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31m 우리의 본보기(고전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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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10:1-7
우리의 본보기
[1]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3]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5]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6]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7]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본문 1절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에게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않는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났다고 합니다. 구름 아래는 구름의 인도를 받았다는 뜻입니다. 2절은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라고 합니다. 바로에게 속해 있다가 모세에게 속해서 세례를 받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홍해를 건넌 사건을 두고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는 요즘 약식으로 물을 찍어 바르며 세례를 받고 있고, 주님은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셨는데, 과거 이스라엘은 홍해 한가운데를 건너며 세례를 받았다고 합니다. 세례는 내 옛 사람을 수장했다, 물에다 매장했다, 나의 죄와 흠을 물로 씻었다는 뜻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야말로 바다 한가운데를 통과했으니 제대로 세례를 받은 겁니다. 홍해를 통과해 뭍으로 올라가는 순간 새 사람으로 거듭난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우리도 과거에는 다 애굽에서 마귀의 노예로 살았습니다. 세상의 종으로 살았습니다. 우리도 세상을 탈출해 홍해를 건너게 하십니다. 과거 이스라엘은 홍해를 건너며 세례를 받고, 우리는 세례를 받음으로 홍해를 건넙니다.
우리가 홍해를 건넜다는 사실은 중요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하나님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넜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의미심장합니다. 홍해를 건넜다는 사실은 세례를 뜻하는 것 외에도 다른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제는 두 번 다시 애굽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홍해의 진정한 뜻은 배수의 진이라는 데 있습니다. 일단 한 번 건너면 절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강이 홍해입니다. 루비콘 강은 한 번 건너면 다시 돌아갈 수 없는데, 바로 그러한 강입니다. 출애굽 때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불과 몇 개월이면 가나안 땅까지 갈 수 있는 지중해안 길로 이끌지 않으시고, 굳이 남쪽 시내광야 쪽으로 인도해서 홍해를 건너게 하신 것에는 깊은 뜻이 있습니다. 더는 애굽에 대해 미련을 갖지 말라, 더는 애굽으로 뒤돌아보지 말라, 이제는 애굽을 완전히 체념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세례도 바로 그런 의미의 의식입니다. 더는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세례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다시는 애굽으로 돌아갈 수 없는 홍해를 건넌 것입니다. 이제는 오직 앞만 바라보고 가나안을 향해 진군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굳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남쪽으로 인도해 홍해를 건너게 하신 겁니다. 지중해안길로 가나안으로 갔으면 얼마나 빠르게 갔는지 모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르면 절대 굶거나 헐벗지 않습니다. 우리의 본보기라는 과거 이스라엘을 보십시오. 본문 3절입니다.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신령한 음식을 먹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신령한 음식은 이것입니다. 출애굽기 16장입니다. 1절 이하입니다. “[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 산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둘째 달 십오일이라 [2] 이스라엘 자손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3]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아 있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해 내어 이 온 회중이 주려 죽게 하는도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지 한 달 보름 만에 엘림과 시내산 사이 신광야에 이르렀을 때, 양식이 떨어졌습니다. 사실 급하게 애굽에서 나왔습니다. 충분히 사전에 시간을 두고 준비해서 나온 게 아닙니다. 서둘러 나오는 바람에 불과 한 달 반 만에 양식이 떨어졌습니다. 성인 남성만 60만이니 여인과 어린아이를 다 합하면 200만이 넘었을 겁니다. 게다가 짐승도 함께 있습니다. 사막에서 200만이 양식이 떨어졌으니 난리가 났습니다. 백성들이 모세와 아론에게 몰려가 원망합니다. 괜히 너희가 우리를 애굽에서 끌어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한다며 아우성을 쳤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이렇게 하십니다. 4절입니다.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14-15절도 보십시오. “[14]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가는 것이 있는지라. [15] 이스라엘 자손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 31절도 보십시오. “이스라엘 족속이 그 이름을 만나라 하였으며 깟씨 같이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더라.” 35절도 보십시오. “사람이 사는 땅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사십 년 동안 만나를 먹었으니 곧 가나안 땅 접경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만나를 먹었더라.” 농사도 물고기도 잡을 수 없는 광야를 40년간 유랑하며 하나님이 새벽마다 내리시는 만나를 먹으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40년간 광야에서 야영하며 살았지만 기아로 죽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죽은 사람은 있어도 굶어 죽은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도 지금 광야생활 중입니다. 그래서 사실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우리 처지를 비교하면 안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우리가 애굽 땅에서는 고깃가마 곁에서 살며 항상 배불리 먹었는데, 이 광야에서 굶어죽게 생겼다며, 차라리 애굽에서 죽었다면 더 나았을 것인데, 출애굽해서 이 고생을 한다며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애굽에서 살 때와 계속 비교한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세상 사람들은 애굽에서 살고 있고, 우리는 지금 광야를 유랑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광야생활이 열악하다 하여 세상 사람을 부러워하거나, 옛 애굽생활을 그리워하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광야를 유랑하는 동안에는 환경은 열악하나 하나님은 반드시 신령한 음식인 만나를 허락하사 절대 우리를 굶어죽지 않게 하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보십시오. 처음에는 만나를 꿀 섞은 과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렇게 변합니다. 민수기 11장 4절 이하입니다. “ [4] 그들 중에 섞여 사는 다른 인종들이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손도 다시 울며 이르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랴 [5]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6] 이제는 우리의 기력이 다하여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 이제 싫증이 난다는 겁니다. 먹을 게 다양했던 애굽을 자꾸만 그리워하는 겁니다. 심지어는 작당을 해서 애굽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음에도 반역을 꾀했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뭔가 좀 낙이 있고, 선택의 여지가 있어야 하는데, 다양한 먹거리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사람 사는 재미인데, 믿는 사람에게는 그런 게 없다는 겁니다. 먹을 것이라고는 오직 만나 뿐이고, 눈 앞에는 오직 사막뿐입니다. 얼마나 건조하고 삭막합니까? 많은 분이 이걸 못 견뎌 합니다. 재미 없어서, 숨이 막혀서 신앙생활 못하겠다는 겁니다. 요즘 청년과 학생들이 교회를 기피하는 이유도 교회는 재미없고 따분하다는 겁니다. 진부하고 고루하다는 겁니다. 세상에는 더욱 즐길 거리가 많다는 겁니다. 그것은 맞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민수기 21장 5절을 보면, 드디어 불만과 원성이 하늘을 찌르며 폭발합니다. “[5]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여기서 말하는 하찮은 음식은 만나입니다. 신령한 음식 만나가 이제는 하찮은 음식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주식도 만나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만나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주식입니다. 떡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이 일용할 양식입니다. 교회에서는 밤낮 말씀뿐이냐? 이게 여러분의 불만이지요?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진 신령한 음식인 만나입니다. 아침에도 점심에도 저녁에도 말씀을 드셔야 합니다. 말씀에 소홀하면 이 광에서 결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민수기 11장 6절을 보면 왜 밤낮 만나뿐이냐며 불평하며 모세에게 대들던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진노하사 그들에게 불뱀을 보내 물려 죽게 하십니다. 만나에 대해 투정하지 말고 오히려 감사하십시다. 말씀이 이 혹독한 무더위와 메마른 광야에서 살아남게 할 신령한 음식입니다.
다음은 본문 4절입니다.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신령한 음식에 이어 신령한 음료를 마셨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만나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음료가 필요합니다. 요즘 30도를 넘어서는 무더위로 밤낮으로 고생을 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43-45도까지 올라가는 광야에서 40년을 살았습니다. 시내광야는 비도 잘 안 옵니다. 그러니 물에 대한 절실함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실제 그들은 툭하면 물 때문에 아우성을 쳤고, 모세와 하나님을 많이 원망했습니다. 민수기 20장 2절 이하입니다. “[2] 회중이 물이 없으므로 모세와 아론에게로 모여드니라 [3] 백성이 모세와 다투어 말하여 이르되 우리 형제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을 때에 우리도 죽었더라면 좋을 뻔하였도다 [4]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회중을 이 광야로 인도하여 우리와 우리 짐승이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 [5]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 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 이렇게 데모를 하자 하나님은 그때마다 모세를 통해 반석에서 샘이 솟게 하여 해갈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허락하신 신령한 음료였습니다. 양식이 없어 굶어죽은 사람이 없었듯이 40년 광야생활을 하면서도 기갈 때문에 죽은 사람도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어떻게든 하나님은 필요할 때마다 신령한 음료를 허락하셨습니다. 이것이 당시 이스라엘 백성에게 허락하신 신령한 음료였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신령한 음식이요 만나인 말씀뿐 아니라 신령한 음료도 마셔야 합니다. 그런데 본문 4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솟아나는 생수를 마셔야 합니다. 주님이 야곱의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하신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주님이 주시는 신령한 음료입니다. 이 음료를 드십시오. 주님이 주시는 신령한 생수를 마셔야 무더운 여름을 건강히 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약속하신 신령한 음료는 어떤 것입니까? 신령한 음식은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신령한 음료는 이것입니다. 요한복음 7장 37절 이하입니다.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성령이 신령한 음료입니다.
말씀과 성령이 우리의 신령한 음식이요 음료입니다. 말씀과 성령은 우리에게 생존이 필수요소입니다. 우리는 지금 광야생활을 하고 있기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신령한 음식과 음료를 먹고 마셔야 삽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기까지 신령한 음식과 음료로 살았듯이 우리도 그렇게 천국에 들어가기까지 오직 말씀과 성령으로 살아야 합니다. 부디 말씀과 성령이라는 신령한 음식과 음료가 여러분의 삶과 생애를 더욱 풍성하고 강건하게 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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