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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22m 믿음의 모범(렘 1:4-10)

20160522m

렘 1:4-10

믿음의 모범


[4]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5]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6]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7]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8]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9]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10]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예레미야의 별명은 <눈물의 선지자>입니다. 그는 예레미야뿐만 아니라 이어지는 <애가>도 썼습니다. 슬픔의 노래입니다. <비가>를 쓴 선지자는 예레미야뿐입니다. 왜 그가 눈물의 선지자입니까? 왜 그는 비가까지 썼습니까?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이 역사적으로 가장 암울할 때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주전 626년에 시작해서 587년까지 약 40년간 활동했습니다. 이때는 이스라엘로서는 최악의 쇠퇴기였습니다. 나라가 분단되고, 분단 상태에서 북왕국은 앗수르에, 남왕국은 바벨론에 차례로 망했습니다. 사람들은 노예로 붙잡혀 가고, 일부는 애굽으로 피난갔던 그런 시기였습니다. 예레미야는 그때 조국의 패망을 예언하며, 이렇게 된 것은 다 하나님께 벌 받아 그런 것이니, 순순히 투항하고, 적에게 잡혀가 노예살이를 하는 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래서 왕으로부터 백성까지 그 누구도 그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마른 우물에 가두고, 구금하고, 죽이겠다고 위협하고, 고문하고, 굶기기도 하면서 온갖 핍박을 다 받았습니다. 


그가 첫 소명을 받을 때 나이가 불과 20세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처음 하나님이 부르실 때, 나는 아이라고 했습니다. 정서와 성품도 매우 여리고 약했습니다. 겁도 많고, 감성도 풍부했습니다. 본문에도 나옵니다만, 처음 소명을 받을 때, 저는 말을 할 줄 모릅니다. 저는 아직 어린아이입니다, 저는 겁이 많아 사람들 앞에 나설 줄 모릅니다고 하면서 고사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너는 더는 너를 어린아이라 하지 말라,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담대히 가고, 무엇을 명령하든지 가서 말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8절을 보면,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고 약속하십니다. 또 손을 내밀어 예레미야의 입에 대시며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고 하십니다. 


그는 늘 우울했습니다. 조국이 망한다는 예언, 순순히 투항하고 끌려가서 종살이하는 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전해야 하는 선지자의 심정이 오죽 고통스러웠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늘 울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백성들 앞에서도 울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눈물의 선지자라 불리는 겁니다. 40년 동안 그렇게 고통 가운데 예언하다가 결국 주전 587년에 돌에 맞아 죽습니다. 동족들이 더는 그를 봐주지 않고 돌로 쳐 죽인 겁니다. 이렇듯 예레미야는 구약에 등장하는 그 어떤 선지자보다 불행하고, 외롭고, 슬펐습니다. 그런데도 40년을 하루같이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자신의 목숨을 걸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위대한 선지자요 위대한 믿음의 선진입니다. 


예레미야가 우리에게 보여준 믿음의 모범은 이런 것입니다. 

우선 그는 예지예정에 대한 확신이 투철한 사람이었습니다. 5절입니다.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 너를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다는 것이 예지이고,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했다는 게 예정입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예지예정의 믿음이 그로 하여금 그 어려운 시절을 살며 갖은 박해를 당하면서도 꿋꿋이 40년간 선지자의 사명을 다하게 한 원동력이었습니다. 그는 누가 뭐라 해도 하나님의 생생한 육성을 평생 가슴속 깊이 품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모진 세월을 울며 살면서도 변절하지 않고 순교의 제물이 된 겁니다. 바울도 마찬가집니다. 그는 에베소서에서 모태가 아니라 이미 창세 전에 예정해서 당신의 자녀가 되게 했다고 했습니다. 이 사실에 대한 깨달음과 확신 없이는 누구도 아직 멀었습니다. 그가 아무리 교회에서 중책을 맡고, 오래 교회에 다녔다 해도, 이 사실에 기초하지 않으면 신자가 아닙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신자가 되었습니까? 친구 따라 교회 왔다가 예수 믿게 되셨습니까? 미션 스쿨을 다녔기 때문입니까? 모태에서부터 교회에 다니셨습니까? 혹은 가정의 평화를 위해 교회에 나오셨습니까? 이제는 제대로 아셔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우연을 가장한 필연입니다. 이미 하나님이 나를 창세 전에 당신의 자녀로 택하셨기에 우연을 빙자해 당신 앞에 나오게 하신 것입니다. 이게 실체적 진실입니다. 예지예정의 비밀을 확신하지 못하면 백날 믿어도 감격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신앙생활이 언제나 짐이요 애물단지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예지예정에 대한 신념과 확신이 약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을 해도 금방 지치고 회의에 빠지고 돌아서면 본전 생각하고, 생색내고 싶어 합니다. 올해도 이미 5월 하순인데, 돌아보면 지난 몇 개월이 파란만장합니다. 얼마나 휘청이고 엎어지고 자빠졌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돌솥비빔밥은 밥을 솥 채 갖다 줍니다. 빨리 식지 말라고 그렇게 합니다. 하물며 믿음이겠습니까? 믿음이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져서야 되겠습니까? 내가 도대체 뭔데 하나님이 창세 전에 이미 나를 아시고(예지), 또 나를 당신의 택해주셨다(예정)는 겁니까? 이 불가사의한 진실을 확신하셔야 우리도 바울처럼 외부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끝까지 완주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아무도 그가 외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아도 늘 고독하게 울며 40년을 예언하다가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바울은 33년간 온갖 고난을 겪으며 선교하다 결국 네로 황제에게 목이 잘려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비참하고 참혹하게 죽기까지 변절하지 않았습니다. 배교하지 않았습니다. 바울 같은 경우는 마지막엔 모든 동역자가 다 떠났습니다. 다 등을 돌렸고, 홀로 외로이 죽어갔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고귀했고 위대했습니다. 그것은 다 이 예지예정의 신앙에 투철했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꼭 기억하십시다. 


예레미야는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사명자라는 의식에 늘 투철했습니다. 6절 이하입니다. “[6] 내가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하니 [7]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8]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9]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하나님이 예레미야에게 내가 누구에게 보내든지,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그대로 시행하라고 하십니다.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다고 하십니다. 이게 소명입니다. 여러분, 예레미야뿐 아니라, 이게 그대로 오늘 우리의 사명이자 이 시대 교회들의 사명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향해 두려워말라, 내가 너희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가며, 무엇을 명하든지 가서 전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든, 어떤 직업, 어떤 수준으로 살든, 궁극적으로는 이 시대에 주님의 말씀을 대변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한번은 세례요한이 심각한 회의에 빠졌습니다. 예수님이 정말 메시아인가? 라는 의문에 빠진 겁니다. 자기가 볼 때는 예수님이 세리와 창기들을 데리고 다니며 쓸 데 없는 일만 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느날 그가 사람을 보내 물었습니다. ‘당신이 오실 메시아입니까?’ 예수님은 가서 그대로 전해라고 하시며,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고 하십니다. 이 모든 것이 다 복음 전파를 위한 사역이라는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죽든지 살든지, 70을 살든, 80을 살든, 100세를 살든 다 주님을 증거하는 생애여야 합니다. 내 전공, 나의 사회적 지위와 직책이 무엇이든, 내 직업이 무엇이든, 언제나 최종적으로는 그게 다 주님의 말씀, 복음을 세상을 향해 전달하는 수단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렇게 살고 계십니까? 예레미야는 저는 겁이 많고, 말할 줄 모릅니다고 고사하다가, 결국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평생 자신의 언어로 하나님을 전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했고, 눈물로, 순교로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충실히 증거한 위대한 하나님의 종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레미야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모범적인 믿음의 삶이요, 모범적인 사명자의 생애입니다. 우리도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삽시다. 우리의 영원한 사표인 예레미야처럼 끝까지 믿음으로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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