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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20w 사사기 강해 14 (삿 11:29-40)

20160420w 사사기 강해 14

삿 11:29-40


[29] 이에 여호와의 영이 입다에게 임하시니 입다가 길르앗과 므낫세를 지나서 길르앗의 미스베에 이르고 길르앗의 미스베에서부터 암몬 자손에게로 나아갈 때에 [30]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 주시면 [31]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32] 이에 입다가 암몬 자손에게 이르러 그들과 싸우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그의 손에 넘겨 주시매 [33] 아로엘에서부터 민닛에 이르기까지 이십 성읍을 치고 또 아벨 그라밈까지 매우 크게 무찌르니 이에 암몬 자손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항복하였더라 [34] 입다가 미스바에 있는 자기 집에 이를 때에 보라 그의 딸이 소고를 잡고 춤추며 나와서 영접하니 이는 그의 무남독녀라 [35] 입다가 이를 보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어찌할꼬 내 딸이여 너는 나를 참담하게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로다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 하니 [36] 딸이 그에게 이르되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여셨으니 아버지의 입에서 낸 말씀대로 내게 행하소서 이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음이니이다 하니라 [37] 또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이 일만 내게 허락하사 나를 두 달만 버려 두소서 내가 내 여자 친구들과 산에 가서 나의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겠나이다 하니 [38] 그가 이르되 가라 하고 두 달을 기한하고 그를 보내니 그가 그 여자 친구들과 가서 산 위에서 처녀로 죽음을 인하여 애곡하고 [39] 두 달 만에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아온지라 그는 자기가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하니 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였더라 이것이 이스라엘에 관습이 되어 [40] 이스라엘의 딸들이 해마다 가서 길르앗 사람 입다의 딸을 위하여 나흘씩 애곡하더라


사람은 누구나 약점도 있고, 그 사람만의 강점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약점을 얼마나 잘 관리하고 극복하면서 최대한 강점을 잘 살리는 것이 그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합니다. 입다 역시도 여러 약점이 많았습니다. 서자로 태어났고, 불행한 환경에서 자라다가, 결국 적자들에 의해 쫓겨나 오지에 가서 은둔생활을 하다시피 합니다. 그럼에도 입다는 자신의 태생적 약점들을 잘 극복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달란트를 최대한 계발해 발휘했습니다. 마침내 그는 이스라엘의 제8대 사사가 되어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을 구합니다. 입다는 사사가 된 후에도 무조건 이스라엘의 천적이요 원수인 암몬과 전쟁을 벌이지는 않았습니다. 집요하게 대화를 시도하며 외교전을 벌입니다. 사사들 가운데서 보기 드물 만큼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합니다. 


그럼에도 입다 역시 뼈아픈 실패와 좌절을 겪습니다. 그의 실패와 좌절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그의 경솔한 서원 때문에 피를 흘립니다. 30-21절입니다. “[30] 그가 여호와께 서원하여 이르되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넘겨 주시면 [31]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물로 드리겠나이다 하니라.” 입다가 암몬을 상대로 벌인 외교적 협상에서 실패하자 결국 전쟁을 벌이는데,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 그는 한 가지 서원을 합니다. 입다의 이 서원은 잘못된 겁니다. 반드시 그 전쟁에서 이기게 해달라는 간절함의 표현으로 이러한 서원을 택했습니다만, 사람을 번제물로 바친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입다가 왜 이런 서원을 했겠는가 하는 점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이방인의 제사풍속에 큰 영향을 받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신앙이 이방 신앙의 영향 아래 놓여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행태가 이스라엘 사회에 만연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레위기 18장, 20장에 보면 인신제사를 하나님은 엄격히 금하고 있습니다. 사사의 신앙에도 이방신의 풍속이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혼합주의라고 부릅니다. 오늘날도 이런 모습이 여러 면에서 드러납니다. 분명히 하나님을 섬긴다는데도 그 안을 들여다보면 불교적, 유교적, 무속적인 모습이 드러납니다. 불교나 유교가 우리 전통 신앙이었기 때문입니다. 입다가 바로 그랬습니다. 원수들과의 전쟁을 앞두고 하나님 앞에서 비상하게 기도하며 서원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엉뚱하게 사람을 번제물로 바치겠다고 서원한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서원은 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부흥회에 참석하면서, 감동 된다고 덜컥 몇 천 만원 몇 억씩 헌금하겠다고 합니다. 또는 다급할 때는 서원해놓고 상황이 바뀌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서원을 모른 체 합니다. 신학교에 가보면 바울, 요한, 다니엘 등의 이름을 가진 학생들이 여럿 있습니다. 이건 대부분 목회자가 되라는 부모의 서원에 의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학생들은 신학교에 와서 갈등을 많이 합니다. 서원은 본인이 해야 합니다. 서원했으면 이행해야 합니다. 터무니없는 서원을 했다가 그걸 깨버려도 하나님은 이해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경박함, 무모함을 다 아십니다. 이미 하나님은 용서하셨습니다. 그러나 본인은 평생 자기의 서원으로 상처를 안고 삽니다. 서원은 복되고 좋은 것이지만 신중하게 해야 합니다. 입다는 일단 가혹한 서원을 했습니다. 그러나 입다의 이 서원은 본인에게, 그의 가족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었습니다. 딸을 번제물로 바친 겁니다. 이게 입다가 막무가내 서원을 하고 당한 아픔과 상처입니다. 


입다는 복수를 해도 무자비하게 복수를 합니다. 이것 또한 입다의 실패의 원인입니다. 

사사기 12장 1-7절입니다. “[1] 에브라임 사람들이 모여 북쪽으로 가서 입다에게 이르되 네가 암몬 자손과 싸우러 건너갈 때에 어찌하여 우리를 불러 너와 함께 가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우리가 반드시 너와 네 집을 불사르리라 하니 [2] 입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와 내 백성이 암몬 자손과 크게 싸울 때에 내가 너희를 부르되 너희가 나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지 아니한 고로 [3] 나는 너희가 도와 주지 아니하는 것을 보고 내 목숨을 돌보지 아니하고 건너가서 암몬 자손을 쳤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겨 주셨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오늘 내게 올라와서 나와 더불어 싸우고자 하느냐 하니라 [4] 입다가 길르앗 사람을 다 모으고 에브라임과 싸웠으며 길르앗 사람들이 에브라임을 쳐서 무찔렀으니 이는 에브라임의 말이 너희 길르앗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에서 도망한 자로서 에브라임과 므낫세 중에 있다 하였음이라 [5] 길르앗 사람이 에브라임 사람보다 앞서 요단 강 나루턱을 장악하고 에브라임 사람의 도망하는 자가 말하기를 청하건대 나를 건너가게 하라 하면 길르앗 사람이 그에게 묻기를 네가 에브라임 사람이냐 하여 그가 만일 아니라 하면 [6] 그에게 이르기를 쉽볼렛이라 발음하라 하여 에브라임 사람이 그렇게 바로 말하지 못하고 십볼렛이라 발음하면 길르앗 사람이 곧 그를 잡아서 요단 강 나루턱에서 죽였더라 그 때에 에브라임 사람의 죽은 자가 사만 이천 명이었더라 [7] 입다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 지 육 년이라 길르앗 사람 입다가 죽으매 길르앗에 있는 그의 성읍에 장사되었더라.” 에브라임 족속이 문제입니다. 기드온 때도 나팔을 불 때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가 전쟁이 끝난 뒤에 승리하면 나타나서 왜 우리를 안 불러줬냐며 어깃장을 놓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집니다. 입다가 싸우러 갈 때 도와달라고 할 때는 엎드려있다가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오니 떼로 몰려와 왜 우리를 부르지 않았느냐, 왜 우리와 함께 가지 않았느냐며 시위하고 협박합니다. 1절 하반절을 보면 “우리가 반드시 너와 네 집을 불사르리라”고 합니다. 적반하장입니다. 에브라임은 암몬 사람에게서 빼앗은 것에 대한 지분을 달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에브라임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이 지파가 북 이스라엘에 속한 최대 지파여서 그렇습니다. 그런 자기들의 세를 업고 과시하면서 입다에게 떼로 몰려와 큰소리를 치면서 책임을 묻겠다는 겁니다. 입다가 어떻게 했습니까? 


기드온은 그들을 달랬습니다. 그러나 입다는 내가 분명히 요청했음에도 당신들이 응하지 않았다며 정면으로 맞섭니다. 입다는 에브라임과 내전을 벌입니다. 입다가 죽인 에브라임 사람의 숫자가 4만2천 명입니다. 동족 에브라임의 절반을 죽인 겁니다. 도망가는 사람을 추적해 죽이고, 숨은 사람은 수색해 죽입니다. 이것은 입다의 치적에 치명적인 오점입니다. 입다에겐 한이 있습니다. 형제에게 소외당하고 박해를 받은 것 말입니다. 그런데 이게 어떤 기회에 폭발하니 이런 결과를 가져온 겁니다. 


입다는 서원을 잘못해 딸을 번제물로 바치고, 동족을 무려 4만 이상이나 죽이는 과오를 범합니다. 우리가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것은 히브리서 11장 32절을 볼 때입니다. 거기에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 명단에 입다의 이름을 볼 수 있는 겁니다. 입다의 과오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를 받아주셨다는 겁니다. 입다는 큰 업적도 냈지만, 동족을 4만 이상이나 살해하는 과오도 범했고, 자신의 멀쩡한 딸을 번제로 바치는 오점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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