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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01 -->
<p>2008년 5월 21일 수요성경공부 고린도후서 강해 11<br>본문: 고후 6:14-7:1</p>
<!-- paragraph:p0002 -->
<p>[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17]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7: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p>
<!-- paragraph:p0003 -->
<p>14절에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는 말씀을 우리는 자주 들었습니다. 어떤 이가 불신자와 결혼하려고 할 때 이 말씀을 자주 듣습니다. 신명기 22장 10절을 보면 ‘서로 다른 종류의 두 마리의 짐승에게 한 멍에를 지우지 말라’고 율법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바울 사도도 이 신명기의 말씀을 염두에 두고 편지를 쓴 것 같습니다. 그러면 이 말은 무슨 뜻일까요? 믿지 않는 자와는 상종치 말라는 것입니까? 그들과 담 쌓고 지내라는 겁니까? 사업상 동업해도 안 되는 것입니까? 그렇게 하려면 우리는 산속에 들어가거나 오로지 교회 울타리 안에서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어떻게 믿는 자들끼리만 인간관계를 맺고 살 수 있습니까? 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p>
<!-- paragraph:p0004 -->
<p>14절은 결혼 상대자를 만날 때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의와 불법이 함께 할 수 있느냐’, ‘믿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이런 말씀은 부부 사이의 다른 신앙에 해당하는 말들입니다. ‘사귄다’, ‘조화되다’, ‘상관하다’, ‘일치하다’등의 단어는 남녀 간의 깊은 관계를 의미합니다. 벨리알은 사탄의 별명입니다. 그리스도와 사탄이 어찌 이상적인 부부의 관계를 대변할 수 있겠습니까? ‘상관하다’는 말은 특별히 부부관계를 의미합니다. 적어도 바울에게서는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은 부부관계가 불가능합니다. 당시에 헬라는 영과 육이 철저히 이원론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는 하나님은 영으로 섬기고, 육으로는 영적인 것을 해치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와서는 영으로 하나님께 예배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 육으로는 창기의 집을 찾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창기와 만나는 자는 창기와 하나가 된 줄 알지 못하느냐고 했습니다. 육으로만 창기를 만나는 것이 아니라 전인(全人)으로 만난다는 겁니다. 따라서 바울에게서는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부부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용납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믿는 자가 불신자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우리 생각 밖이라는 겁니다. 어쨌든 14절의 말씀은 이교도와 결혼하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p>
<!-- paragraph:p0005 -->
<p>왜 바울이 여기에서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 했습니까? 현실적으로 당시 고린도 교회 성도들 가운데 불신자와 결혼하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강경하게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우선 믿는 자는 하나님의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16절 하반절을 보면,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구약시대와 신약시대의 성전 개념은 차이가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예루살렘 성전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팔레스틴에도 회당 곧 기도처는 많았습니다. 그런데 엄밀하게 의미하면 회당에는 하나님이 안 계십니다. 그래서 회당은 성전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에만 하나님이 계십니다. 성전에는 성소가 있고, 지성소 안에는 법궤가 있습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공간입니다. 그 지성소에만 하나님이 강림하십니다. 그래서 제사장이 백성을 대표해서 1년에 한 번 지성소에서 하나님을 뵙습니다. 이것이 구약의 성전입니다. 그런데 신약시대는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지금은 성령시대입니다. 하나님이 성령으로 믿는 자의 중심에 강림해 계시는 시대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면 거기가 바로 성전입니다. 따라서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걸어다니는 성전입니다. 우리가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함께 하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이 계시는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어찌 우상을 섬기는 자와 한 몸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마치 빛과 어둠이 서로 조화하기 어려운 것처럼,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서로 갈등하는 것처럼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의 결혼은 필연적으로 갈등을 유발시킨다는 겁니다. </p>
<!-- paragraph:p0006 -->
<p>다음으로 믿는 자는 성도 곧 하나님의 백성이기에 불신자와 멍에를 함께 멜 수 없습니다. 16절 하반절에 보면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고 합니다. 성도는 거룩한 백성이라는 말인데, 구별된 백성이라는 뜻입니다. 거룩은 구별됨이란 뜻과 같습니다. 성스럽다, 거룩하다는 말은 세상과 구별되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구별된 백성 곧 성도가 구별되지 못한 사람과 짝을 이룰 수 있느냐는 겁니다. 유유상종입니다. 여기에 조화가 있지, 종(種)이 다른데 어찌 하나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우리 믿는 자들은 구별된 성도들이기에 구별되지 못한 세상 사람들과 짝을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의 소속과 세상 백성의 소속이 다릅니다. 하나님의 자녀와 어둠의 자녀의 차이입니다. 가치관이 다르고 정서가 다르기 때문에 한 멍에를 멜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 멍에를 메고 함께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장담을 합니다. 결혼해서 믿게 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막상 결혼하고 나면 내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기도하던 사람들도 낙심하게 됩니다. 신앙생활한다고 핍박을 받으며 어렵게 신앙생활의 명맥을 이어가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세상 백성과 멍에를 함께 한 혹독한 댓가입니다.</p>
<!-- paragraph:p0007 -->
<p>마지막으로 7장 1절입니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거룩함을 온전히 이룬다’는 말은 성화(聖化)를 뜻합니다. 이루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음에도 우리를 이 땅에 두시는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하나님의 기대하시는 수준으로 우리가 아직 성화가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군대에서 제대할 때의 계급이 그 사람의 영원한 예비역 계급입니다. 상병 제대면 평생 예비역 상병이고, 병장으로 제대하면 평생 예비역 병장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천국으로 부르시는 순간, 우리의 수준이 그 사람의 영원한 수준입니다. 그래서 성화의 수준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최대한 우리로 하여금 성화되도록 기회를 주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다 당신처럼 거룩해지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성화를 기대하시고 우리를 이 땅에 두고 계십니다. 그런데 성화가 지상목표인 믿는 자가 안 믿는 자와 결혼해서 발목을 잡히는 것은 그 사람의 영적인 순례에 치명적입니다. 성화가 아니라 도리어 세속화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를 결혼시킬 때 이 말씀을 기억하시면서 신중하게 결정하셔야 합니다. 조건만 보지 마십시오. 조건만 맞으면 신앙의 유무는 상관없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신대원 2학년에 다니던 여학생이 미국 교포 2세와 요란하게 결혼했습니다. 그런데 교포 2세의 신앙생활이 좋지 않았습니다. 남자에게서 신앙생활 잘 하겠다는 각서까지 받고 결혼했지만 6개월만에 이혼하고 돌아왔습니다. </p>
<!-- paragraph:p0008 -->
<p>바울의 권면과 당부는 당시 고린도 교회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옳습니다. 자녀가 우겨도 여러분이 말려야 합니다. 어떤 명분으로도 그리스도인의 결혼조건이 바뀌어서는 안 됩니다.<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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