어놓고 예배해야 열납됩니다. 기도도, 찬양도 마찬가집니다. 하늘문을 활짝 열어야 하늘의 모든 보화가 내 것이 됩니다. 말라기 3장을 보면, 내가 하늘문을 열고 쌓을 곳이 없도록 복을 붓지 않나 보라고 합니다. 닫힌 하늘을 이고 사는 성도보다 불행한 사람은 없습니다. 기도의 계절이 왔습니다. 기도합시다. 모두 다 내 머리 위의 하늘문을 엽시다. 올 가을도 가장 건강하고 풍성하고 신령하게 사는 비결입니다.

 

또한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 같이 강림하십니다(22절). 주님이 세례 받으실 때는 아직 성령의 시대가 아니었기에 주님이 기도하실 때 구체적으로 성령이 강림하셨습니다. 지금 이 시대는 성령 강림 이후이기에 우리가 기도해도 이런 식으로 강림하시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성령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도할 때 성령의 강한 역사를 체험합니다. 평소에는 내 안에 계신 성령이 정적으로 계시지만, 우리가 기도할 때 역동적으로 역사합니다. 내 안의 성령이 당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십니다. 기도할 때 이미 강림해서 내 안에 계신 성령의 존재를 다시 한 번 뜨겁게 확인합니다. 신자들 대부분은 이론적으로는 이것을 수긍합니다만, 그 사실을 체험적으로 실감하지는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하면 정태적으로 계시던 성령이 역동적으로 역사하십니다. 이 시대 성도들의 한계가 바로 그것입니다. 성령이 계시는데도 아무 느낌이 없습니다. 성령이 내 안에 계심을 체험하지 못합니다.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비로소 성령이 역사하시기에 가장 좋은 환경이 조성됩니다. 성령은 내 안에 계시는데 내가 딴전을 부리면 성령이 내 안에서 사역을 못하십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은 내 안에 계신 성령의 역사를 제한하고 위축시키는 행위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성령충만하고, 기도하는 사람이 성령의 은사를 체험하는 이유는 바로 그러한 성령과 기도의 함수관계 때문입니다. 기도하실 때 성령이 형체로 비둘기 같이 강림했다는 것을 허투루 들으면 안 됩니다. 기도합시다. 기도를 통해 내 안에 계신 성령을 뜨겁게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22절 하반절). 주님은 변화산에 올라가 기도하실 때도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웠겠습니까? 이게 우리 귀에 생생하고 쟁쟁하게 하늘로부터 들려왔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더욱이 이때는 주님이 공생애를 시작하는 시점이었는데, 얼마나 위로와 격려가 되었겠습니까? 무엇을 더 바라고 원하십니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기뻐하신다는데 무엇을 더 바랄 게 있겠습니까? 주님은 기도하다가 이런 생생한 음성을 들었습니다. 여러분도 이 가을에 기도하다가 이런 하나님의 생생한 육성을 듣고 큰 위로와 산 소망을 가슴에 품고 살아가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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