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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20160424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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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계 3:7-1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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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빌라델비아교회</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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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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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9] 보라 사탄의 회당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아니하고 거짓말 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그들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11]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12]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13]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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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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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미국 동부 펜실베니아주에 필라델피아가 있습니다. 그 주에서는 가장 큰 도시이고, 미국 전체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큰 도시입니다. 미국 종합대학 중 가장 먼저 설립된 펜실베니아 대학이 거기에 있습니다. 담백하고 냄새가 없는 필라델피아 치즈도 거기에서 나옵니다. 필라델피아는 헬라말의 조합입니다. 필로스(사랑)이란 말과 아델포스(형제)라는 말의 합성어입니다. 형제사랑이란 뜻이 필라델피아입니다. 미국의 이 도시가 오늘 본문의 빌라델비아 이름을 차용한 것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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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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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요한계시록은 사도 요한이 에게해 밧모섬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책입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가 등장합니다. 일곱 교회가 요한계시록의 공동 수신자입니다. 그들 가운데는 주님으로부터 책망만 들은 교회도 있고, 칭찬과 책망을 들은 교회도, 칭찬만 들은 교회도 있습니다. 칭찬만 들은 교회는 서머나와 빌라델비아교회입니다. 7절 이하입니다. “[7]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8]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하지 아니하였도다.” 저는 이보다 더 아름답고 희망적인 말씀은 없는 것 같습니다. 주님이 빌라델비아교회에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문을 여십니다. 누구도 닫지 못하는 문은 바로 기회의 문, 무한한 가능성의 문, 희망과 축복의 문, 구원의 문, 천국의 문입니다. 주님은 이 외에도 더 많은 복을 약속하십니다. 9절 하반절을 보면 세상으로 하여금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 알게 하겠다고 하고, 10절에서는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겠다, 11절에서는 면류관을 뺏지 않겠다, 12절에서는 하나님의 이름, 새 예루살렘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 하나님의 성의 기둥이 되게 하겠다고 하십니다. 주님이 우리 푸른교회에 이러한 복과 희망을 주시기를 고대하는 마음으로 오늘 본문을 택했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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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11 -->
<p class="p1">그러면 빌라델비아교회는 어떻게 해서 이런 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까?</p>
<!-- paragraph:p0012 -->
<p class="p1">8절 하반절입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작은 능력을 가지고서도 내 말을 지키며.” 빌라델비아는 실제 가장 작은 능력을 가진 교회였습니다. 소아시아 일곱 교회 가운데 규모도 작고, 설립역사도 일천했고, 그 구성원들도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그들을 작은 능력을 가졌다고 하셨습니다. 그 교회는 여성 중심의 교회였고, 게다가 노예계급이 주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힘이 없고 초라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빌라델비아교회는 주님 말씀에 순종했고,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주님을 욕되게 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규모가 컸던 라오디게아교회를 보면 칭찬은 없고 책망만 듣습니다. 17절입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라오디게아교회 못지 않게 교세가 컸던 사데교회도 보십시오. 1절 하반절입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왜 이렇게 많은 능력을 가진 큰 교회, 힘 있는 교회, 부자 교회들이 다 눈 먼 교회요 벌거벗은 교회요 살았다고 하나 실은 죽은 교회라고 합니까? 무엇보다 그들은 주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불리하면 신앙 양심도 져버리며 제 욕심, 제 편리대로 살았던 교회였습니다. 오직 인간적 생각과 탐욕으로만 살았던 교회였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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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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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우리 기독교와 타종교의 차이점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이 차이점을 명확히 인식하며 살았습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알라딘의 요술램프입니다. 초능력은 마왕이 가졌지만, 주인은 램프를 가진 알라딘입니다. 알라딘이 주체입니다. 이게 세상 종교들의 실체입니다. 나의 소원 성취를 위해 초월적 힘을 가진 신을 동원하고, 내 뜻을 이루기 위해 신을 부리고 최대한 이용하는 종교입니다. 신은 어디까지나 내 소원과 뜻을 이루기 위해 존재하는 종이고, 요술램프의 마왕일 뿐입니다. 실제 요술램프에서 나온 마왕이 ‘주인님, 부르셨습니까?’ 라고 말하면서 무슨 소원이든 이뤄주겠다고 합니다. 마왕이 신인데도 인간을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이게 세상 종교의 본질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그와 정반대입니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영원한 주체입니다. 내 말과 소원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이루자는 종교가 기독교입니다. 아무리 내 기호와 정서, 필요에 맞다 해도 주님 뜻에 맞지 않으면 가차 없이 내 뜻을 접고 주님 뜻에 순종하는 게 기독교 신앙입니다. 신의 능력을 이용해 자기의 소원을 이루자는 종교와 작은 능력으로나마 어떻게든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이루자는 종교, 이 얼마나 대조적입니까? 여러분, 기독교는 결코 착한 사람을 만들자는 단체, 헌금 많이 해 가난한 사람을 돕자는 자선단체, 기도해서 내 소원을 이루자는 기복집단이 아닙니다. 물론 이런 모습이 기독교 안에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것들이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아닙니다. 기독교 신앙은 능력이 적다고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능력이 많다고 하나님 말씀을 더 잘 지킬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사람들 눈에는 빌라델비아가 가장 작고 초라한 교회였지만, 주님이 보실 때는 어느 교회보다 주님 말씀에 순종하는 아름다운 교회였습니다. 반면에 사데, 라오디게아 교회는 크고 잘 사는 교회였고, 교세를 자랑하며 시위하는 교회였지만, 주님이 보실 때는 그들은 오히려 죽은 교회, 가련한 교회, 눈 먼 교회, 헐벗은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8절입니다.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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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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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빌라델비아 교회야 말로 우리가 꿈 꿔 마땅한 가장 이상적인 교회입니다. 우리도 빌라델비아 교회처럼 가난하고 작은 능력밖에 없지만, 주님 말씀에 더욱 순종합시다. 그러면 주님이 반드시 우리 앞에 모든 가능성과 희망의 문을 여사, 우리로 하여금 시험의 때를 면케 하시고, 제 아무리 우리의 면류관을 빼앗으려 해도 빼앗지 못하게 하시고, 우리를 성전의 든든한 기둥으로 세우실 것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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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18 -->
<p class="p1">빌라델비아 교회는 8절 하반절 말씀처럼 끝까지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은 교회였습니다. 당시 소아시아는 로마 식민통치 하에 있었고, 일제가 우리에게 신사참배를 강요했던 것처럼, 로마도 식민지 백성에게 황제숭배를 강요했습니다. 요한계시록이 기록될 당시의 로마 황제는 도미티아누스였습니다. 그는 아시아 쪽에 집중적으로 황제숭배를 강요했고, 이를 거부하는 기독교 신자에게는 혹독한 박해가 가해지는 암울한 시대였습니다. 교부 폴리캅은 요한계시록 저자인 사도 요한의 수제자였습니다. 그는 당시 빌라델비아 교회와 함께 칭찬만 들었던 서머나 교회의 목회자였습니다. 폴리캅이 순교를 당하던 현장에서, 집행관이 ‘지금이라도 하나님을 부인하면 살려주겠다’고 하자,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예수를 믿는 86년 동안 주님은 한 번도 나를 모른다고 하지 않았는데, 내가 어찌 주를 배신하고 황제를 숭배할 수 있겠냐’고 하며 장렬히 화형을 당합니다. 그때 다른 11명의 성도도 함께 처형을 당했는데, 그 가운데 10명이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였습니다. 이렇듯 빌라델비아 교회는 비록 작은 능력의 교회였지만, 끝까지 주님을 배반하지 않고 위대한 순교자들을 배출한 교회였습니다. 빌라델비아 교회 성도들은 주님을 배반하느니 차라리 순교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그 어떤 박해와 고난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신앙의 정절을 지켰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그들을 귀하게 여기시고 그들 앞에 누구도 닫지 못하는 희망의 문, 구원의 문을 활짝 여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능력이 작고, 처한 사정과 형편이 열악하다며 극심한 패배주의에 빠져 삽니다. 그러나 빌라델비아 교회는 우리보다 사정이 훨씬 더 딱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늘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죽음을 택할지언정 주님의 이름을 배반하지 않고 꿋꿋이 살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빌라델비아 교회를 통해 큰 보람을 얻으셨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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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20 -->
<p class="p1">여러분, 창립기념주일인 오늘 우리도 빌라델비아 교회를 꿈 꿉시다. 우리의 롤모델로 삼읍시다. 우리의 작은 능력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칭찬을 들으며 활짝 열린 희망의 문의 복을 받읍시다. </p>
<!-- paragraph:p0021 -->
<p class="p1"><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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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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