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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20160612m 순교자와 처형자(행 6:8-15, 7:54-60) 순교자 기념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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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 class="p1">20160612m</p>
<!-- paragraph:p0002 -->
<p class="p1">행 6:8-15, 7:54-60</p>
<!-- paragraph:p0003 -->
<p class="p1">순교자와 처형자</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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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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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8] 스데반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하니 [9] 이른 바 자유민들 즉 구레네인, 알렉산드리아인, 길리기아와 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의 회당에서 어떤 자들이 일어나 스데반과 더불어 논쟁할새 [10]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그들이 능히 당하지 못하여 [11] 사람들을 매수하여 말하게 하되 이 사람이 모세와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것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게 하고 [12] 백성과 장로와 서기관들을 충동시켜 와서 잡아가지고 공회에 이르러 [13] 거짓 증인들을 세우니 이르되 이 사람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하기를 마지 아니하는도다 [14]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 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15] 공회 중에 앉은 사람들이 다 스데반을 주목하여 보니 그 얼굴이 천사의 얼굴과 같더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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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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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54]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56]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57]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58]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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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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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16세기 네덜란드 출신 화가 가운데 얀 반 스코렐(Jan van Scorel)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주로 프랑스와 이태리에서 활동하면서 대형 성화를 많이 그렸습니다. 사람을 실물 크기로 그렸습니다. 색상이나 인물의 동작이 디테일했습니다. 세계 6대 미술관 중 하나인 독일 뮌헨의 알테 피나코텍(Alte Pinakothek)에는 스코렐의 전용관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세례, 세 박사의 예배, 스데반의 순교 등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 작품 앞에 서면 마치 현장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만큼 그림이 생생합니다. 큰 캔버스 한가운데 스데반이 기도하는 자세로 무릎을 꿇고 하늘을 보고 있고, 우측에는 유대인들이 돌멩이를 들고 스데반을 내려칠 기세입니다. 좌측 하단에는 귀족적인 겉옷을 걸친 사울이 있습니다. 사울이 그 현장을 지휘합니다. 스데반이 우러러 보는 하늘에는 주님이 서서 십자가를 품에 안고 하나님과 함께 그 스데반의 순교현장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당시의 성스러운 긴박감이 그대로 드러나는 명작입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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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11 -->
<p class="p1">스데반은 2천년 교회사의 최초 순교자입니다. 그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어떤 사람이길래 주님이 그를 순교사의 제1호로 택하셨습니까? 한마디로 그는 모든 것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사도행전 6장 3절입니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5절을 보면, 일곱 집사 중 수석이었고, 8절을 보면,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 행”한 사람이었습니다. 15절을 보면, 얼굴이 천사처럼 빛난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그는 대단한 설교가입니다. 7장에는 스데반이 산헤드린공회 앞에서 설교를 하는데, 그 내용이나 짜임새가 대단합니다. 최고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사도행전에는 베드로와 바울의 설교도 나옵니다만, 스데반의 설교가 가장 돋보입니다. </p>
<!-- paragraph:p0012 -->
<p class="p2"><br></p>
<!-- paragraph:p0013 -->
<p class="p1">베드로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하루에 3천 명씩 회개를 시킬 때, 스데반은 산헤드린에 잡혀 가 그토록 탁월한 명 설교를 하고도 단 한 명의 회심자도 얻지 못한 채, 성 밖으로 끌려 나가 돌에 맞아 죽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첫 순교자를 12사도 가운데서 내지 않고 일곱 집사 가운데서 내셨습니다. 오히려 사도 중에는 첫 배신자, 첫 자살자가 나왔을 뿐입니다. 주님은 최측근 사도가 아니라 일개 평신도 였던 스데반을 첫 제물로 삼으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p>
<!-- paragraph:p0014 -->
<p class="p2"><br></p>
<!-- paragraph:p0015 -->
<p class="p1">이것이 절대 우연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성령충만이나 은혜나 믿음으로 볼 때, 당시에 스데반 집사만큼 준비된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나 순교할 수 없지 않습니까? 스데반 만큼 순교자로서의 자격을 갖춘 사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순교자 2호는 비로소 사도 중 하나인 야고보입니다. 스데반 순교는 사도행전 7장에, 야고보의 순교는 12장에 나옵니다. </p>
<!-- paragraph:p0016 -->
<p class="p2"><br></p>
<!-- paragraph:p0017 -->
<p class="p1">스데반 집사의 마지막 순간을 살펴보겠습니다.</p>
<!-- paragraph:p0018 -->
<p class="p1">7장 55절입니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주님이 차마 자리에 앉아 스데반의 순교를 볼 수 없어 자리에서 일어서서 보셨습니다. 59절 이하를 보십시오. “[59]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주님이 십자가상에서 드렸던 최후 기도를 스데반도 그대로 드리고 있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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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20 -->
<p class="p1">그런데 여러분, 스데반 순교에 뜻밖에도 바울이 깊이 연루되어 있습니다. 58절입니다.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사울이라는 청년이 스데반 살해의 주동자였다는 뜻입니다. 사울이 사람들을 선동해 돌로 스데반을 쳐죽였습니다. 이렇게 스데반과 사울은 순교자와 처형자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났습니다. 스데반의 피를 본 사울은 이때부터 더욱 호전적으로 날뛰며 기독교 박해의 선봉에 나섭니다. 8장 1절 이하입니다. “[1] 사울은 그가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그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큰 박해가 있어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2] 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위하여 크게 울더라 [3] 사울이 교회를 잔멸할새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니라.” 그리고 9장에 가면 사울이 믿는 사람들을 색출해 처형하기 위해 오늘날 오랜 내전으로 수 만 수 십 만의 난민을 양산하고 있는 시리아의 다마스커스로 가다가 극적으로 주님을 뵙고, 전격 기독교로 개종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9장 1절 이하입니다. “[1]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2]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3]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이렇게 해서 사울이라는 유대교 전사요 저격수가 졸지에 180도로 변해 지금까지 박해하고 멸절시키려고 했던 기독교로 개종합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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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그가 회심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일단 이름부터 바꿉니다. 큰 자라는 뜻의 사울이란 이름을 작은 자라는 뜻의 바울로 바꿉니다. 지금까지는 큰 자로서 기고만장하고 안하무인이었는데, 이제부터는 작은 자로서 겸손히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을 가리켜 만삭 되어 나지 못한 자라고 했습니다. 죄인 중의 괴수라고 했습니다. 자기의 화려한 이력과 스펙을 오줌똥처럼 버린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과거 유대교 시절에는 극단적으로 교만했던 사람이 개종 후 겸손한 사람이 되어 끝까지 겸손의 화신으로 살았습니다. 바울은 겸손 그 자체였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이었을까요? 스데반을 죽인 그의 전력 때문이었을 겁니다. 바울은 과거 유대교 전사시절 스데반을 죽인 아픔을 평생 지고 갔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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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24 -->
<p class="p1">우리는 흔히 그토록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고 온갖 기사와 능력이 충만했던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돌에 맞아 죽을 수 있을까? 그렇게 기적을 행할 만큼 크게 쓸 사람이라면 하나님이 적어도 돌에 맞아 죽는 것을 피할 수 있게 해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스데반의 순교에서 실망을 금치 못했습니다. 성령충만해도 별 수 없어 보였습니다. 아무리 기사와 표적에 출중해도 돌 던지면 꼼짝없이 죽는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리 기사와 표적이 출중해도 남이 핍박하면 그것 다 당하게 하십니다. 왜요? 그게 결코 불행이나 손해나 지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독한 역설이지만, 그게 바로 영광이고 영원한 생명이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가 겪는 시련, 아픔, 고난, 병마와의 싸움도 어떤 의미로든 우리에게 다 필요한 것이고, 그게 다 우리에게 약이 되고 복이 되기에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도움이나 유익이 되지 않는 고난은 하나님이 미리 막아주시고 피하게 해주시지 절대 고스란히 당하게 하지 않습니다. 돌에 맞아 비참하게 목숨을 잃은 스데반의 최후도 그게 결코 무의미한 개죽음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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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보십시오. 스데반의 죽음으로 사도 바울이라는 아주 걸출한 인물, 2천 년 기독교사의 위대한 인물이 출현합니다. 스데반의 순교가 없었다면 바울도 없었습니다. 스데반의 순교가 사도행전을 가능케 했고, 초대교회를 이끌었으며, 2천 년 기독교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한 때는 저도 그런 큰 능력을 나 같은 사람에게 주시지, 무엇 때문에 금방 돌에 맞아 죽을 사람에게 주셨단 말인가? 그러나 정말 권능이 필요했던 사람은 스데반이었습니다. 순교자들이었습니다. 지혜, 권능, 기사와 표적은 자기 이름을 과시하라고 주신 은혜가 아닙니다. 다 십자가를 잘 지고, 주님의 영광을 잘 드러내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라고 주신 은사입니다. 주를 위해, 복음을 위해 고난을 당하고, 자기 십자가를 잘 지고 가라고 주신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순교하라고 주신 은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스데반은 젊은 나이에 자기가 가진 그 많은 재능과 은사를 제대로 펼쳐 보지도 못한 채 죽은 불행한 사람이 아니라 가장 값지고 복 받은 사람입니다. 스데반은 가장 지혜가 충만하고, 가장 얼굴이 빛날 때, 가장 훌륭한 설교를 마쳤을 때, 하나님이 데려가셨습니다. 영안이 활짝 열려 주님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있을 때, 주님은 스데반을 데려가셨습니다. 그렇게 행복한 최후를 맞이한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스데반보다 더 아름다운 죽음을 맞은 사람은 없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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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28 -->
<p class="p1">그러면 스데반을 그렇게 순교에 이르게 한 처형자 바울은 어떻게 죽었습니까? 바울도 순교를 했지만, 그는 훨씬 고된 길을 걷다가 죽습니다. 바울은 여러 해 로마 감옥에 갇혀 지내다 결국 네로 황제에게 참수를 당합니다. 자기가 갇혀 있던 지하 감옥에서 끌려 나와 2-30미터 떨어진 트레 폰타나(Tre Fontana)라는 곳에서 단 칼에 목 베임을 당합니다. 바울의 머리가 세 번 튀었는데, 그때마다 샘이 솟았다고 해서 그곳 이름이 트레 폰타나입니다. 트레 폰타나에는 바울 순교 기념교회가 세워져 있는데, 왼쪽 벽에는 바울의 순교가 새겨져 있고, 우측 벽에는 베드로 순교 장면이 부조되어 있다고 합니다. </p>
<!-- paragraph:p0029 -->
<p class="p2"><br></p>
<!-- paragraph:p0030 -->
<p class="p1">순교자를 기억합시다. 순교자들의 믿음과 희생을 기리며 계승합시다. 순교자들의 믿음이 우리에게 도전이 되기를 빕니다.</p>
<!-- paragraph:p0031 -->
<p class="p1"><br></p>
<!-- paragraph:p0032 -->
<p class="p1"><br></p>
<!-- paragraph:p0033 --><span class="archive-media-placeholder"><a href="https://www.youtube.com/embed/KB-OGbIKL-4" title="미디어 원본"></a></spa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