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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03w 사무엘상 강해 7(삼상 4:1-11)

20160803w 사무엘상 강해 7

삼상 4:1-11

 

[1] 사무엘의 말이 온 이스라엘에 전파되니라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들은 아벡에 진 쳤더니 [2]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전열을 벌이니라 그 둘이 싸우다가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패하여 그들에게 전쟁에서 죽임을 당한 군사가 사천 명 가량이라 [3]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4] 이에 백성이 실로에 사람을 보내어 그룹 사이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의 언약궤를 거기서 가져왔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하나님의 언약궤와 함께 거기에 있었더라 [5] 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영에 들어올 때에 온 이스라엘이 큰 소리로 외치매 땅이 울린지라 [6] 블레셋 사람이 그 외치는 소리를 듣고 이르되 히브리 진영에서 큰 소리로 외침은 어찌 됨이냐 하다가 여호와의 궤가 진영에 들어온 줄을 깨달은지라 [7] 블레셋 사람이 두려워하여 이르되 신이 진영에 이르렀도다 하고 또 이르되 우리에게 화로다 전날에는 이런 일이 없었도다 [8] 우리에게 화로다 누가 우리를 이 능한 신들의 손에서 건지리요 그들은 광야에서 여러 가지 재앙으로 애굽인을 친 신들이니라 [9] 너희 블레셋 사람들아 강하게 되며 대장부가 되라 너희가 히브리 사람의 종이 되기를 그들이 너희의 종이 되었던 것 같이 되지 말고 대장부 같이 되어 싸우라 하고 [10] 블레셋 사람들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 명이었으며 [11]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지난주는 3장을 함께 봤는데, 하나님이 직접 12살쯤 된 사무엘을 부르시는 장면을 상고했습니다. 사무엘이 처음에는 엘리 제사장이 부르는 줄 알고 달려갔다가, 마침내 하나님과 대화합니다. 하나님은 엘리 집안을 심판하겠다고 하십니다. 엘리가 자기의 아들들이 저주를 자청해도 금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오늘은 4장입니다. 1절입니다. “이스라엘은 나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우려고 에벤에셀 곁에 진 치고 블레셋 사람들은 아벡에 진 쳤더니.”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침공한 블레셋과 전쟁하기 위해 에벤에셀 곁에 진을 치고, 블레셋은 아벡에 진을 쳤는데, 아벡은 이스라엘 땅입니다. 전황이 심상치 않은 겁니다. 블레셋은 원래 가나안 원주민이 아닙니다. 그들은 처음부터 가나안 남부 해변에 살던 사던 사람입니다. 지중해 해안에 살던 도시국가였습니다. 그 도시들이 하나의 연맹을 결성해 국가를 이룬 겁니다. 그러면서 그들은 영토 확장을 위해 이스라엘과도 늘 대립관계에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블레셋이 이스라엘을 침공했습니다.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진을 치고 전쟁을 벌였는데, 이스라엘이 패합니다. 2절 하반절입니다. “그 둘이 싸우다가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패하여 그들에게 전쟁에서 죽임을 당한 군사가 사천 명 가량이라.” 이스라엘이 크게 패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장로들이 모여 궁리하다가 기발한 모험 하나를 착안합니다. 3절 하반절입니다.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실로에 하나님의 성막이 있습니다. 그 안에는 언약궤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이 언약궤를 갖고 와서 전쟁터에 메고 나가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승리하게 하시지 않겠는가 라는 겁니다. 기발하면서도 너무도 인간적인 생각을 하게 됩니다. 3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전쟁은 하나님에 손에 달렸다고 이스라엘은 생각했습니다. 이것까지는 맞습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 점은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패전에 대한 처방은 전혀 엉뚱했던 겁니다.

 

이스라엘은 블레셋에 패전한 후 자신을 성찰해야 했습니다. 왜 하나님이 전쟁을 통해 이토록 뼈아픈 징계를 내리셨는지를 살펴야 했습니다. 회개하는 게 옳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회개는커녕 전쟁터에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고 나갈 생각만 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은 수많은 전쟁을 했습니다. 그런데 전쟁에서 패할 때는 항상 이스라엘의 죄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범한 이스라엘의 허물 때문에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패했음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전력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여간 반역하다가 그들은 항상 패전의 쓴잔을 마셨습니다. 그럼에도 장로들이 전쟁에 패한 원인을 분석하고 처방을 내린 게 실로에 있는 하나님의 성막에서 언약궤를 가져와 전쟁터에 메고 나가면, 하나님이 전쟁에서 우리로 하여금 승리하게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언약궤를 메고 나간다는 것은 하나님을 직접 모시고 나간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모시고 전쟁터에 나가니 설마 하나님이 우리에게 패전을 안기시겠는가 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올바른 선택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의 그런 결정에 따라 실로에 있는 언약궤를 메고 왔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1차전보다 더 참혹했습니다. 10절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각기 장막으로 도망하였고 살륙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 보병의 엎드러진 자가 삼만 명이었으며.” 3만이 죽었습니다. 11절도 보십시오.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이스라엘 군대가 완전히 박살났습니다. 게다가 하나님의 언약궤마저 빼앗겼습니다. 하나님이 포로가 된 겁니다. 블레셋은 그 언약궤를 가져가 자신들의 다곤 신전에 감금합니다. 초유의 사태입니다. 하나님이 적의 포로가 된 겁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두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나의 이익과 승리를 위해 절대 하나님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장로들이 전쟁터에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져 가자고 결정한 것은 전쟁의 승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3절을 다시 봅니다. “백성이 진영으로 돌아오매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 이 3절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우리”입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왜 가져오겠다고 합니까? 순전히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오직 우리를 위해 언약궤를 실로에서 가져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 언약궤가 우리를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는 겁니다. 본문 어디에도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지, 하나님이 우리의 이런 결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하나님의 뜻을 묻고 고민하고, 그분의 뜻을 위한 배려는 없습니다. 오직 우리뿐입니다. 우리의 유익, 승리, 구원을 위해 언약궤를 가져와 최대한 이용하자는 겁니다. 이런 신앙을 우리는 기복신앙이라고 합니다. 오직 우리의 구원, 축복을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는 신앙이 기복신앙입니다. 기복신앙에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하나님이 무엇을 바라시는지, 하나님이 무엇을 가장 좋아하시는지 등등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오직 기복신앙은 우리와 우리의 소원만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보다는 우리가 최우선입니다. 하나님의 뜻보다는 내 소원이 최우선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이 그랬습니다. 그러면 안 되지 않습니까? 그런 신앙은 바른 신앙이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는 우리보다 하나님이 먼저입니다. 우리의 소원보다 하나님의 뜻이 최우선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높이고 하나님의 소원을 위한 과정에서 하나님이 베푸시는 은혜와 복을 우리가 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축복, 구원, 승리를 위해 하나님을 끌어와서 이용했습니다. 그런 신앙이 옳지 않다는 게 백일하에 확인이 된 겁니다. 그 전쟁에서 패했으니까 말입니다. 하나님은 오히려 참패를 안기셨습니다. 하나님을 그렇게 믿으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오히려 하나님의 목적, 하나님의 뜻에 우리가 이용당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소원에 우리가 복무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 우리가 누리는 복입니다. 그러나 당시 이스라엘은 철저하게 자신들의 승리를 위해 하나님을 이용하려 들었기에 참패를 면치 못하고, 심지어는 하나님까지도 빼앗기고 맙니다. 이것이 기복신앙의 최후입니다. 나를 위해 하나님을 동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위해 내가 동원을 당해야 합니다. 내 소원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이 희생하기를 바라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내가 희생하고 헌신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내게 보상을 하십니다. 이것이 진정한 복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위해 자신을 완전히 내려놓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전쟁에는 패하게 하시더라도 언약궤까지는 적에게 빼앗기게 하신 것이 너무 하신 게 아닌가 라고 생각합니다. 고대시대의 전쟁은 신들의 전쟁이었습니다. 우리의 신과 적들의 신의 전쟁이라고 보았습니다. 모두 자기들의 신의 이름을 걸고 싸웠습니다. 전쟁에서 이기면 자기 신이 이겼다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블레셋도 마찬가집니다. 이스라엘 군대의 언약궤를 빼앗아 그들의 다곤 신전 안에 감금함으로써 완벽한 다곤신의 승리로 받아들였습니다. 하나님은 도대체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얼마든지 그런 극단적인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사실 나중에는 그 언약궤가 스스로 이스라엘로 돌아옵니다. 이스라엘이 언약궤를 찾아온 게 아니라, 블레셋이 언약궤를 감당치 못해 반납한 겁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전쟁에서 패하게 하시고, 언약궤마저 블레셋에게 빼앗기게 하셨을까요? 그런 전무후무한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로 하여금 많은 것을 깨닫게 하려는 이유였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위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하십니다. 자기의 독생자도 십자가에 매다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그런 충격적인 패배와 다시 없을 참패를 통해 이스라엘로 하여금 깊은 깨달음을 갖게 하려고 당신 스스로 적에게 포로가 되는 비극도 감수하신 겁니다. 완전히 자신을 비우고 바닥으로 스스로 내려앉으신 겁니다. 무엇이 문제고, 무엇을 잘못했고, 어떤 허물과 죄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마저도 적에게 빼앗기고, 풍비박산에 직면했는가를 뼈저리게 돌아보며, 회개하고 자복하게 하려고 그런 처절한 고난을 당하신 겁니다. 하나님은 기꺼이 그렇게 하십니다. 그럴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시면 자신을 완전히 비우시고 스스로 적에게 포로가 되시기까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스스로 자신들을 돌아보게 하십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새 출발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4장에 나오는 이스라엘의 참혹한 패전과 실패에는 하나님의 깊은 뜻이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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