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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5w 사사기 강해 19 (삿 17:1-13)

20160525w 사사기 강해 19

삿 17:1-13


[1] 에브라임 산지에 미가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더니 [2] 그의 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께서 은 천백을 잃어버리셨으므로 저주하시고 내 귀에도 말씀하셨더니 보소서 그 은이 내게 있나이다 내가 그것을 가졌나이다 하니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3] 미가가 은 천백을 그의 어머니에게 도로 주매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내가 내 아들을 위하여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부어 만들기 위해 내 손에서 이 은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이 은을 네게 도로 주리라 [4] 미가가 그 은을 그의 어머니에게 도로 주었으므로 어머니가 그 은 이백을 가져다 은장색에게 주어 한 신상을 새기고 한 신상을 부어 만들었더니 그 신상이 미가의 집에 있더라 [5] 그 사람 미가에게 신당이 있으므로 그가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한 아들을 세워 그의 제사장으로 삼았더라 [6]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7] 유다 가족에 속한 유다 베들레헴에 한 청년이 있었으니 그는 레위인으로서 거기서 거류하였더라 [8] 그 사람이 거주할 곳을 찾고자 하여 그 성읍 유다 베들레헴을 떠나 가다가 에브라임 산지로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매 [9] 미가가 그에게 묻되 너는 어디서부터 오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유다 베들레헴의 레위인으로서 거류할 곳을 찾으러 가노라 하는지라 [10] 미가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와 함께 거주하며 나를 위하여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내가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먹을 것을 주리라 하므로 그 레위인이 들어갔더라 [11] 그 레위인이 그 사람과 함께 거주하기를 만족하게 생각했으니 이는 그 청년이 미가의 아들 중 하나 같이 됨이라 [12] 미가가 그 레위인을 거룩하게 구별하매 그 청년이 미가의 제사장이 되어 그 집에 있었더라 [13] 이에 미가가 이르되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하니라


사사기는 12명의 사사 이야기로 되어 있지만, 마지막 사사인 삼손의 이야기가 나오는 16장에서 그치지 않고, 사사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왜냐면 이야기 두 가지가 들어 있는 부록이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부록은 사사시대의 암울했던 시대상을 엿보게 합니다. 하나는 미가의 이야기요 또 하나는 토막 살인사건 이야기입니다. 


사사기를 읽으면 우리는 속 시원함보다는 우울해집니다. 사실 이것이 인간사입니다. 그러므로 사사기는 우리 인생의 거울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는 한 하나님을 믿는데, 그러나 믿음도 다 다릅니다. 천태만상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본받아야 할 믿음도 있고, 경계해야 할 믿음도 있습니다. 본문의 주인공 미가의 믿음은 본받으면 안 됩니다. 


미가는 철저한 편의주의, 실용주의자였습니다. 5-6절입니다. “[5] 그 사람 미가에게 신당이 있으므로 그가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한 아들을 세워 그의 제사장으로 삼았더라 [6]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미가는 자기집 마당에 신당을 세우고, 자기 아들을 제사장으로 삼았습니다. 그렇게 하는 게 하나님 뜻에 합당한지 고민한 흔적은 없습니다. 제 편리대로 그렇게 한 겁니다. 18장 31절을 보면 당시에는 하나님이 지정하신 예배 처소가 따로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로는 미가가 살던 에브라임에서 먼 곳이 아닙니다. 가까운 곳에 하나님의 집을 두고도 더 가까운 곳을 찾은 겁니다. 요즘은 모두 실용주의입니다. 하나님보다는 자기 편의를 먼저 따집니다. 갈수록 인내, 고난, 십자가는 무색해집니다. 미가의 신앙생활이 바로 그랬다는 겁니다. 


미가의 신앙은 기복신앙이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에게 복을 약속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누릴 특권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것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약속한 현세적 복이 다가 아닙니다. 그런데 미가는 그것만 주목했다는 겁니다. 13절입니다. “이에 미가가 이르되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하니라.” 미가는 제사보다 젯밥에 더 관심을 가졌습니다. 미가의 모친은 거부입니다. 미가는 자기 어머니처럼 자기도 부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자기 어머니 재산을 관리하다가 상당한 금액을 비자금으로 만들었다가 들켜서 어머니에게 다시 돌려주는 헤프닝도 있었습니다. 사실 이게 미가의 속셈이었습니다. 교회도 짓고 자신만의 제사장을 세운 것도 복을 독점하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신앙생활하고 있는지를 성찰해야 합니다. 미가처럼 오직 돈 많이 벌고 출세하려고 신앙생활하면 안 됩니다. 


그는 철저한 형식주의, 외식주의자였습니다. 겉보기에 그의 신앙은 그럴듯했습니다. 자기 마당에 교회를 짓고 그럴듯한 교역자까지 세웠으니 이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그럼에도 정작 그에게 제대로 된 신앙은 없었습니다.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는 없었습니다. 모든 게 물질적인 복을 받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습니다. 외양은 부족해 보여도 내용이 충실해야 합니다. 주님은 내실 있는 신앙을 바라십니다. 미가는 내용, 열매가 없었습니다. 철저한 외식주의, 형식주의였습니다. 잎사귀만 무성했습니다. 한마디로 그의 신앙은 거짓 신앙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파국을 맞습니다. 제사장도, 성전 기물도 다 잃어버립니다. 


누가 뭐라 해도 신앙은 자기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이어야 합니다. 또한 기복보다는 주님의 영광과 그 뜻에 충실해야 합니다. 주님의 소원에 내가 헌신하고 희생하는 믿음이 옳습니다. 의식이나 형식보다는 늘 내용과 내실을 추구하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건전한 신앙을 지녀서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현세적인 복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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