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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14m 토기장이 (롬 9:7-21)

20160814m

롬 9:7-21

토기장이

 

[7]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8]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9] 약속의 말씀은 이것이니 명년 이 때에 내가 이르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심이라 [10] 그뿐 아니라 또한 리브가가 우리 조상 이삭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는데 [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16]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17] 성경이 바로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일을 위하여 너를 세웠으니 곧 너로 말미암아 내 능력을 보이고 내 이름이 온 땅에 전파되게 하려 함이라 하셨으니 [18]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19] 혹 네가 내게 말하기를 그러면 하나님이 어찌하여 허물하시느냐 누가 그 뜻을 대적하느냐 하리니 [20]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여러분 이삭이 누구입니까? 아브라함의 아들입니다. 그는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독자입니다. 이삭이 아브라함의 독자라고 합니다. 창세기 22장 16절 이하입니다. “[16] 이르시되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히브리서도 이삭을 아브라함의 독자라고 합니다. 이스마엘도 비록 첩의 자식이지만 아브라함의 장남입니다. 당연히 아브라함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만,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7절입니다.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불리리라 하셨으니.” 창세기 21장을 보면 더욱 가혹합니다. 이삭이 태어나나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으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괴로워합니다. 결국 하갈과 이스마엘은 내쫓깁니다. 이스마엘과 이삭은 지금의 이스라엘과 팔레스틴의 원조가 됩니다. 이스마엘의 후손인 이슬람은 지금까지도 아랍 동맹을 형성해 사막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이삭의 후예 이스라엘은 이삭이 자신의 조상이라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제기되는 질문은 하나님은 왜 이삭을 통해서만 당신의 기업을 잊게 하십니까?

 

이삭의 두 아들인 에서와 야곱은 또 뭡니까? 본문을 보면 내가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을 사랑했다고 합니다. 본문 8절입니다.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정실의 자녀냐 첩의 자녀냐가 아니라 약속의 유무입니다. 약속의 자녀란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녀입니다. 쌍둥이인데 하나님이 야곱을 사랑하시고 에서를 미워하신 것은 본문 11절 이하에 나옵니다. “11] 그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12]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13]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에서와 야곱이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이 이미 야곱을 택하사 그를 사랑하시고 에서는 미워하신 겁니다. 한 배에서 난 한 형제라고 해서 그 운명이 같은 게 아닙니다. 약속의 아들이냐 아니냐가 이스마엘과 이삭, 에서와 야곱을 가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늘 거꾸로 생각합니다. 비록 동생이지만 무서운 집념으로 장자권을 빼앗고 필사적으로 하나님과 겨뤄 이겼기에 하나님의 기업을 쟁취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초급반입니다. 중고급반은 실은 그 반대라는 겁니다. 야곱은 이미 태어나기 전부터 택하신 자녀이기에 그 운명이 치열했다는 겁니다. 우리도 믿어서 택함 받은 게 아니라 창세 전부터 택함을 받았기에 어거지로라도 신앙생활하고 있습니다. 뭔가 싹수가 보여서 남보다 주님을 잘 믿어서 택함을 받은 게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태어나기도 전에 약속의 자녀로 택해주셔서 믿고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택함, 구원이 먼저고 믿음이 나중입니다. 믿음이 구원의 전제가 아니라 구원의 결과요 물증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 1장 15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이미 어머니 태부터 나를 택하셨기에 이방인의 사도가 되게 하셨다는 고백입니다. 얼마나 정확하고 올바른 고백입니까? 남보다 똑똑해서, 잘 나서가 아닙니다. 이미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택하셨기에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다는 겁니다. 예레미아 1장 5절입니다.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여러분, 야곱이 아버지 이삭에게서 장자에게서 훔친 축복을 아시지요 진짜 이삭이 야곱에게 감쪽같이 속인 걸까요? 아버지 이삭이 속아준 사건아닙니까? 생각해 보십시오. 이삭이 쌍둥이를 낳은 때가 60세 때입니다. 야곱이 아버지를 속일 때는 그 나이 20세 때입니다. 이삭의 나이 80세 때쯤, 야곱이 장자권을 뺐습니다. 그런데 이삭은 그 이후 100년을 더 삽니다. 아무리 감각이 무뎌지고 눈이 어두워졌다해도 80세에 속았다는 겁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야곱은 염소 가죽을 팔에 감아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이삭은 음성은 야곱인데 팔은 에서라고 합니다. 속아 준 겁니다. 저처럼 둔감한 사람도 세례식 때 가발인지 아닌지 압니다. 야곱은 고기를 사냥해온 것이라고 합니다. 집에서 기르는 짐승과 야생 짐승은 다릅니다. 그런데도 이삭은 어설프게 에서 행세를 한 야곱에게 속아 줍니다. 지금도 야곱은 아버지를 속였다고 생각하지만, 아버지가 더 고수입니다. 이삭은 야곱이 쇼를 하고 있는 걸 알고 당해줍니다. 왜냐면 그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에서가 아니라 야곱임을 말입니다. 그 하나님의 뜻에 승복하여 야곱에게 마음껏 속아주면서 하나님의 구속사에 협조한 겁니다.

 

어째서 처음부터 에서는 안 되고 굳이 야곱입니까? 행위가 아니고 일방적인 것이라면 에서가 아닌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간적으로는 에서가 더 훨씬 매력이 있습니다. 남자답고 말입니다. 그래서 어머니 리브가는 팥죽 쑤는 야곱을 더 좋아하고, 아버지 이삭은 사냥하는 에서를 더 좋아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어째서 야곱을 사랑하셨을까요? 불가사의합니다. 누구도 풀 수 없는 신비입니다. 오늘이 광복기념주일이고 내일이 광복 71주년입니다. 저는 지금도 일본은 온갖 미신에 빠져 살까? 생각합니다. 왜 하나님은 굳이 우리나라 사람을 고집하실까? 그렇다고 우리가 잘 믿는 게 아닌데 말입니다. 이 또한 불가사의합니다. 본문 14절이하입니다. “[14]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하나님께 불의가 있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15]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이것은 하나님의 고유한 주권행위라고 강변하십니다. 20절 이하입니다. “[20]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21]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엿장수가 1분에 가위를 얼마를 치든 그건 엿장수 마음입니다. 토기장이가 진흙 한 줌으로 무슨 그릇을 만들든 그건 토기장이 마음입니다.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를 미워하신 것, 이스마엘을 미워하고 이삭을 택한 것, 일본 사람을 버리고 우리나라를 사랑하신 것은 신성불가침의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겐 오직 감사할 것 뿐입니다. 우리가 잘 믿어 구원을 얻고 택함을 받았다면 더 말할 게 없습니다만, 우리가 잘 하는 게 없는데도 택하셨다면 그저 감사할 것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그렇게 하신 겁니다.

 

부디 하나님의 토기장이로서의 절대 주권과 선택의 권한을 바르게 이해하셔서 늘 감사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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