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615w 사사기 강해 22 (삿 21:1-25) 최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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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15w 사사기 강해 22
삿 21:1-25
[1]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맹세하여 이르기를 우리 중에 누구든지 딸을 베냐민 사람에게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2] 백성이 벧엘에 이르러 거기서 저녁까지 하나님 앞에 앉아서 큰 소리로 울며 [3]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스라엘에 이런 일이 생겨서 오늘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없어지게 하시나이까 하더니 [4] 이튿날에 백성이 일찍이 일어나 거기에 한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더라 [5] 이스라엘 자손이 이르되 이스라엘 온 지파 중에 총회와 함께 하여 여호와 앞에 올라오지 아니한 자가 누구냐 하니 이는 그들이 크게 맹세하기를 미스바에 와서 여호와 앞에 이르지 아니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라 하였음이라 [6]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형제 베냐민을 위하여 뉘우쳐 이르되 오늘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끊어졌도다 [7] 그 남은 자들에게 우리가 어떻게 하면 아내를 얻게 하리요 우리가 전에 여호와로 맹세하여 우리의 딸을 그들의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 하였도다 [8] 또 이르되 이스라엘 지파 중 미스바에 올라와서 여호와께 이르지 아니한 자가 누구냐 하고 본즉 야베스 길르앗에서는 한 사람도 진영에 이르러 총회에 참여하지 아니하였으니 [9] 백성을 계수할 때에 야베스 길르앗 주민이 하나도 거기 없음을 보았음이라 [10] 회중이 큰 용사 만 이천 명을 그리로 보내며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가서 야베스 길르앗 주민과 부녀와 어린 아이를 칼날로 치라 [11] 너희가 행할 일은 모든 남자 및 남자와 잔 여자를 진멸하여 바칠 것이니라 하였더라 [12] 그들이 야베스 길르앗 주민 중에서 젊은 처녀 사백 명을 얻었으니 이는 아직 남자와 동침한 일이 없어 남자를 알지 못하는 자라 그들을 실로 진영으로 데려오니 이 곳은 가나안 땅이더라 [13] 온 회중이 림몬 바위에 있는 베냐민 자손에게 사람을 보내어 평화를 공포하게 하였더니 [14] 그 때에 베냐민이 돌아온지라 이에 이스라엘 사람이 야베스 길르앗 여자들 중에서 살려 둔 여자들을 그들에게 주었으나 아직도 부족하므로 [15] 백성들이 베냐민을 위하여 뉘우쳤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지파들 중에 한 지파가 빠지게 하셨음이었더라 [16] 회중의 장로들이 이르되 베냐민의 여인이 다 멸절되었으니 이제 그 남은 자들에게 어떻게 하여야 아내를 얻게 할까 하고 [17] 또 이르되 베냐민 중 도망하여 살아 남은 자에게 마땅히 기업이 있어야 하리니 그리하면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사라짐이 없으리라 [18]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딸을 그들의 아내로 주지 못하리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맹세하여 이르기를 딸을 베냐민에게 아내로 주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 하였음이로다 하니라 [19] 또 이르되 보라 벧엘 북쪽 르보나 남쪽 벧엘에서 세겜으로 올라가는 큰 길 동쪽 실로에 매년 여호와의 명절이 있도다 하고 [20] 베냐민 자손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가서 포도원에 숨어 [21] 보다가 실로의 여자들이 춤을 추러 나오거든 너희는 포도원에서 나와서 실로의 딸 중에서 각각 하나를 붙들어 가지고 자기의 아내로 삼아 베냐민 땅으로 돌아가라 [22] 만일 그의 아버지나 형제가 와서 우리에게 시비하면 우리가 그에게 말하기를 청하건대 너희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그들을 우리에게 줄지니라 이는 우리가 전쟁할 때에 각 사람을 위하여 그의 아내를 얻어 주지 못하였고 너희가 자의로 그들에게 준 것이 아니니 너희에게 죄가 없을 것임이니라 하겠노라 하매 [23] 베냐민 자손이 그같이 행하여 춤추는 여자들 중에서 자기들의 숫자대로 붙들어 아내로 삼아 자기 기업에 돌아가서 성읍들을 건축하고 거기에 거주하였더라 [24] 그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그 곳에서 각기 자기의 지파,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갔으니 곧 각기 그 곳에서 나와서 자기의 기업으로 돌아갔더라 [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사사기 21장까지 왔습니다만, 어디에도 희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사기는 고대 이스라엘의 12사사들의 영웅적인 행적을 후손들에게 전하려는 목적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사사들의 실패담을 적어 놓고 있지는 않았을 겁니다. 오히려 사사기는 사사들의 죄악상, 인간적 실패담 등을 다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사기는 처음부터 기본 목적이 다른 데 있었습니다. 사사들의 치적 평가가 아니라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다 진멸하지 못한 원주민, 곧 이방민족들에게 이스라엘이 얼마나 괴롭힘을 당하고 고통을 당해야 했던 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사사기 1장 27절 이하입니다.
“[27] 므낫세가 벧스안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다아낙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돌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이블르암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므깃도와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들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하였더니 [28] 이스라엘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족속에게 노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 [29] 에브라임이 게셀에 거주하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게셀에서 그들 중에 거주하였더라 [30] 스불론은 기드론 주민과 나할롤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가나안 족속이 그들 중에 거주하면서 노역을 하였더라 [31] 아셀이 악고 주민과 시돈 주민과 알랍과 악십과 헬바와 아빅과 르홉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32] 아셀 족속이 그 땅의 주민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였으니 이는 그들을 쫓아내지 못함이었더라 [33] 납달리는 벧세메스 주민과 벧아낫 주민을 쫓아내지 못하고 그 땅의 주민 가나안 족속 가운데 거주하였으나 벧세메스와 벧아낫 주민들이 그들에게 노역을 하였더라 [34] 아모리 족속이 단 자손을 산지로 몰아넣고 골짜기에 내려오기를 용납하지 아니하였으며 [35] 결심하고 헤레스 산과 아얄론과 사알빔에 거주하였더니 요셉의 가문의 힘이 강성하매 아모리 족속이 마침내는 노역을 하였으며 [36] 아모리 족속의 경계는 아그랍빔 비탈의 바위부터 위쪽이었더라.”
이게 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척결하지 못했던 원주민들입니다. 아직 가나안 원주민이 이렇게 많이 남아있었습니다. 3장 1절 이하도 보십시오. “[1] 여호와께서 가나안의 모든 전쟁들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2]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남겨 두신 이방 민족들은 [3] 블레셋의 다섯 군주들과 모든 가나안 족속과 시돈 족속과 바알 헤르몬 산에서부터 하맛 입구까지 레바논 산에 거주하는 히위 족속이라 [4] 남겨 두신 이 이방 민족들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그들의 조상들에게 이르신 명령들을 순종하는지 알고자 하셨더라 [5]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은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가운데에 거주하면서 [6] 그들의 딸들을 맞아 아내로 삼으며 자기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고 또 그들의 신들을 섬겼더라.”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이스라엘은 가나안 이방 민족과 섞여서 살았습니다. 결국 사사기는 하나님이 그토록 당부하시고, 모세와 여호수아가 유언처럼 원주민을 진멸하라고 한 말씀을 거역하고, 원주민들과 타협하고 산 결과가 얼마나 끔찍했는지를 알리려고 기록한 겁니다.
사사기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습니다. <불순종과 타락-회개-구원자 사사 보냄-구원과 회복>이 사사기의 고유한 도식입니다. 말씀에 순종하고 복종하면 하나님의 복을 받고 구원을 누리지만, 끝까지 불순종하고 회개하지 않고 거역하면, 망하고 저주를 받는다는 사실을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통해 실질적으로 보여주시기 위해 사사기를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오직 여호와만이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라는 사실을 주지시키기 위해서 사사기를 기록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 백성을 당신이 직접 통치하고 다스리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저 이방나라들처럼 사람의 지배를 받고 사는 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통치 아래서만 살기를 바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언제나 이방나라들처럼 왕을 원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게 얼마나 어리석고 불행한 결과를 가져다 주는 것인지를 깨닫게 하시기 위해 사사기를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으로 들어갑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베냐민 지파와의 내전을 끝내고 모두 벧엘에 모여, 저녁까지 큰 소리로 울며 통회했다고 합니다. 2절 이하입니다. “[2] 백성이 벧엘에 이르러 거기서 저녁까지 하나님 앞에 앉아서 큰 소리로 울며 [3]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스라엘에 이런 일이 생겨서 오늘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없어지게 하시나이까.” 6절도 보십시오.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의 형제 베냐민을 위하여 뉘우쳐 이르되 오늘 이스라엘 중에 한 지파가 끊어졌도다.” 막상 전쟁을 끝내고 보니 베냐민 지파에 대한 응징이 너무 지나쳤다는 겁니다. 자신들의 과다한 보복과 심판으로 당장 한 지파가 사라지게 될 위기에 놓였습니다. 이 역시 감정적입니다. 누군가 나서서 선동하고 바람을 잡으면 거기에 휘둘려서 냉정하게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흥분해서 날뛰다 결국은 일을 그르치고, 그것 때문에 또 후회하고 있습니다. 결국 형제살육의 죄를 지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들의 성지인 벧엘에 모여 통회하고 있는 겁니다. 우리는 항상 감정을 앞세우면 안 됩니다. 감정을 자제해야 합니다. 지나치게 감정을 앞세우면 실패합니다. 남의 선동에 쉽게 부화뇌동해서도 안 됩니다. 언제나 냉정히 기도해서 하나님께 충분히 물은 다음에 행동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감정을 앞세운 결과 끔찍한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이스라엘의 이 큰 비극은 그들의 잘못된 맹세와 서원으로 인해 더욱 처참했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사람들이 미스바에서 맹세하여 이르기를 우리 중에 누구든지 딸을 베냐민 사람에게 아내로 주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이것도 얼마나 감정적인 것입니까? 이렇게 되면 베냐민 지파는 완전히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징계는 냉정하게 하되, 대는 끊지 말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너무나 극단적이고 무모한 서원을 덜컥 해버린 바람에 비극이 더 커졌습니다. 사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솔한 맹세와 서원이 그들을 얼마나 더 불행하게 했는지를 계속해서 지적합니다. 8대 사사인 입다 때도 그랬습니다. 얼마나 황당한 서원 때문에 천추의 한을 남겼습니까? 암몬 자손을 이기고 올 때 제일 먼저 환영하는 사람을 번제로 드리겠다고 서원했는데, 막상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니 그의 사랑하는 무남독녀 딸이 소고를 치며 환영합니다. 결국은 그 딸을 바치는 아픔을 겪지 않았습니까? 여기서도 보십시오. 우리 중 누구도 딸을 베냐민 지파에게 주지 않겠다고 서원합니다. 이제 베냐민 지파는 시간이 지나도 다시 일으켜질 희망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이 문제를 어떻게 풀었습니까? 처음에 미스바에서 맹세한 자리에 빠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로 야베스-길르앗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 모든 지파를 다 소집했는데, 어쩌다가 그들 한 지역 사람들이 빠졌습니다. 그래서 우리 딸을 베냐민 지파에게 주지 않겠다는 맹세를 그들이 안 한 겁니다. 그런데 그들이 미스바에서 또 하나 맹세한 것이 있습니다. 만약 이번에 소집령을 받고도 이 자리에 나오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면 다 처단하겠다고 합니다.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명을 거역한 것이기에 죽이겠다고 맹세한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했습니까? 장병들을 보내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다 쳐죽이고 처녀만 잡아왔습니다. 그들을 베냐민 지파에게 준 겁니다. 길르앗 야베스의 딸들을 보십시오. 졸지에 가족을 다 잃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만 납치당해 하루아침에 남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세상에 이런 복잡한 비극은 없습니다.
사사기는 이렇게 끝납니다. 마지막 절은 이렇습니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25절) 이 말씀은 인간을 왕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를 받지 않고 제 고집대로 살므로 엉망이 되고 모든 게 무너졌다는 고발입니다. 이것이 사사기의 결론입니다. 이스라엘의 영원한 왕은 하나님이신데, 이스라엘이 하나님 통치를 받지 않고 제 멋대로 살아서 결국은 그들 스스로 비극적인 역사를 연출했다는 메시지입니다. 그러니까 사사기 21장 25절 말씀은 기가 막힌 결론일 뿐 아니라 정확한 지적입니다. 여호와의 선민이 여호와의 통치를 거부하니 이렇게 연쇄적인 비극을 겪으며 사사시대를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는 지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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