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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20160515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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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아 2:15-1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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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포도원을 허무는 작은 여우</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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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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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15]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16] 내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백합화 가운데에서 양 떼를 먹이는구나 [17] 내 사랑하는 자야 날이 저물고 그림자가 사라지기 전에 돌아와서 베데르 산의 노루와 어린 사슴 같을지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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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아가서는 솔로몬의 작품입니다. 솔로몬 왕이 포도원에서 일하던 술람미 출신의 여인을 사랑하면서 부른 연가입니다. 아가서에는 남녀 간의 사랑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대담하고 솔직하게 표현한 대목이 많이 나옵니다. 또한 그런 말씀 못지않게 사랑의 위기를 경고하는 말씀도 적지 않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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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오늘 본문은 가정을 포도원에 비유하면서 가정을 잘 지키고 관리하라고 당부하는 말씀입니다. 특히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고 합니다. 15절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 포도원에 사랑의 꽃이 활짝 피었는데, 이때 경계를 게을리 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여우들은 이때 극성이라는 겁니다. 팔레스틴에는 여우가 많았습니다. 사사기 15장에 보면 삼손이 맨 손으로 여우를 300마리나 잡습니다. 특히 팔레스틴의 여우는 포도 농사에 해를 끼쳤습니다. 그런데 여우들은 포도 꽃이 필 때 더 피해를 주었습니다. 우리 문화에서도 여우는 부정적입니다. 여우같다는 말은 교활하다는 말입니다. 백여우, 불여우, 천 년 묵은 여우 등 모두 부정적입니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늘 교활한 암몬 족속을 여우라 불렀고, 주님도 헤롯 왕을 여우라 불렀습니다. 주님은 여우도 굴이 있지만 나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는데, 이 말은 교활한 여우도 머리 둘 데가 있는데 나는 그보다 더 딱하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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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어쨌든 여우를 잡아야 합니다. 본문이 말씀하는 여우는 작은 여우입니다. 그것도 한 마리가 아니라 여우들입니다. 우리의 가정을 해치는 위험한 요소는 큰 것보다는 작은 것이고, 그런 작은 것들이 누적되어 결국 가정을 무너뜨립니다. 아가서가 우리에게 잡으라고 하는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는 어떤 것인지 살펴보겠습니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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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우선 열등감입니다. 아가서 1장 5절을 보면 술람미 여인의 고백이 나옵니다.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여기 나오는 게달의 장막이란 유목민들이 장막을 치고, 그 위에 씌운 시커먼 덮게를 가리킵니다. 술람미 여인은 자신이 희고 세련된 예루살렘 여인들에 비해 피부가 검고 거칠다는 데에 대한 심각한 콤플렉스를 갖고 있었습니다. 이어지는 6절입니다. “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이렇게 술람미 여인은 자기의 외모에 대해 생각보다 심각한 자격지심에 시달린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이 술람미 여인에 대한 솔로몬의 찬사는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도, 감미로울 수 없습니다. 1장 2절입니다.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15-16절입니다.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 5장 10절 이하입니다. “[10] 내 사랑하는 자는 희고도 붉어 많은 사람 가운데에 뛰어나구나 [11] 머리는 순금 같고 머리털은 고불고불하고 까마귀 같이 검구나 [12] 눈은 시냇가의 비둘기 같은데 우유로 씻은 듯하고 아름답게도 박혔구나.” 더 노골적인 표현도 나옵니다. 7장 6절 이하입니다. “[6] 사랑아 네가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 어찌 그리 화창한지 즐겁게 하는구나 [7] 네 키는 종려나무 같고 네 유방은 그 열매송이 같구나 [8] 내가 말하기를 종려나무에 올라가서 그 가지를 잡으리라 하였나니 네 유방은 포도송이 같고 네 콧김은 사과 냄새 같고 [9] 네 입은 좋은 포도주 같을 것이니라 이 포도주는 내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미끄럽게 흘러내려서 자는 자의 입을 움직이게 하느니라 [10] 나는 내 사랑하는 자에게 속하였도다 그가 나를 사모하는구나 [11] 내 사랑하는 자야 우리가 함께 들로 가서 동네에서 유숙하자.”</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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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술람미 여인에 대한 솔로몬의 찬사입니다. 당대 최고의 권력가였던 솔로몬의 사랑을 이렇게 듬뿍 받으면서도 정작 술람미 여인 본인은 심각한 열등감에 빠져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사람은 누구나 자기만의 약점, 콤플렉스가 있습니다. 당연히 아내도 남편도 다 있습니다. 어떤 이는 외모 콤플렉스, 어떤 이는 신장 콤플렉스, 어떤 이는 학력 콤플렉스, 어떤 이는 직업, 생활 수준, 하다 못해 아파트 평수에 대한 열등감을 지닌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이는 자신의 건강, 부부생활에 대한 열등감도 심각합니다. 여러분, 부부는 상대의 열등한 부분을 용납하고 감싸줘야 하는 관계입니다. 하나님이 태초에 하와를 돕는 베필로 지었습니다. 그것은 부부란 처음부터 서로를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아내는 남편을, 남편은 아내를 돕고 서로의 콤플렉스를 극복하며 살아야 합니다. 세상은 절대 우리의 열등감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내 약점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집니다. 그래서 늘 우리는 자신의 약점을 숨깁니다. 혹시라도 남이 내 약점을 눈치 챌까봐 시침을 떼고 삽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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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그러나 가정은 그렇지 않습니다. 가정은 내 열등감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곳입니다. 반드시 가정은 그런 곳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내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나는 평생 그 열등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아내가 남편이 서로의 약점을 찌르면, 그때 받는 상처와 아픔은 평생 갑니다. 치유되지 못한 열등감, 극복되지 못한 콤플렉스가 결국은 작은 여우가 되어 우리의 포도원을 무너뜨린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우리의 과장, 허세, 분노, 폭력, 보복 등은 치유되지 못한 나의 열등감의 발로입니다. 그게 내 정서를 기형으로 만듭니다. 부디 포도원을 허는 열등감이라는 작은 여우를 잡으십시오. 그렇게 하기 전에는 어느 가정에도 행복은 없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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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다음은 고독입니다. 아가서 3장 1절입니다. “내가 밤에 침상에서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를 찾았노라 찾아도 찾아내지 못하였노라.” 이것은 가정 속의 고독입니다. 사실 가정에서 고독을 느낀다는 것은 보통 심각한 얘기가 아닙니다. 원래 가정이란 고독에 대한 하나님의 원초적인 처방입니다. 아담이 홀로 사는 게 좋지 않아 보여 하나님이 하와를 지어 짝이 되게 하시고, 그제서야 하나님이 그 지으신 것을 보고 좋았다고 했습니다. 창세기 2장 24절입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부부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뤄야 고독이 극복됩니다. 이것이 창조의 질서요 법칙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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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오늘날 현실은 어떻습니까? 한 지붕 아래 살지만 제각기 사는 외로운 부부가 많습니다. 한 이불 속에 같이 자지만 고독한 부부가 많습니다. 한솥밥을 먹지만 다른 세계에서 사는 부부, 얼마든지 있습니다. 사실 오늘날의 가정은 더는 가정이 아니라 여인숙일지도 모릅니다. 편리하고 좋은 집이 늘어나지만, 부부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가정은 점점 무너지고 있습니다. 한 몸이 되어야 비로소 부부인데, 그렇지 못하고 제각각이기에 아내는 아내대로, 남편은 남편대로,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자기만의 세계에서 삽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10커플 가운데 4.2 커플은 이미 이혼을 예약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가장 뜨고 있는 사업이 렌트 사업이라고 합니다. 그 가운데 고가의 결혼 예물을 빌려주는 사업이 전망이 밝다고 합니다. 여러분, 미국이나 한국이나 왜 이렇게 이혼이 많을까요? 다투기 때문일까요? 결혼을 하면서 이미 반 정도는 이혼을 예약하고 있을까요? 하나님은 남녀로 결혼해서 한 몸이 되어야 외롭지 않고 원초적 고독을 극복할 수 있다고 했는데, 다 한 몸이 되는 데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혼해도 고독하게 되고, 도리어 결혼이 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가정의 고독, 부부의 고독이 바로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입니다. 이 여우를 잡아야 합니다. 서로의 외로움을 관리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여러분의 포도원이 안전하고 행복합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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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무관심도 있습니다. 아가서 5장의 주제가 무관심입니다. 가장 무서운 게 무관심입니다. 무관심은 고독의 상태도 지난 겁니다. 서로를 완전히 포기하고 체념한 상태입니다. 더는 질투, 미움, 서로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의지나 노력도 사라지고, 당장에는 대안이 없기에 무감정으로 기계처럼 사는 겁니다. 이런 가정이 생각보다 많고,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요즘은 남편이나 아내가 외도를 해도 흥분하지 않습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태연하게 삽니다. 이렇게 서로에 대해 극단적으로 무관심한 가정의 특징은 당연히 대화가 없습니다. 부부 사이에 자녀 사이에도 대화가 없습니다. 꼭 필요한 말이 있으면 문자로 보냅니다. 스마트폰이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카카오톡이 나를 푸른 초장 잔잔한 물가로 인도한다고 하면서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성서적으로 말하면, 부부 간의 무관심은 죄입니다. 큰 죄입니다. 깊은 관심을 갖고 아내의 애로, 남편의 고통이 무엇인지, 자녀의 필요와 고민이 무엇인지를 알고, 대화하면서 사는 게 성서적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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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그리스도인은 그렇게 살 수 있는 비결이 있습니다. 기도입니다. 부부가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최선의 비결이 기도입니다.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데 무관심할 수 있습니까? 성경에는 아내를 위해 기도했다는 사람이 한 사람 나옵니다. 이삭입니다. 사실 이삭은 아브라함이라는 대단한 아버지와 야곱이라는 대단한 아들 사이에 껴있어서 돋보이지 않는 게 사실입니다. 그는 큰 명성이나 재산을 일구지는 못했습니다만, 가정적으로는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내가 셋이나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녀와 아내 사이에 불화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야곱도 마찬가집니다. 이삭만은 평생 한 아내와 살았습니다. 이삭이 성공하면서 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아내를 위해 평생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리브가라고 해서 완벽한 여인은 아니었습니다. 결혼한 지 15년 동안 아이가 없었습니다. 아브라함 경우는 이런 상황을 견디지 못해 첩을 두지만, 이삭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내의 아픔을 함께 겪습니다. 그러다 20년 만에 쌍둥이를 얻습니다. 남편을 위해 기도하는 아내는 많지만, 아내를 위해 기도하는 남편은 드뭅니다. 아내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남편이 아내를 위해 기도하면 아내가 배웁니다. 물론 자녀도 배웁니다. 이것이 바로 무관심을 극복하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가르치는 무관심이라는 여우를 잡는 최선의 길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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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27 -->
<p class="p1">본문은 우리를 위하여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더는 방치하면 안 됩니다. 이대로 방치하면 결국 우리 가정도 무너집니다. 우리의 포도원을 헐고 있는 작은 여우를 잡읍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사랑의 보금자리, 우리의 포도원을 끝까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킬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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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br></p>
<!-- paragraph:p0029 -->
<p class="p1"><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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