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 뽑기(잠 16:20-33)
읽기 설정
미리보기 인용
복사되는 내용은 인용 정보와 미리보기 주소다.
현재 미리보기 주소:
제비 뽑기
잠 16:20-33
2011.06.18
성경에는 제비뽑기가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을 뜻을 묻는 수단으로 흔히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제비뽑기야 말로 가장 원초적이고 원색적인 성서적 의사결정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들은 소위 <민주적 방식>이라는 미명하에 다수결로 결의 하지만 거기에는 어쩔 수 없이 여러 인간적인 요소가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따라서 다윗 시대에는 성을 파수하는 문지기까지도 다 제비로 결정했고, 신약 때는 가롯 유다를 대신할 사도를 뽑을 때도 제비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한 가지 중요한 전제가 있습니다. 공동체 성원 모두의 하나님 섭리에 대한 절대적 신뢰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그게 하나님의 뜻임을 믿어 의심치 않고 거기에 전적으로 승복하는 섭리신앙이 투철해야지 만약 그렇지 않으면 제비뽑기란 한갓 로또에 지나지 않으며 무책임하고도 황당한 도박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33절).
명철함과 미련함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22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임을 믿는 사람은 결국 그 <명철>이 <생명의 샘>이 되고, <미련함>은 결국 하나님의 <징계>가 된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아무리 흘러도 다함이 없고,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는 생명의 샘, 그래서 명철한 자,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충만한 자는 결코 기갈에 빠지지 않고 그 영혼이 시들지 않으며 늘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잎사귀가 청정합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신뢰보다는 자신의 약은 꾀로 삽니다. 그리고 늘 자신의 선택이 가장 현명한 줄 착각합니다. 물론 당장은 이익인 것 같고, 덕이 될 것 같고, 손해가 될 것 같지 않지만 미련한 자의 결정은 근본적으로 이기적이고, 몰염치하고, 비열하고, 악하므로 결국은 하나님의 진노와 징계를 피하지 못합니다. 부디 명철함으로 생명의 샘을 얻을지언정 미련함으로 하나님의 징계를 자초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마십시오.
꿀 송이 같은 말과 불같은 입술
<선한 말은 꿀 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24절).
<불량한 자는 악을 꾀하나니 그 입술에는 맹렬한 불같은 것이 있느니라>(27).
선한 말은 마치 꿀 송이와도 같아서 뼈에 양약이 된다고 합니다. 매사에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며 제비뽑기를 해도 그 결과에 깨끗이 승복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주님의 뜻으로 확신하기 때문에 굳이 악한 말이나 불량한 입술을 놀릴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줄 믿기 때문에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불량한 자>는 늘 남을 해치거나 때로는 죽이는 불같은 입술로 무자비하게 악을 도모합니다. 섭리신앙의 대가인 요셉의 꿀 송이 같은 말을 한 번 들어 보십시오.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창45:5).
패역한 자와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
<패역한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말쟁이는 친한 벗을 이간하느니라>(28절).
하나님의 섭리를 믿지 않고 불같은 입술을 놀려 남을 함부로 해치는 패역한 자는 가는 곳마다 불화를 조장하고 사람들을 이간시켜 서로 다투고 반목하게 합니다. 또한 멀쩡한 이웃을 꾀어 함께 악한 길을 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제비는 뽑지만 모든 일을 결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고 믿는 슬기로운 사람들은 늘 자기 마음을 바르게 관리하며 노하기도 더디합니다.
그래서 이런 자들이야 말로 <용사보다, 성을 빼앗는 자 보다>낫다고 합니다.
부디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을 믿으십시오. 그래서 노하기보다 자제하고, 강포하기보다 마음을 다스리셔서 성을 빼앗는 자보다 더 복되고 명철한 자로 살아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