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60417m 에바다(막 7:31-37)

20160417m

막 7:31-37

에바다


[31]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방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방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32] 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33]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34]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35]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 [36] 예수께서 그들에게 경고하사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 경고하실수록 그들이 더욱 널리 전파하니 [37] 사람들이 심히 놀라 이르되 그가 모든 것을 잘하였도다 못 듣는 사람도 듣게 하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


오늘은 예장 통합 총회가 지정한 장애인 주일입니다. 금주 수요일은 정부가 1981년에 제정한 장애인의 날입니다.


성경은 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큽니다. 특히 주님은 현장에서 장애인을 많이 상대하셨고, 고치셨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주님이 장애인을 치유하시는 내용이 많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도 그렇습니다. 갈릴리 호숫가에서 귀먹고 말 더듬는 장애인을 고쳐주시는 장면입니다. 마가복음 8장에도 시각 장애인을 고쳐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8장 18절에서는 주님이 이런 말씀도 하십니다.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주님이 관심하시는 장애는 육체적인 장애뿐 아니라 정신적, 영적 장애도 포함합니다. 누가 장애인일까요? 목발을 짚거나, 휠체어를 타거나, 안내견의 도움을 받는 그런 사람들만 장애인입니까? 그런 육체적 장애보다 정신적이고 영적 장애를 가진 사람이 더 심각한 장애인 아닙니까? 정신적, 영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더욱 주님의 구원이 절실한 진정한 장애인들 아닙니까? 요즘은 정신적 장애인들이 늘고 있습니다. 겉은 멀쩡하나 속은 그렇지 않습니다. 육체적으로도 나만 아는 장애, 내 가족들만 아는 육체적 장애 한두 가지씩은 다 갖고 있습니다. 정신적인 것도 마찬가집니다. 요즘은 가정들도 다 장애를 갖고 있습니다. 흔들리거나 비틀거리는 가정이 많습니다. 이사야가 당시 이스라엘을 진단하기를, 온 마음이 병들고 발바닥에서 머리끝까지 성한 곳이 없다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딱 그 모양입니다. 우리가 다 중증 장애인들입니다. 제 아이들은 둘 다 장애가 있습니다. 둘째는 턱이 돌아가 비대칭이어서 수술했고, 독일 나가기 1년 전에는 공황장애까지 왔습니다. 아직도 약을 먹고 있습니다. 첫째도 틱 장애를 갖고 있습니다. 멀쩡한 것 같아도 따지고 보면 우리가 다 장애인들입니다. 장애인을 온전케 하신 주님이 우리의 눈과 귀를 열게 하시는 치유의 역사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육체뿐 아니라 정신적이고 영적인 장애가 다 치유 받기를 바랍니다.


주님은 장애인을 이렇게 고치셨습니다. 

우선 주님은 이 장애인을 따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33절 상반절입니다.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주님은 일단 장애인을 무리에서 불러내서 따로 만나주셨습니다. 주님은 언제나 이렇게 하십니다. 이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주님은 절대 우리를 단체로 만나지 않고 개인 면담을 하십니다. 사람들이 큰 교회를 선호하는 이유가 사람들 사이에 끼어앉았다가 그들에 묻혀서 빠져나올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사람들 사이에 섞여 적당히 예배드리고 적당히 빠져나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그렇게 만나시지 않습니다. 반드시 개인적으로 만나십니다. 주님을 개별적으로 만나야 나의 장애를 고치십니다. 마가복음 8장에 나오는 맹인 고치는 장면도 마찬가집니다. 23절입니다. “예수께서 맹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패턴이 똑같습니다. 항상 무리 가운데서 불러내십니다. 1:1로 만나십니다. 이런 분들이 있습니다. ‘우리 집사람이 열심히 믿으니 집사람 덕분에 저도 천국 가겠지요.’ 그런 법은 없습니다. 물론 부모가 잘 믿고, 부부가 잘 믿으면 신앙적 영향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만 신앙적으로 돕는 것이지, 신앙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남편이나 아내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다 각자가 하나님 앞에서 고독한 단독자입니다. 따라서 궁극적으로는 모두가 따로 따로 주님을 만나고, 주님과 함께 마을 밖으로 나가야 하고, 가장 진지하고 엄숙한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눈이 열리고, 귀가 트이고, 혀가 풀리는 역사가 일어나고, 우리 정신까지도 온전케 되는 치유의 역사를 체험합니다. 1:1의 관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주님은 장애인의 믿음을 자극하셨습니다. 33절 하반절입니다.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이 장면을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특이합니다. 어떻게 보면 주술적인 냄새가 납니다. 이것은 귀 먹고 어눌한 장애인의 믿음을 자극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주님은 이런 식의 접촉을 통해 장애인의 믿음을 자극하신 것입니다. 말을 들을 수 없었고, 말을 할 수도 없었기에, 이러한 스킨십을 통해 그와 소통하신 겁니다. 주님이 양 귀에 손가락을 넣는 순간, 그 장애인이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이제 주님이 내 귀를 뚫어주시나 보다. 주님이 그의 혀에 손을 댔을 때, 주님이 내 맺힌 혀를 풀어 주시려나 보다고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없었기에 귀에 손가락을 넣은 것이고, 혀가 어눌했기에 혀에 손을 대신 겁니다. 장애인과의 소통을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주님이 왜 이렇게 장애인의 믿음을 자극하셨을까요? 왜 주님이 그 장애인으로 하여금 믿음을 발동하게 하셨을까요? 믿음이 없는 곳에는 치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고 하셨습니다. 믿음이 없는 곳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적을 베푸시기 전에 먼저 믿음을 고무시킨 겁니다. 믿음이 없는 곳에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본문 앞 장인 6장 5절 이하를 보면, 주님이 자기 고향에서는 아무런 기적도 행하실 수 없었다고 했습니다. 왜냐면 고향 사람들이 주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13장 58절도 이렇습니다. “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 주님은 믿지 않는 사람들 앞에서는 이적을 행치 않으셨습니다. 믿음이 없는 곳에는 기적도 없습니다. 


그러면 왜 믿지 않는 곳에는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지 않을까요? 믿음이 없는 곳에는 기적이 일어나봐야 그게 하나님의 영광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욕이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믿음이 없는 곳에서는 오히려 그 기적이 화가 됩니다. 마가복음 3장을 보면, 주님이 안식일에 회당에서 한쪽 손이 불구가 된 사람을 고쳐주신 얘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6절을 보면 그 이적으로 인해 바리새인들이 나가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면 예수를 죽일까 의논했다고 합니다. 마가복음에 의하면, 그 장애인을 고쳐주신 이적이 주님 죽음의 최초 동인이 됩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이적도 마찬가집니다. 요한복음 11장 53절입니다. “이날부터 저희가 예수를 죽이기로 모의하니라.” 주님은 사흘 만에 부활했으나 나사로는 나흘 만에 살아났습니다. 주님이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나사로를 살리신 것 때문에 유대 지도층이 예수를 죽이기로 모의한 겁니다. 왜 그랬을까요?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본문 36절도 보십시오. “예수께서 그들에게 경고하사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왜 예수님이 함구령을 내리신 걸까요? 믿음이 없는 사람에게 선전해봐야 도움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화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주님의 기적을 선전했습니다. 주님께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유대인이 더 주님을 박해했습니다. 


시편 40편 5절입니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아 누구도 주와 견줄 수가 없나이다.” 믿음이 있는 곳에만, 도움이 되는 곳에만 이적을 허락하십니다. 주님의 권능은 언제나 우리의 믿음을 만나야 비로소 놀라운 영적 시너지가 발생하며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씀하는 이적의 법칙이요 기적의 공식입니다. 여러분, 영적 장애, 육체적 장애, 가정적 장애, 정신적 장애가 말끔하게 치유되기를 바라신다면, 믿음을 가지십시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고, 이적도 체험하지 못합니다. 주님은 이적도 많으시지만 동시에 생각도 깊으셔서 함부로 이적을 남발하지 않으십니다. 그게 도움이 될 때 베푸십니다. 그래서 믿음이 절대적입니다. 믿음을 갖고 주님의 기적을 체험하는 복 있는 성도가 되십시다.


주님은 장애인을 앞에 두고 하늘을 우러러 보셨습니다. 34절 상반절입니다.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주님이 기도했다는 뜻입니다. 주님이 하늘을 우러러 보시며 탄식하십니다. 탄식이란 말은 원어로는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신음소리를 내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절절한 연민으로 신음과도 같은 기도를 바쳤다는 뜻입니다. 기도 없는 이적은 없습니다. 이적은 항상 기도 응답의 결과입니다. 주님도 하늘을 우러러 신음 같은 기도를 드리며 눈멀고 혀 어눌한 장애인을 고치셨습니다. 하물며 우리이겠습니까? 기도는 축복과 치유의 통로입니다. 하나님의 그 무한하신 권능이 우리에게 전달되는 파이프 라인입니다. 진심으로 영적이고 육체적이며 정신적인 장애에서 놓여나기를 원하신다면, 필수적으로 기도하셔야 합니다. 성경의 숱한 이적들을 보십시오. 기도 없는 이적은 한 건도 없습니다. 주님처럼 신음하듯이 기도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간절하고 절절히 기도하시면 반드시 귀가 열리고 혀가 풀리며 내 정신적이고 영적인 장애가 해소됩니다. 주님이 장애인 고치다가 실패한 케이스는 없습니다. 


주님이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시며 <에바다>, <열리라>하시니 곧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이 분명해지고 주변 사람들이 크게 놀랐다고 합니다. 주님을 꼭 개인적으로 만나십시오. 주님만이 나의 모든 장애를 일거에 해소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절절한 기도를 드리십시오. 그래서 반드시 <에바다>하시는 주님의 뜨거운 육성을 들으십시오. 그래서 모든 장애를 이기고 건강한 삶을 살기를 기원합니다. 



원문 자료와 첨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