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60403n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눅 24:13-35)

20160403n

눅 24:13-35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13]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14] 이 모든 된 일을 서로 이야기하더라 [15] 그들이 서로 이야기하며 문의할 때에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16]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 [17]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18] 그 한 사람인 글로바라 하는 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이 예루살렘에 체류하면서도 요즘 거기서 된 일을 혼자만 알지 못하느냐 [19] 이르시되 무슨 일이냐 이르되 나사렛 예수의 일이니 그는 하나님과 모든 백성 앞에서 말과 일에 능하신 선지자이거늘 [20] 우리 대제사장들과 관리들이 사형 판결에 넘겨 주어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1]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22]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23]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24]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27]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28] 그들이 가는 마을에 가까이 가매 예수는 더 가려 하는 것 같이 하시니 [29] 그들이 강권하여 이르되 우리와 함께 유하사이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 하니 이에 그들과 함께 유하러 들어가시니라 [30] 그들과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니 [31]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그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32]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33]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34]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13절입니다. “그 날에 그들 중 둘이 예루살렘에서 이십오 리 되는 엠마오라 하는 마을로 가면서.” 여기서 그 날은 주님이 부활하신 당일입니다. 바로 부활하신 그 날에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에게 벌어진 일입니다. 부활절 오후 황혼 무렵이었던 것 같습니다. 두 제자의 형편을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두 제자는 눈이 가려져 있었습니다. “그들의 눈이 가리어져서 그인 줄 알아보지 못하거늘”(16절) 오늘도 마찬가집니다. 이런 제자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영안이 어두워 주님이 함께 가고 계신데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주님이 계속 그들과 말씀하셨음에도 주님의 말씀을 바르게 듣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슬픔에도 빠져있습니다. 17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길 가면서 서로 주고받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이냐 하시니 두 사람이 슬픈 빛을 띠고 머물러 서더라.” 십자가 사건의 충격 때문에 그들은 아직도 깊은 슬픔에서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딱한 노릇입니다. 주님은 이미 그날 새벽에 부활하셨지만, 그들은 십자가의 충격과 슬픔에 잠겨있습니다. 


그들은 또한 실망감에도 빠져있습니다. 21절입니다.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속량할 자라고 바랐노라 이뿐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가 사흘째요.” 주님에 대한 실망의 빛이 역력합니다. 


그들은 극심한 불신앙에 빠져있습니다. 22절 이하입니다. “[22] 또한 우리 중에 어떤 여자들이 우리로 놀라게 하였으니 이는 그들이 새벽에 무덤에 갔다가 [23] 그의 시체는 보지 못하고 와서 그가 살아나셨다 하는 천사들의 나타남을 보았다 함이라 [24] 또 우리와 함께 한 자 중에 두어 사람이 무덤에 가 과연 여자들이 말한 바와 같음을 보았으나 예수는 보지 못하였느니라 하거늘.” 그들도 이미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부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에게는 주님의 부활을 받아들이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부활 소식을 듣고도 여전히 슬픔에 빠져있었고, 실망한 나머지 낙향하고 있는 겁니다. 


이 얼마나 부끄러운 제자들입니까? 그래서 주님도 이 둘을 꾸짖습니다. 25절 이하입니다. “[25]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당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의 형편이 이랬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그들을 축복하십니다. 그들을 친히 찾아오셔서 동행해주셨습니다. 맹목과 슬픔과 좌절에 빠져 예루살렘을 등지고 엠마오로 낙향하던 그들을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14절 하반절입니다. “예수께서 가까이 이르러 그들과 동행하시나.” 예수님이 그들을 찾아가신 겁니다. 이 두 제자에게 잘난 게 무엇이라고 주님이 그들을 찾아가십니까? 그래서 은혜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주님을 찾아가거나, 우리가 주님과 동행한다기보다는 주님이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우리는 늘 달아나고 주님이 우리를 추적하십니다. 주님이 내게 다가와 동행해주십니다. 툭하면 불신과 맹목과 좌절에 빠져 예루살렘을 등지기만 하는 우리지만, 주님은 매번 우리를 다시 찾아오셔서 동행해주십니다. 


또한 주님은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쳐 주십니다. 27절입니다.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주님이 우리에게 찾아와서 하시는 일이 말씀 가르치는 일입니다. 마가복음 16장에 보면 이렇습니다. “그 후에 그들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그들에게 나타나시니.”(12절) 주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실 때는 어떤 모습일지는 모릅니다만, 주님이 우리를 찾아와서 하시는 일이 말씀을 가르치고 깨닫게 하는 일입니다. 누가복음 24장 45절입니다.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주님이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셔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똑같은 말씀인데 어떤 사람은 은혜를 받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못합니다. 무슨 차이일까요? 마음이 열려있느냐 아니냐의 차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들을 때 주님이 우리 마음을 열어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주님의 말씀이 내 마음에 와 닿고, 우리는 결단할 수 있습니다.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를 찾아가신 주님이 그들에게 말씀을 가르쳐 주시고, 마음을 열어 감동을 받게 하셨습니다. 


두 제자를 찾아오셔서 동행해주시고, 말씀을 가르치고 깨닫게 해주시자, 그들의 어두웠던 두 눈이 밝아졌습니다. 31절 상반절입니다. “그들의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면 무엇보다 우리 눈이 밝아집니다. 진리가 무엇인지, 나를 향한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가 보입니다. 영안이 열려 신령한 것들이 보입니다. 지금까지도 말씀이 없었던 게 아닌데, 지금까지도 내 곁에 주님이 계시지 않았던 게 아닌데, 단지 내 눈이 가려져 있었기에 못 보고, 못 들은 겁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체험하고 나면 그때부터 보이기 시작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내 귀에 들어옵니다. 주님의 말씀이 내 가슴에 와 닿으면 감동하게 됩니다. 


주님을 만난 두 제자는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32절입니다. “그들이 서로 말하되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하고.” 주님을 뵈면 마음이 뜨거워집니다. 진한 감동이 있다는 뜻입니다. 말씀을 읽을 때, 말씀을 들을 때, 여러분의 마음이 뜨거워지면, 그때는 주님이 여러분을 찾아오셔서 말씀을 풀어주고 계신 줄 믿으십시오. 요즘은 주님이 아니면 누구도 사람을 감동시킬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생각보다 훨씬 더 강퍅해져있습니다. 주님이 아니고서는 우리 마음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주님만이 굳게 닫힌 우리 마음 문을, 그야말로 무덤의 돌문을 열어주실 수 있습니다. 나의 냉랭한 가슴에 뜨거운 성령의 불을 지필 수 있습니다. 


주님은 두 제자를 예루살렘 성전으로 돌아가게 하십니다. 33-35절입니다. “[33] 곧 그 때로 일어나 예루살렘에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 및 그들과 함께 한 자들이 모여 있어 [34] 말하기를 주께서 과연 살아나시고 시몬에게 보이셨다 하는지라 [35] 두 사람도 길에서 된 일과 예수께서 떡을 떼심으로 자기들에게 알려지신 것을 말하더라.” 좌절하고 실망해서 예루살렘으로 등지고 엠마오로, 옛 삶으로 돌아가던 그들을 주님이 돌이켜 복귀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회복을 뜻합니다. 누가복음 24장 마지막 52-53절입니다. “[52] 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53]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그에게 경배했다는 것은 예배생활의 회복을 뜻하고, 성전에서 찬송했다는 것은 기쁨을 회복했다는 것이고, 늘 성전에 있었다는 것은 교회생활을 회복했다는 의미입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어두운 우리 눈을 밝히시고, 냉랭했던 가슴을 뜨겁게 하시고, 잃었던 모든 것을 되찾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부활의 은총, 생명력이 여러분께도 함께 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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