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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20160327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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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고전 15:51-58</p>
<!-- paragraph:p0003 -->
<p class="p1">마지막 나팔소리와 함께</p>
<!-- paragraph:p0004 -->
<p class="p2"><br></p>
<!-- paragraph:p0005 -->
<p class="p1">[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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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07 -->
<p class="p1">여러분의 가정마다 부활의 빛과 새 생명이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p>
<!-- paragraph:p0008 -->
<p class="p1">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장입니다. 바울의 위대한 부활논문이고, 대서사시입니다. 본문 51절 상반절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여기서 말씀하는 비밀이란 당연히 부활의 비밀입니다. 바울이 지금 내가 부활의 비밀을 말하겠다, 공개하겠다고 합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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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10 -->
<p class="p1">부활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까? 죽었다가 다시 산 사람은 주님 외에도 있습니다. 나인성 과부의 아들, 회당장 야이로의 딸, 나흘 만에 다시 살아난 베다니의 나사로도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다 부활한 사람들입니까? 주님이 부활의 첫 열매라고 했는데, 이 말씀은 또 무엇입니까? 어떻게 주님이 부활의 첫 열매입니까? 성경은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나 나사로를 보고 부활했다고 하지 않습니다. 회생(回生)한 겁니다. 부활이 아닙니다. 부활의 진정한 비밀은 무엇입니까?</p>
<!-- paragraph:p0011 -->
<p class="p2"><br></p>
<!-- paragraph:p0012 -->
<p class="p1">본문 51절을 다시 봅니다.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바울이 말씀하는 마지막 나팔은 세상 종말을 고하는 천사들의 최후의 나팔입니다. 주님의 재림을 알리는 나팔입니다. 천사의 그 마지막 나팔소리와 함께 우리가 다 순식간에 변한다고 합니다. 변화가 바로 부활의 비밀이요 핵심입니다. </p>
<!-- paragraph:p0013 -->
<p class="p2"><br></p>
<!-- paragraph:p0014 -->
<p class="p1">어떻게 변화된다는 것일까요? 52절입니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지금은 우리가 살다 죽으면 우리 육신은 흙으로 환원됩니다. 그러나 훗날 마지막 나팔소리와 함께 부활하게 되면, 그때는 절대 썩지 않고 더는 죽지 않는 신비한 몸, 부활체로 변화됩니다. 53절입니다.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더는 썩지도 않고 죽지 않는 신비한 몸으로 홀연히 변화되는 사건이 진정한 부활입니다. </p>
<!-- paragraph:p0015 -->
<p class="p2"><br></p>
<!-- paragraph:p0016 -->
<p class="p1">그러면 질문이 생깁니다. 부활이란 오직 죽은 자들에게만 해당될까요? 아니면 산 자도 부활할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52절을 다시 보십시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우리도 변화되리라고 했습니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몸으로 변화되는 것은 부활의 기본입니다. 게다가 우리도 변화됩니다. 우리는 쉽게 말해서 주님이 재림하실 때, 세상 종말을 알리는 천사들의 나팔소리가 울려퍼질 때, 죽지 않고 살아있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마지막 나팔소리가 울리는 순간 이미 죽은 자들은 그 죽은 상태에서 신비한 부활의 몸으로 변화되어 다시 살아나고, 그때 죽지 않고 살아 있던 자들은 산 채로 부활체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죽은 자는 죽은 자대로, 산 자는 산 자대로 변화된다는 게 부활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은 죽은 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산 자도 신비한 영의 몸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p>
<!-- paragraph:p0017 -->
<p class="p2"><br></p>
<!-- paragraph:p0018 -->
<p class="p1">그러면 우리 몸이 어떻게 변화되는 게 부활일까요? 그 신비한 몸은 어떤 겁니까? 53절입니다.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것이 부활의 진수입니다. 이어지는 54절도 보십시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 사망을 삼키고 이기는 것이 신비한 몸 부활체의 비밀입니다. 우리는 늙고 죽고 썩는 걸 가장 허무해하고 두려워합니다. 부활의 몸으로 우리가 변화되는 더는 늙지 않고, 죽지도 않고, 썩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사로나 야이로의 딸이나 나인성 과부의 아들의 경우는 부활이 아니라, 그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지만 부활체로 변화된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몇 년을 더 살았는지는 모르겠으나 일정기간 살다가 다시 죽었습니다. 부활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부활했다면 다시 죽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은 본래의 몸, 모친 마리아의 태에서 입고 나온 자연적인 몸으로 되살아난 게 아니라 신비한 몸, 부활체로 되살아 나셨습니다. 그래서 주님보다 먼저 죽었다가 산 사람이 몇몇이 있었어도 주님이 진정한 부활의 첫 열매입니다. 주님은 영으로 천국 가신 게 아니라 부활체로 천국에 가셨고,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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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20 -->
<p class="p1">그렇다면 왜 부활에서 변화가 핵심일까요? 부활의 기점으로 그 이후 우리는 죽지도 않고 썩지도 않고 영원히 살아야 합니다. 부활 이후에 우리는 영생합니다. 지금의 몸으로는 우리가 영생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몸은 유통기간이 있습니다. 그저 100년 남짓 됩니다. 그래서 변화가 필수입니다. 영원히 살 수 있는 신비한 몸, 육의 몸이 아닌 죽지 않고 썩지 않는 몸으로 갈아입어야 영생합니다. 그래서 부활의 핵심은 변화에 있습니다. 곤충들이 탈피를 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몸으로 계속 변신합니다. 사람도 탈피해야 합니다. 지금 이 몸은 이 세상에 최적화된 몸입니다. 영원 속에 들어가려면 이 몸으로는 안 됩니다. 부활의 세계는 시공간의 제약이 없는 세계이기에 지금의 몸으로는 거기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세상살이하는 데 필요했던 자연적이고 육적이고 제한적인 몸을 벗고 마지막 나팔 이후에는 영원히 살 수 있는 부활체로 갈아입어야 합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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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22 -->
<p class="p1">우리가 부활을 통해 갈아입게 되는 부활체란 과연 어떤 것일까요? 바울은 고린도전서 15장 35절 이하에서 부활체를 꽃씨와 꽃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꽃씨는 다 볼품이 없습니다. 아름다운 꽃씨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걸 땅에 심어 꽃이 피면 본질은 같지만 꽃씨와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현재의 몸과 부활체가 그렇게 비교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배추벌레가 나비가 되듯이, 굼벵이가 매미가 되듯이, 개미귀신이 명주 잠자리가 되듯이 부활은 아름답고 신비하게 우리 몸을 변화시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2절 이하입니다. “[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꽃씨처럼 볼품없는 것으로 심고 꽃처럼 우아하고 향기롭고 아름다운 것으로 우리가 변화되는 게 부활이라는 겁니다. 그때는 누구나 가장 완전하고 이상적인 모습으로 새로워집니다. 그때는 더는 장애인이 없습니다. 그때는 우리의 가치관, 세계관, 인간관계, 민족관계가 다 새롭게 변합니다. 가족관계도 변합니다. 그때는 저 사람이 내 가족이었다는 걸 다 알지만 새로운 관계로 변합니다. 그때는 지금의 관계로 만나지 않고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두가 한 가족, 한 형제자매가 됩니다. 어떤 분들은 부활해서 지금의 남편과 아내와 살게 될까봐 걱정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염려 마십시오. 그때는 우리가 가장 아름답고 신령한 생각으로 변해있기에 누구도 무섭지도 않고 피할 이유도 없습니다. 어떤 분은 거기서 빚쟁이 만날까봐 걱정하는 분도 있는데 염려 놓으십시오. 그때는 다 용서가 됩니다. 우리가 다 천사가 되는 겁니다. 거기에 무슨 갈등이 있으며 문제가 있겠습니까? 인간관계, 가족관계의 질서가 전혀 새롭게 변화됩니다. 이것이 부활의 세계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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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24 -->
<p class="p1">그런데 주님의 부활과 관련해서 우리가 확인해야 할 또 한 가지 비밀이 있습니다. 주님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주님이 굳이 사흘 만에 부활하셨을까요? 왜 이틀이나 나흘은 안 됩니까? 사흘은 우연이었을까요 필연이었을까요? 당연히 필연입니다. 인류의 죗값을 상쇄하기 위해서는 더도 덜도 아닌 사흘이 필요했습니다. 사흘간 죽음의 세계에 계시면서 지옥의 고통을 당하셔야 비로소 우리의 죗값을 갚을 수 있기에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겁니다. 다시 말해서 이틀 만에는 우리의 죗값이 무거웠고, 나흘을 지옥에 계시는 것은 불필요했다는 겁니다. 이 말씀은 주님의 부활이 우리의 죄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다는 가장 확실한 담보요 물증이라는 뜻입니다. 주님의 부활이 내 구원의 영원한 담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죗값, 전 인류의 죗값보다 주님의 핏값이 더 비싸기에 사흘간 죽어주신 것으로 상쇄되었다는 겁니다. 이 사실을 믿어 의심치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주만물, 온 인류를 다 준다 해도 바꿀 수 없는 게 주님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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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ragraph:p0026 -->
<p class="p1">주님의 부활이야말로 우리의 부활의 보증입니다. 주님이 부활의 첫 열매라는 것은 우리도 그 다음 열매로 부활한다는 뜻입니다. 과수 농사짓는 분들은 사과나무, 배나무 등을 심어 놓고 첫 열매가 달리기를 학수고대합니다. 첫 열매가 달린다는 것은 이제 계속해서 열매가 달린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부활의 시대를 개막하셨습니다. 이제 우리 순서만 되면 우리도 부활하는 겁니다. 마지막 나팔이 울리면 우리는 주님처럼 아름다운 몸으로 부활합니다. 신비한 부활체로 홀연히 변합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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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28 -->
<p class="p1">예수를 믿으면서 이러한 부활의 소망이 없으면 그 사람은 엉터리입니다. 그 사람은 신앙생활이 그저 문화생활입니다. 부활절을 맞아 다시 한 번 자신의 속량과 부활에 대한 깊은 확신을 가지고 늘 부활의 산 소망으로 세상과 현실을 이기는 복 있는 성도가 됩시다. </p>
<!-- paragraph:p0029 -->
<p class="p1"><br></p>
<!-- paragraph:p0030 -->
<p class="p1"><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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