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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3">우리교회 집사님, 권사님들은 제게 참 못합니다. 그런데 그게 맞습니다. 성도들이 목회자에게 잘 하면 못씁니다. 항상 냉정하고 매정하고 단호하고 가혹해야 합니다. 그래야 목회자가 늘 긴장하여 안일해지거나 나쁜 버릇에 길들여지지 않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 목회자들에게서 이런저런 많은 문제들이 불거지고 있는 것은 그간의 한국 교회의 권위주의적 구조와 폐쇄적인 위계질서가 낳은 필연의 결과들입니다. 성도들이 목회자에게 지나치게 잘 하는 현상 역시 권위주의의 강요와 그런 문화의 학습효과일 뿐 자발적인 사랑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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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3">남편보다 목회자에게 더 잘 하는 것은 범죄입니다. 성경은 남편에게 &lt;주께 하듯 하라&gt;(엡 5:22)고 했지 어디에도 목회자에게 그렇게 하라고 한 곳은 없습니다. 한국 교회 성도들은 산삼이 생기면 남편에게 주지 않고 목회자에게 바칩니다. 언젠가 제게도 권사님 한 분이 산삼을 가져와 잘 먹긴 했습니다만 그건 틀린 겁니다. 남편이 아니라 제게 가져 온 권사님도 잘못이고 그걸 넙죽 받아 열심히 먹은 저는 더 나쁜 목회자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게 다 한국 교회의 오랜 권위주의의 산물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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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3">주님은 권위주의를 부정하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난장판이 된 것을 목격하신 주님이 짐승들을 내쫓으시고 돈 바꾸는 자들의 상을 둘러엎으시며 &lt;너희가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gt;(마 21:15)고 의분을 터뜨리시자 젊은이들은 만세를 부르며 열렬한 지지를 보낸 반면(마 21:15) 소위 성전 주인을 자처하던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은 &lt;네가 무슨 권위로 이 같은 짓을 행하느냐 누가 네게 이런 권위를 주었느냐&gt;(마 21:23)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하기야 주님의 그 성전 정화 사건은 일종의 &lt;난동&gt;이었습니다. 기존의 질서가 부여한 권위가 아닌 관계외인의 물리력 행사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시 주님도 &lt;권위&gt;를 묻는 그들에게 아무런 대답도 하실 수 없었습니다. 주님은 권위를 내세우신 분이 아니라 오히려 그런 권위와 싸우신 분이셨고, 그런 면에서 현대인들, 특히 요즘의 젊은 세대들과도 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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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3">그동안 우리 사회는 오랜 권위주의적 문화에 지배당해 왔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도처에서 완강하게 권위주의가 거부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구세대 권위주의를 상징하는 부모와 선생님, 정치인, 사회 지도층에 대해 무차별로 저항하고 있습니다. 특히 교육 현장은 참혹하기 그지없습니다 학생들이 교사를 조롱하고 빗자루로 때리고 그걸 동영상으로 촬영해 SNS로 퍼뜨리고 ...  가정 역시도 마찬가집니다. 지난 어버이날 40대 남매가 76세의 친아버지를 잔혹하게 살해한 사건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실은 이게 다 우리 사회의 권위주의에 대한 보복이자 권위주의 희생자들의 반격입니다. 요즘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갑질 고발과 성토도 그동안의 갑의 권위주의와 횡포에 대한 을의 반란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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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3">5월은 사랑의 달, 가정의 달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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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3">바울이 젊은 엄마들에게 자녀와 남편을 사랑하되 혈육 간의 사랑인 &lt;스톨게&gt;나 남녀 간의 사랑인 &lt;에로스&gt;가 아니라 흔히 &lt;우정&gt;으로 번역되는 &lt;필레오&gt;를 권한 사실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딛 2:4).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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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3">권위주의가 배제된 친구지간의 우정 같은 &lt;필레오&gt;로 사랑할 것을 당부한 것입니다. 엄마가 자녀나 남편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친구가 되어 주라는 것입니다. 하루 속히 우리 사회에도, 교육 현장에도, 가정에도, 교회에도 경직된 권위주의가 아닌 격의 없는 &lt;필레오&gt; 문화가 지배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p>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