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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2n 사랑의 모범(고전 13:4-7)

20160522n

고전 13:4-7

사랑의 모범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5월은 사랑의 달이고 어제는 부부의 날이었습니다. 이 시간은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사랑, 특히 고린도전서 13장이 제시하는 실천적이고도 모범적인 사랑의 모습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 


사전적 의미로 사랑은 추상명사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사랑은 가장 큰 은사, 제일 좋은 은사라고 하면서 구체적인 행위로, 실천적 삶으로 규정합니다. 4절 상반절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오래 참는 게 성경이 말씀하는 입체적인 사랑입니다. 현실적인 사랑입니다. 이게 사랑장인 고린도전서 13장이 말씀하는 사랑에 대한 첫 번째 규정이고 정의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사랑을 짜릿하다거나 설레게 하는 것이라 하지 않고, 눈물의 씨앗이라 하지 않고, 오래 참는 것이라고 합니다. 매우 현실적이고 실제적입니다. 아마 사랑을 이렇게 정의하는 것은 성경이 유일한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는 오래 참는 게 사랑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한 번, 두 번, 세 번 참습니다. 그러나 그 이상은 참지 못합니다.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참아온 분을 폭발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는 사랑의 첫 번째 특성은 오래 참음입니다. 왜 사랑을 이렇게 규정하고 있을까요?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되 오래 참지 않으셨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 가운데 감히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요? 주님이 오래 참지 않고 그때그때 우리가 하는 짓을 그대로 갚으셨다면 우리 중 무사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디모데전서 1장 16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후서 3장 9절입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골로새서 3장 12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이 택하사 거룩하고 사랑 받는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참되 오래 참는 사람이야말로 우리 그리스도인이 추구하고 실천해야 할 가장 아름다운 성서적 사랑임을 기억합시다. 주님은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참으라고 했습니다. 막연한 사랑을 얘기하지 마십시오. 감상적이고 추상적인 사랑을 논하지 마십시오. 오래 참아주는 게 사랑입니다. 남편에 대해서 오래 참으시고, 아내에 대해서 오래 참으시고, 자녀에 대해서도 오래 참으시고, 이웃에 대해서도 오래 참으십시오. 주님이 나를 이렇게 참고 계십니다. 


사랑은 온유한 것이라고 합니다. 온유는 남에게 따뜻하고 부드럽게 대하는 것입니다. 이 또한 구체적이고 실천적이지 막연하지 않습니다. 오래 참는 게 소극적 사랑이라면, 온유는 보다 적극적인 사랑입니다. 더 능동적이고 역동적인 사랑입니다. 우리는 단지 오래 참고 견디는 것으로 내 할 사랑을 다했다고 하면 안 됩니다. 주님을 보십시오. 마태복음 11장 29절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주님은 온유함을 내게서 배우라고 하셨습니다. 중세 화가들이 그린 성화들을 보십시오. 화가들마다 주님의 모습이 같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한 가지 공통된 특징은 주님의 이미지가 다 온유하다는 겁니다. 거칠거나 강하게 묘사한 성화는 없습니다. 인자하고 온유하고 따뜻하고 부드럽게 그립니다. 아마 주님의 실제 모습도 같았을 겁니다. 우리도 주님처럼 온유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정서, 이미지는 온유함이 특징이 되어야 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문화나 정서를 보십시오. 폭력적이고 괴기스럽고 요란하고 난폭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걸 막장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다 반성서적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사랑은 온유함입니다. 그런데 실은 이게 강한 겁니다. 거친 강풍이 아니라 따뜻한 햇볕이 겉옷을 벗게 합니다. 온유함이 강함입니다. 부디 주님께 온유함을 배웁시다. ‘나는 온유하니 내게 와서 배우라’는 주님의 말씀을 듣고 모두 따뜻한 사랑의 사람이 됩시다. 


사랑은 시기하지 아니함이라고 합니다. 시기는 투기, 질투라는 말과 뜻이 같습니다. 사전적으로는 타인의 성공이나 명예, 행복을 보면서 마음이 상해 분노가 끓어오르는 상태가 시기입니다. 그런데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세상적인 사랑이나 인간적 사랑에는 반드시 시기심이 수반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씀하는 사랑에는 시기가 용납되지 않습니다. 야고보서 3장 14절입니다.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슬러 거짓말하지 말라.” 최초의 살인자 가인은 불 같은 시기심, 질투심 때문에 동생 아벨을 잔혹하게 살해했습니다. 요셉도 형들의 시기심 때문에 배신당해 노예로 팔렸습니다. 사울을 보십시오. 다윗을 시기해 일곱 번이나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시기심이 없었던 사람도 있습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을 보십시오. 그는 왕자입니다. 그런데 그 요나단의 친구 다윗이 백성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하루아침에 자신의 경쟁자로 서게 되어도 그는 다윗을 시기하지 않습니다. 아버지 사울과는 달랐습니다.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요? 사무엘상 20장 17절입니다. “다윗에 대한 요나단의 사랑이 그를 다시 맹세하게 하였으니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 같이 그를 사랑함이었더라.” 요나단에게는 진정한 사랑이 있었습니다. 또 한 사람은 신약의 세례요한입니다. 자기를 따르던 사람들이 이제는 주님께로 몰려갑니다. 자기 제자였던 사람들도 주님께로 다 갔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요한복음 3장 29절 이하입니다. “[29]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였노라 [30]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참된 사랑은 시기하지 않고 오히려 남이 잘 되는 것을 기뻐합니다. 자신의 분수를 냉정히 직시합니다. 저는 목사이지만, 얼마나 자주 가슴이 쓰린지 모릅니다. 특히 동창들 소식을 들으면, 남 몰래 며칠씩 끙끙댑니다. 아직 수양이 덜 돼서 그렇습니다. 이게 바로 시기입니다. 사랑이 충만해지면, 그런 시기심이 극복됩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주님은 한 번도 자신을 자랑한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큰 이적을 행하시고도 입단속을 시키십니다. 우리는 전 존재, 전 생애를 통해 하나님만 선전해야 합니다. 자기를 광고하고 선전하는 것은 반신앙적이고 반성서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할 사람들입니다. 마태복음 6장 2절입니다.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자기가 영광을 받으면 이미 보상을 받았다는 겁니다. 훗날 하나님 나라에서 받을 상급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 자랑은 금물입니다. 우리는 자기 자랑이 아니라 언제나 주님을 자랑하고 십자가를 자랑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신자는 자기 자신에게 인색한 게 맞습니다. 그게 성경이 말씀하는 진정한 사랑입니다. 


사랑은 교만하지 아니한 것입니다. 자기 자랑은 교만으로 발전합니다. 교만은 자기 자신의 훌륭함에 도취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고린도교회는 이 교만이 너무 심했던 교회였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12장에서 교만을 문제 삼고 있습니다. 교만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노골적이고 적극적인 범죄입니다. 천사장 루시퍼의 반란, 아담과 하와의 타락이 다 이 교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죄의 기원, 마귀의 기원이 바로 교만입니다. 그러나 참된 하나님의 사람은 겸손합니다. 겸손은 그 사람이 얼마나 사랑으로 충만한가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입니다. 겸손한 사람이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입니다. 주님은 하나님이셨지만, 한없이 겸손하셨습니다. 사랑의 화신이셨기 때문입니다. 종의 지위로까지 자신을 낮추셨기에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교만한 자는 가차없이 대적하시지만, 겸손한 자에게는 반드시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은 특히 교만에 대해 아주 예민하십니다. 천사에게도 당하셨고, 인간에게도 당하셨기에 가장 경계하시는 게 바로 교만입니다. 부디 늘 겸손한 성도가 됩시다. 이것이 복 받는 길임을 기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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