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703n 역설적 감사(고후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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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03n
고후 1:3-11
역설적 감사
[3]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4]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5]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 같이 우리가 받는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6] 우리가 환난 당하는 것도 너희가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요 우리가 위로를 받는 것도 너희가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니 이 위로가 너희 속에 역사하여 우리가 받는 것 같은 고난을 너희도 견디게 하느니라 [7] 너희를 위한 우리의 소망이 견고함은 너희가 고난에 참여하는 자가 된 것 같이 위로에도 그러할 줄을 앎이라 [8]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여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9]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10]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 [11]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3절입니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본문 마지막 절인 11절 하반절도 보십시오.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본문은 찬송으로 시작해 감사로 끝납니다. 중요한 것은 3절과 11절 사이를 보십시오. 매 절마다 환난과 고난이 나옵니다. 심지어는 사형선고라는 말도 나오고, 큰 사망이란 말도 나옵니다. 바울이 여기서 말씀하는 찬송과 감사는 환난 중에도 하나님께 바치는 찬송, 고난 중에도 주님께 올리는 감사입니다. 즉 역설적 감사입니다. 보통은 일이 잘 돼야, 하던 일이 성공해야 감사를 합니다. 시련이 오거나 시험이 닥치면 찬송하고 감사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고난과 환난 중에도 찬송하고 감사하라고 합니다. 오전 예배시간에도 말씀드렸듯이, 우리는 능히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감사할 수 있습니까? 그런데 감사할 수 있고, 감사해야 옳다고 합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씀하는 찬송과 감사는 역설적인 찬송이요 감사입니다.
많은 사람이 환난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또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위로를 체험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환난을 통해 하나님의 특별한 위로를 체험할 수 있기 때문에 환난 중에도, 고난 중에도 하나님을 찬송하고 감사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이 당하는 환난은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요 복입니다. 내가 병들고 사업에 실패하고 버림받고 마음에 상처 입고 고통당할 때, 주님은 특별한 관심과 연민으로 나를 위로해 주십니다. 3절 하반절입니다.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4절 상반절입니다.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가 환난 당할 때 주님은 우리 가장 가까이에 다가 오십니다. 스펄젼은 고통보다 주님이 더 내 가까이에 계신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우리가 환난을 당하면, 성령은 비상체제에 돌입하십니다.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습니다. 나와 함께 아파하시고, 나와 함께 울어주십니다. 나와 함께 그 시련을 당해주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내가 시련 당할 때 내가 가장 강할 때라고 했습니다. 환난 중에도 위로의 주님을 만나십시오. 그러면 그 환난은 더는 불행이 아니라 은혜요 복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도 바울처럼 환난 중에도 진심으로 감사하며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습니다.
환난을 통해 고난 당하는 이웃을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기에 환난 중에도 고난 중에도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4절 하반절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환난을 겪어본 사람만이 환난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환난을 겪어본 사람만이 환난 당하는 사람을 진심으로 위로할 수 있습니다. 환난은 우리로 하여금 성숙하게 하고, 인간미 넘치게 합니다. 주님이 우리의 위로자가 될 수 있는 것도, 주님이 친히 수많은 환난과 상처를 당해보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멸시, 천대, 모욕, 환난의 정점까지 가셨던 분이십니다. 그래서 주님은 우리의 모든 환난을 가장 잘 이해하십니다. 그래서 주님만이 진정한 우리의 위로자가 되십니다. 우리가 먼저 고난을 겪고 환난을 당해봐야 비로소 주님처럼 고난당하는 이웃을 진심으로 위로하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환난이야말로 감사해 마땅한 주님의 은혜입니다.
환난은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만들고, 주님을 더욱 신뢰하도록 하기에 충분히 감사할만한 가치가 있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9절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사형 선고를 받은 줄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생각해 보십시오. 바울의 그 환난이 얼마나 처절하고 절망스러웠으면, 자기가 사형선고를 받았다고 느꼈겠습니까? 이제는 죽었구나. 이제는 더는 희망이 없구나. 여기서 이렇게 죽는구나. 바울은 그런 순간을 수없이 겪었다는 겁니다. 사실입니다. 어떤 때는 돌에 맞아 혼절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가 죽었다고 성 밖 쓰레기 더미에 버렸습니다. 거기서 깨어나 다시 성에 들어가 전도했습니다. 왜 하나님이 바울에게 환난을 주셨습니까? 바울로 하여금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려고 그렇게 했다는 겁니다. 그러니 어찌 그게 은혜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다윗을 보십시오. 그는 사울에게 쫓겨다니며 하나님만 의지했을 때는 수많은 주옥 같은 찬양을 썼습니다. 그러나 그가 왕이 되고 나서는 한 편의 시도 못 썼고, 그러다가 밧세바 사건이 터집니다. 그러고 나서야 참회와 탄원의 시를 씁니다. 록펠러는 33세에 이미 백만장자가 되었고, 43세 때는 미국 최고 갑부가 되었고, 53세 때는 세계 최고의 부호가 됩니다. 그런데도 그는 행복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불치병으로 머리털과 눈썹이 빠지고 몸은 말라갔습니다. 결국 어느 날 주치의 6명이 종합소견을 내는데, 1년 이상 살 수 없다고 합니다. 그 사형선고를 53세에 받은 겁니다. 그날 밤, 록펠러는 침대에서 내려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기도로 새벽을 맞이했습니다. 그의 기도 내용은 이렇습니다. 제게 조금만 시간을 주셔서 죽음을 준비하고 주님을 뵐 여유를 달라고 했습니다. 그날부터 록펠러의 인생이 바뀝니다. 교회부터 짓습니다. 뉴욕 맨해튼의 리버사이드 처치가 그때 지은 겁니다. 록펠러 재단을 서둘러 만듭니다. 거기에 자기의 모든 재산을 내놓습니다. 지금도 록펠러 재단이 관여하지 않는 세계적인 사회사업은 없습니다. 그때부터 그의 건강이 날이 갈수록 좋아졌습니다. 마침내 그는 약을 끊고 오직 기도에 전념했습니다. 의사들은 1년 밖에 남지 않았으니 마지막을 준비하라고 최후통첩을 했는데, 록펠러는 98세까지 삽니다. 주님은 오직 주님만을 절대 의뢰하게 하려고 환난을 주십니다.
부디 여러분의 시련이나 아픔은 다 주님을 전적으로 바라보라는 하나님의 복임을 깨달으시고, 절망보다는 오히려 감사하고 찬송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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