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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20160619m </p>
<!-- paragraph:p0002 -->
<p class="p1">갈 5:1</p>
<!-- paragraph:p0003 -->
<p class="p1">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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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05 -->
<p class="p1">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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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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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금주 말이 6.25 66돌입니다. 우리 교단에서는 6.25주간 주일을 북한선교주일로 지킵니다. 북한 동포를 위해 기도하면서 통일과 민족 화해를 염원해 왔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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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09 -->
<p class="p1">성경의 주요 메시지 가운데 하나가 자유입니다. 본문을 다시 보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굳건히 그 자유를 지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합니다. 5장 13절도 보십시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 자유가 무엇입니까? 주님이 우리에게 자유를 주셨고, 우리가 자유를 누려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다고 했는데, 자유가 무엇입니까?</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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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11 -->
<p class="p1">바울은 자유란 개념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먼저 어린아이와 성인을 비교합니다. 갈라디아서 4장 1절 이하입니다. “[1]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2] 그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에 있나니.” 어린아이는 물론 종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완전한 자유인도 아닙니다. 유대사회에서는 12세 이하 아이는 법적으로 자유인 취급을 받지 못하고, 청지기나 후견인의 보호를 받아야 했습니다. 즉 종은 아니지만 종과 다름없었습니다. 12세가 되고 성인식을 치러야 명실상부한 자유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우리에게 말씀하는 자유는 어린아이가 아닌, 12세 이상된 성인의 자유를 가졌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자유는 한 사람의 책임적 주체로서의 자유, 성인의 자유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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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13 -->
<p class="p1">뿐만 아니라 바울은 종과 아들도 비교합니다. 4장 6절 이하입니다. “[6]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종은 자유인이 아니지만, 아들은 언제나 아들입니다. 아들은 날마다 개망나니 짓을 해도 아들이고 자유인입니다. 종도 마찬가집니다. 아무리 착하고 성실해도 종은 종일뿐 아들이 아닙니다. 자유인이 아닙니다. 아무리 못나게 굴어도 아들이 종 되는 법은 없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어엿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면서, 떳떳하고 당당한 자유인으로 살라고 합니다. 물론 때로는 사고도 치고, 종보다 더 못나게 굴며 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신분은 아들이요 자유인이지, 절대 종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도 자꾸만 종을 자처하며 스스로 종의 멍에를 메려하고, 자진해서 비굴하게 종노릇을 하려 한다는 게 바울의 안타까움입니다. 4장 9절입니다.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노릇 하려 하느냐.”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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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15 -->
<p class="p1">사실 자유니 해방이니 하는 말보다 추상적인 개념도 없습니다. 바울도 이 사실을 잘 알았기에, 어린아이가 아닌 성인의 자유가 어떤 것인지를 보다 분명히 하려고 그게 과연 무엇으로부터의 자유고, 해방인지를 밝힙니다. </p>
<!-- paragraph:p0016 -->
<p class="p1">성경이 말씀하는 자유는 우선 율법으로부터의 자유요 해방입니다. 바울 당시 갈라디아교회가 안고 있던 큰 문제는 율법주의였습니다. 율법주의는 복음도 믿어야 하지만 율법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는 주장입니다. 세례도 받아야 하지만 할례도 받아야 의로워진다는 주장입니다. 이런 율법주의자들을 향해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2절 이하입니다. “[2] 보라 나 바울은 너희에게 말하노니 너희가 만일 할례를 받으면 그리스도께서 너희에게 아무 유익이 없으리라 [3]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4]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참으로 통렬한 비판이고, 엄중한 책망입니다. 우리는 율법으로부터 해방된 사람들입니다. 더는 율법의 구속을 받지 않습니다. 더는 율법의 종이나 노예가 아닙니다. 율법에서 완전히 놓여난 자유인입니다. 전에는 십계명을 지키고, 모세5경을 지키고, 할례를 받고, 돼지고기를 안 먹어야 의로워지고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우리 주변에 율법주의자들이 없지 않습니다. 고행이나 수도생활을 장려하고 공덕을 축적하라고 강조하기도 합니다. 안식일을 중요시하고, 성경에 나온 부정한 음식을 가려 먹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주의로는 절대 의롭게 되거나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게 성경의 가르침이고 바울의 역설하는 바입니다. 저 사람은 너무 착해서 예수 안 믿어도 얼마든지 천당 갈 수 있다는 말은 상대적으로 그 사람이 착하다는 것이지, 그것으로써 천국 갈 수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아무리 착하다 해도 하나님 기준을 충족해 천국 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모두가 도토리 키 재기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16절입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율법으로 의로워지고 구원을 얻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공자도 부처도 도덕 군자도 안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율법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다는 게 복음입니다. 율법, 행위, 윤리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지만, 믿음을 통해서는 얼마든지 의로워지고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게 복음의 핵심 가르침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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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18 -->
<p class="p1">그러면 궁금한 것이 생깁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얻으니까, 율법으로부터 해방된 자유인이니, 우리에게 더는 율법이 필요 없습니까? 우리가 더는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좋은가? 라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우리는 율법에서 놓여난 자유인들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율법 무용론자, 율법 폐기론자가 아닙니다. 복음의 화신이신 주님조차도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 줄로 오해하지 말라고 합니다. 율법을 완성하러 오셨다고 했습니다.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율법을 폐기 처분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이제는 그 용도가 달라졌을 뿐입니다. 전에는 우리가 구원을 받으려고 율법을 지켰지만, 이제는 거룩해지려고, 성화를 위해서 율법을 지킵니다. 전에는 강제로 율법을 지켜야 했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감사해서 스스로 자발적으로 율법을 지킵니다. 율법의 용도가 이전과는 근본적으로 달라졌습니다. 심하게 말하면, 율법을 안 지켜도 구원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키면 그만큼 성화됩니다. 따라서 복음도 믿고 율법도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는 율법주의도 틀렸지만, 우리는 이제 복음으로 구원을 얻었기에 율법 폐기하자는 것도 잘못된 겁니다. 복음 시대를 사는 오늘도 여전히 율법은 유효합니다. 구원이 아니라 성화를 위해서 말입니다. 율법으로부터 자유하시되, 율법을 버리지는 마십시오. 그래서 여러분의 삶이 더욱 거룩해지기를 바랍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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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20 -->
<p class="p1">성경이 말씀하는 자유는 죄로부터의 자유를 뜻합니다. 로마서 8장 1절 이하입니다.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합니다. 생명과 성령의 법이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완전히 해방시켰다고 합니다. 이보다 놀라운 자유의 의미, 해방의 의미는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으면서도 여전히 죄를 짓습니다. 죄를 끊은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이전처럼 죄를 잘 짓습니다. 오죽하면 바울 사도도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않고, 원치 아니 하는 바 죄를 짓는다’며 비명을 질렀습니다. 그것도 바울이 개종 초기가 아니라 사도된 지 20년도 더 되어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이런 고민, 자기분열, 갈등이 없습니까? 왜 이러한 모순이 발생합니까? 사실 이 문제로 가장 재미를 본 사람들이 구원파입니다. 구원파에서는 왜 믿는 사람이 죄를 짓는다고 합니까? 아직 완전하게 구원을 받지 못해서 그렇다고 합니다. 따라서 완전하게 구원 받으면 절대 더는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 완전한 구원을 얻기 위해 한 때 기성교회에서 그리로 많이 넘어갔습니다. 특히 열심히 있는 분들이 많이 넘어갔습니다. 속지 마십시오. 거짓말입니다. 구원 받았다고 죄에서 해방되었다고 죄 안 짓는 사람은 없습니다. 바울은 구원 받고 사도가 된 지 20년이 넘어서도 악만 행한다고 괴로워했습니다. 그것은 죄에서 완전히 해방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옛 삶의 관성 때문입니다. 더는 죄의 종이 아니지만, 더는 마귀의 하수인이 아니지만, 전에 죄의 종으로 살던 때의 탄력, 가속도 때문에 여전히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에 대해 죽고 해방되었다는 말은 우리의 소속, 신분, 지위, 정체성이 달라지고 새로워졌다는 뜻이지, 우리의 정서, 기호, 죄에 대한 미련이나 향수까지 한순간에 다 해소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죄에 대한 향수가 있습니다. 놀라운 죄에 대한 친화력이 우리 육체에 아직 남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보십시오. 애굽에서 해방되어 광야로 나왔습니다. 더는 노예가 아닙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끊임없이 애굽의 노예생활을 그리워하며 거기로 돌아가자고 시위하고 선동했습니다. 이것은 옛 사람의 잔재 때문에 나타난 금단현상이지, 실제 죄의 종이어서 그런 일이 발생한 것은 아닙니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이 말씀을 깨닫고 바울이 안도하며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바쳤습니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어 생명과 성령의 법의 지배를 받는 사람은 더는 죄의 법에 정죄함을 받을 일이 없습니다. 그 법 자체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생명의 법, 성령의 법, 구원의 법만 있습니다. 어떤 죄도 더는 우리를 정죄할 수 없습니다. 이게 바로 우리가 죄에 대해 죽었다, 죄로부터 해방되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로부터 자유라는 말씀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p>
<!-- paragraph:p0021 -->
<p class="p2"><br></p>
<!-- paragraph:p0022 -->
<p class="p1">우리가 자유인이라는 것은 세상 초등학문으로부터 해방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 9절 이하입니다. “[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10]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바울 당시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은 율법과 죄뿐 아니라 세상 초등학문으로부터도 완전히 자유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천박한 초등학문은 희랍문화권에서 유행하던 점성술을 가리킵니다. 날을 따지고 절기를 따지고 별자리를 보는 것 말입니다. 예수를 믿으면서도 날을 따지고 별점을 쳤습니다. 그래서 새번역 성경은 초등학문을 원시종교, 미신이라고 했습니다. 요즘도 이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 다니면서도 사주도 보고 궁합을 따지고, 정초에는 토정비결을 봅니다. 심지어는 신문에 나오는 오늘의 운세도 꼭 챙겨 봅니다. 그러면서 이것은 미신이 아니라 통계학이라면서 합리화합니다. 이런 것들이 다 유치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입니다. 우리는 이런 것들로부터 자유한 사람이고 해방된 사람입니다. 그런 것들에 구속을 받지 않아도 되는데, 스스로 원시종교의 지배를 받으려고 합니다. 당시 갈라디아교회 성도들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이렇게 안타까워한 것입니다. </p>
<!-- paragraph:p0023 -->
<p class="p2"><br></p>
<!-- paragraph:p0024 -->
<p class="p1">우리는 자유인입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세상 초등학문, 미신에 끌려다니지 마십시오. 손 없는 날 따지지 마시고, 손 있는 날 더 저렴하게 이사하십시오. 오늘의 운세 보는 시간에 성경 요절 한 절이라도 더 보십시오. 철학관 같은 데 가서 작명하지 마십시오. 이런 게 다 쓸 데 없는 운명철학이고 세상 초등학문이고 유치한 원시종교, 미신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어찌 다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 그것에 종 노릇하려고 하느냐고 했습니다. 다시는 비굴한 종의 멍에를 메지 마시고, 언제나 종이 아닌 아들로, 어린아이가 아닌 성인으로 사십시오. 하루 속히 통일이 이루어져 북녘의 동포들도 진정한 자유인으로 살아가기를 기원합니다.</p>
<!-- paragraph:p0025 -->
<p class="p1"><br></p>
<!-- paragraph:p0026 -->
<p class="p1"><br></p>
<!-- paragraph:p0027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a href="https://www.youtube.com/embed/ADwp5svqmuw" title="미디어 원본"></a></sp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