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904m 새벽 빛 같이 (호 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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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6:1-3
새벽 빛 같이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3]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3절의 새벽 빛은 일출 때의 여명을 말합니다. 여호와 그분이야 말로 새벽 빛 같이 동일하신 분임을 바르게 깨닫자는 겁니다. 개역개정은 어김이 없다고 되어 있는데, 이전의 개역 성경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을 보면 이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여러분, 새벽 빛 동해 일출을 보십시오. 얼마나 동일하고 일정합니까? 유사 이래 해가 뜨지 않은 나라는 없습니다. 여호수아 때 잠시 멈춘 적은 있어도 안 뜬 적은 없습니다. 해가 동일하지 않고 조금씩 뜨거워지거나 식었다면 이 지구 생태계에 파국이 왔을 겁니다. 요즘 지구 온난화로 남북극의 빙산이 녹고, 그것 때문에 자연재해가 닥쳐 여러 문제가 발생했습니다만, 그것은 해가 일정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온실 가스 때문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새벽 빛은 언제나 동일합니다. 따라서 그 새벽 빛 같은 하나님을 우리가 힘써 알자고 본문은 말합니다.
우리가 여기서 반드시 알아야 할 새벽 빛 같은 하나님의 은총이 무엇입니까?
우선 구원입니다. 구원의 은총입니다. 본문 1절 이하입니다. “
[1]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2]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우리를 낫게 하시고, 싸매시고, 살리시고, 일으키시고, 하나님의 면전에서 살아가게 하시는 구원의 은총이 새벽 빛처럼 일정하고 동일하다는 겁니다.
제가 자주 여쭤봅니다만, 우리가 받은 구원의 근거가 무엇일까요? 우리 구원의 베이직이 무엇일까요? 보통은 당연히 믿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매우 맞는 답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 우리의 구원이 자주 흔들릴까요? 우리 구원이 우리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믿을 때는 확신이 넘칩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이란 결코 새벽 빛 같지 않습니다. 동일하지 않습니다. 조석으로 변하고, 때로는 겉잡을 수 없이 저 밑바닥으로 추락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정말 믿을 수 없는 게 우리의 믿음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구원도 춤을 춥니다. 우리 믿음이 흔들리면 구원도 흔들립니다. 믿음 좋을 때는 받은 것 같던 구원도 믿음이 식으면 다 상실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구원은 그렇지 않습니다. 구원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시고 동일하신 하나님의 절대적인 은총에 근거한 것이기에 절대 왔다갔다하지 않습니다. 결코 우리의 변덕스런 믿음과 연동된 게 아닙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하나님이 새벽 빛처럼 일정하신 것 같이 구원도 일정합니다. 에베소서 1장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창세 전에 우리를 자녀 삼아 주셨다고 합니다. 로마서 5장은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잘 믿고 회개하고 기도하고 착하고 의롭게 살 때가 아니라 우리가 전혀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갈 때 하나님이 이미 당신의 주권적 은총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구원은 내 믿음이 아니라 전적으로 새벽 빛 같으신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절대적 은총에 근거된 것이기에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합니다. 구원을 받았다고 느끼다가 때로는 안 받았다고 느껴지는 것은 내 감정의 느낌일 뿐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총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새벽 빛 같기에 내 구원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말은 허풍일 수 있지만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은 진실입니다. 하나님이 새벽 빛처럼 영원히 동일하시기에 우리 구원도 동일합니다. 오늘 본문은 그 사실을 깨닫자는 겁니다. 우리가 여호와를 알되 힘써 여호와를 알자는 겁니다.
다음은 사랑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새벽 빛 같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 1절입니다.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제가 좋아하는 찬송가 393장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오 신실하신 주 내 아버지여 늘 함께 계시니 두렴 없네. 그 사랑 변찮고 날 지키시니, 어제나 오늘이 한결같네. 히브리서 13장 5절입니다.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이 말씀이 무슨 얘기를 하다가 나왔습니까? 돈 얘기하다가 나왔습니다. 돈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가장 잔인한 폭군이 돈입니다. 공공의 적이란 영화 보셨지요? 그것 잘 된 영화입니다. 그 영화가 말하는 공공의 적은 자기 부모를 살해하고, 무고한 자를 해친 이성재가 공고의 적입니까? 그 영화의 메시지는 돈이 공공의 적입니다. 왜 이성재가 제 부모를 그렇게 잔인하게 살해했습니까? 돈 18억 때문입니다. 그제 김수천 현직 부장판사가 구속 되었습니다. 진경준 현직 검사장에 이어 현직 부장판사까지 구속되었습니다. 전직 검사장 홍만표도 다 구속되었습니다. 이미 실형을 부장판사도 많습니다. 21세기 백주 대낮에 이런 나라가 지구촌에 또 있을까요? 현직 검사장, 부장판사들이 돈 받아서 줄줄이 엮여 감방에 들어갔습니다. 양심과 정의의 보루를 법원이나 법관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마저도 돈에 자기 영혼을 다 팔아버렸습니다. 돈이 공공의 적입니다. 돈을 다 때려잡아야 합니다. 이성재나 전직 검사장, 전현직 부장 판사들은 다 돈의 하수인에 불과합니다. 돈이 원수입니다. 원래 돈은 사람을 비굴하게 하고, 사기치게 하고, 강도짓하게 하고, 부모자식 다 살해하게 만듭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평생 돈을 짝사랑합니다. 돈을 숭배하고 물불 안 가리고 돈을 좇습니다. 맘모니즘을 숭배하다 그 광신도로 죽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돈이 아니라 평생 주님만을 사랑해야 합니다. 돈 사랑하다가는 다 죽는다는 게 주님의 가르침입니다. 새벽 빛 같이 영원히 동일하게 사랑하실 분은 오직 주님 뿐이기에 주님 만을 바라봐야 합니다. 부모와 자식, 부부의 사랑이 절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사랑은 동일하시고 새벽 빛 만큼이나 변함 없고 절대적입니다. 그 사실을 우리가 힘써 알고 새삼 깊이 깨닫자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말씀이 일정하고 동일합니다. 이사야는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 말씀은 영원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새벽 빛처럼 어김이 없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오직 하나님 말씀에 복종하면서 살아야 할 이유입니다. 예를 들면 불교의 자비라는 가르침도 참 좋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는 불교에 비해 매우 배타적이고 독단적입니다. 우리는 사용하는 언어부터 극단적입니다. 다 죄인이고 다 죽을 놈이라고 합니다. 툭하면 사탄아 물러가라고 합니다. 무시무시한 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게 진리라고 믿고 가르칩니다. 종교는 다 같은 것이니 너나 나나 다 진품으로 치자는 데 우리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평화주의가 아니라 무책임한 것입니다. 현미경을 들이대서라도 진품과 유사품을 제대로 가려야 합니다. 이런 것을 두고 왜 배타적이라고 합니까? 마지막 한 문제까지도 정답과 오답을 가리자는 게 독선은 아닙니다. 진품은 하나입니다. 다른 것은 유사품입니다. 너무 완벽해서 전문가도 잘 구분할 수 없으니까 진품으로 생각하자고 할 수는 없습니다. 불교 기독교 유교 이슬람 힌두교가 다 남을 사랑하고 선을 추구하자고 하니 종교다원주의로 가자고 하는 게 옳은 주장입니까? 절대 그럴 수는 없다는 게 기독교의 배타성입니다. 이것도 저것도 다 좋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조심하셔야 합니다. 어차피 나도 가짜인데 남도 가짜면 어때라는 게 그런 사람들의 입장입니다. 절대 관대해서가 아닙니다. 서로 속아주며 적당히 담합하고 공모하자는 수작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결코 그런 것과 타협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진리가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기독교가 왜 진리입니까?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성자라 불리고 성현이라 불리는 사람도 이단 사상가들도 다 시들 수밖에 없습니다. 새벽 빛 같이 일정한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과 영원히 함께 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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