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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 "바깥 뜰 (겔 40: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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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 class="p1">바깥 뜰</p>
<!-- paragraph:p0002 -->
<p class="p1">겔 40:17-27</p>
<!-- paragraph:p0003 -->
<p class="p2"><br></p>
<!-- paragraph:p0004 -->
<p class="p1">에스겔이 하나님의 안내에 따라 성전 바깥 뜰로 들어갑니다. </p>
<!-- paragraph:p0005 -->
<p class="p1">&lt;그가 나를 데리고 바깥 뜰에 들어가니 뜰 삼 면에 박석 깔린 땅이 있고 ...&gt;(17절).</p>
<!-- paragraph:p0006 -->
<p class="p1">송구스런 말씀이지만 오늘 우리 한국 교회 성도들의 문제도 바로 이 점에 있는 것 같습니다.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을 엄격히 구분해 놓고 그 양쪽을 넘나들며 교회에서는 이런 모습으로, 또 세상에서는 저런 모습으로 나타나는 그 표리부동 말입니다. 일찍이 주님도 유대인들의 그런 위선과 외식을 간파하셨기 때문에 절대라고 우기는 안식일을 상대화하고 보편화하여 모든 날을 다 거룩한 날로 새롭게 해석하셨던 것이고, 또 예루살렘 &lt;성전을 헐라!&gt;(요 2:19)고 하심으로써 특정한 공간만을 거룩하게 보려는 관념을 비판하신 동시에 모든 삶의 장을 다 거룩하게 하라고 촉구하셨습니다. 물론 오랜 종교적 고정 관념을 개혁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주님으로서도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율법적 사고와 이원론적 고정관념과의 싸움이 결코 만만치 않으셨습니다. 안식일 법을 범하시면서 까지 한 쪽 손이 불구인 장애인을 고쳐주신 일로 유대교 지도자들의 분노를 사 그들이 당장 주님을 죽이기 위한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막 3:6)는 것입니다. </p>
<!-- paragraph:p0007 -->
<p class="p2"><br></p>
<!-- paragraph:p0008 -->
<p class="p1">오늘 우리로서는 당시 주님이 안식일에 회당에서 그 장애인을 고쳐주시며 실제 무슨 생각, 어떤 각오를 하셨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서는 주님의 그 행위가 바로 그의 죽음의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동시에 주님은 그 행위를 숨어서 하신 게 아니라 마치 거기에 따르는 모든 책임을 홀로 짊어지시려는 듯 백일하에 드러내놓고 했다고도 전합니다. 우리의 이원론적인 신앙과의 싸움도 이렇듯 책임적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늘 무능하고 특히 개혁적인 부분에 대해 한없이 무력한 것은 바로 책임의식이 투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개혁을 내세우면 뭔가가 희생될 게 뻔하기 때문에 그 희생에 따른 책임이 두려워 눈을 감는 겁니다. </p>
<!-- paragraph:p0009 -->
<p class="p2"><br></p>
<!-- paragraph:p0010 -->
<p class="p1">그러나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성서의 하나님은 결코 원만한 인격을 기르자는 분이 아니십니다. 책임적인 존재이기를 요구하는 분이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웃 앞에서 역사 앞에서 언제나 책임적으로 살아가시는 성도가 되시길 빕니다. </p>
<!-- paragraph:p0011 -->
<p class="p2"><br></p>
<!-- paragraph:p0012 -->
<p class="p1">[적용]</p>
<!-- paragraph:p0013 -->
<p class="p1">-주님의 이원론적 종교 관념과의 싸움은 생각보다 몹시 치열하셨습니다. 이 시대 우리들이 극복해야 할 이원론적 신앙 행태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p>
<!-- paragraph:p0014 -->
<p class="p1">-유대인들이 안식일의 치유 행위를 보고 주님을 죽일 음모를 꾸몄다면 당시 주님은 죽을 각오를 하시고 그 장애인을 고치신 겁니다. 당신도 믿음의 행위, 사랑의 행위에 대해 책임질 각오가 돼 있으십니까?</p>
<!-- paragraph:p0015 -->
<p class="p1">-현재 한국 교회가 직면한 여러 가지 비판과 선교적 어려움의 상당 부분은 그동안 오직 무책임한 신자만을 양산해 온 결과라는 지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p>
<!-- paragraph:p0016 -->
<p class="p2"><br></p>
<!-- paragraph:p0017 -->
<p class="p1">[기도]</p>
<!-- paragraph:p0018 -->
<p class="p1">주님, 그렇습니다. 책임질 각오가 돼 있지 않은 사랑은 감상일 뿐 사랑이 아닙니다. 그리고 사랑이나 개혁은 희생이나 수난 없이는 결코 가능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주님을 제대로 따라가며 이웃을 진실하게 사랑하고 교회에서 만이 아니라 내 삶의 한복판에서도 끝까지 믿음을 관철하려면 반드시 투철한 책임의식이 요구됩니다. 부디 주님처럼 저희도 저희의 선택과 결단에 대해 보다 책임지는 신자로 남기에 부족함이 없게 해주시옵소서. 주님 앞에서 이웃 앞에서 언제나 책임적인 자세와 각오로 살아가게 해주시옵소서.</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