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50320n 베드로의 실패담(마 26:69-75)

20160320n

마 26:69-75

베드로의 실패담


[69] 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여종이 나아와 이르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70]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71] 앞문까지 나아가니 다른 여종이 그를 보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되 이 사람은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매 [72] 베드로가 맹세하고 또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더라 [73]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도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74] 그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이르되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곧 닭이 울더라 [75]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수제자를 자처했던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씩이나 부인하며 저주한 사건입니다. 베드로에게는 정말 천추의 한이 된 뼈아픈 실패인데, 대체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요?


우선 그가 경솔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드시며 떡과 잔으로 성찬식을 제정하시고, 세족식을 마친 후에 주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본문 앞의 31절입니다.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얼마나 심각하고 진지한 경고이고, 예고입니까? 그래서 다른 제자들은 감히 뭐라고 입을 떼지도 못하는데, 베드로를 보십시오. 33절입니다.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이어지는 34절을 보면 주님이 다시 베드로의 그 말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이렇게 경고하셨음에도, 베드로가 더욱 장담합니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35절) 누가복음 22장 33절에서 이 대목을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에도 가기를 각오하였나이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누구도 이렇게 장담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 12절에서 ‘선 줄로 생각한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언제나 긴장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베드로는 주님의 그 엄숙하고도 진지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계속 너무 쉽게 경솔하게 허세를 부리다 결국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는 겁니다. 베드로는 큰소리치며 허세 부리다가 그렇게 하다가 결국 실패했습니다. 


그는 졸다가 실패했습니다. 본문 앞의 40-41절입니다. “[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38절을 보면 주님이 분명 이렇게 당부하십니다.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그런데도 베드로는 잤습니다. 그때는 주님 생애에 있어 일생일대의 위기의 순간입니다. 오죽하면 주님이 내 마음이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셨겠습니까? 누가복음 22장을 보면 이때 주님은 땀을 핏방울처럼 흘리셨습니다. 그렇게 비상한 때에 베드로와 제자들은 잠을 잤습니다. 주님이 세 번씩이나 깨우셨음에도 잔 겁니다. 그래서 그는 실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는 말씀은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누구나 시험에 들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겪는 시험은 대부분 여기에서 옵니다. 우리가 실패하는 것은 깨어 기도하지 않기에 당하는 겁니다. 졸거나 자면 누구나 시험에 빠집니다. 


그러면 우리가 왜 깨어있지 못하고 툭하면 자게 될까요? 주님은 ‘마음은 원이지만 육신이 약하다’고 하십니다. 믿는 사람치고 깨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마음은 원하지만 육신이 약합니다. 알람시계를 몇 개씩 맞춰놔도 새벽이 되면 알뜰하게 다 끄고 잡니다. 우리는 깨어있기를 원하고 근신하고 기도하기를 바란다면, 평소 자신의 생활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한 시간이라도 잠자리에 들고, 최대한 자제하고 절제하며 살아야 육신의 약함을 이기고 힘들게나마 깨어 기도할 수 있습니다. 또 그렇게라도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 천하의 베드로도 별 수 없습니다. 실패합니다. 무방비로 마귀에게 당하는 도리 밖에는 없습니다. 


다음은 그가 멀찍이서 주님을 좇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6장 58절 상반절입니다. “베드로가 멀찍이 예수를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에까지 가서.” 이게 또한 피할 수 없는 실패의 원인입니다. 양은 앞서가는 목자를 부지런히 따라가야지 한눈팔거나 뒤처지면 길 잃은 양이 되고 맙니다. 그럼에도 왜 많은 사람은 주님과의 거리를 좁히지 않고 안전거리를 확보할까요? 여차하면 달아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도 지금 그렇습니다. 위험하다, 손해가 된다 싶으면 달아나려고 안전거리를 확보하고 있는 겁니다. 주님을 뒤좇을 때는 안전거리가 필요 없습니다. 주님과의 거리는 가까울수록 좋습니다. 안전거리를 유지하다가는 베드로처럼 실패하기 십상입니다. 부부사이도, 연인사이도, 친구사이도 틈이 생기면 결국은 파경을 맞습니다. 주님과의 관계도 사랑의 관계이기에 같습니다. 황당한 것은 가끔 교회생활 오래했다는 제직들이 초신자에게 충고한답시고 교회 일에 발을 깊이 들여놓지 말라고 합니다. 많은 걸 알면 다친다고 합니다. 멀찍이서 따라가는 게 편하다고 합니다. 그런 사람은 수십 년을 믿어도 항상 제자리거나 지리멸렬하여 도태되고 맙니다. 주님은 뜨겁지도 차지도 않은 사람을 토해내겠다고 하셨습니다. 멀찍이 따르다가 참패했던 베드로의 안전거리를 기억합시다. 늘 밀착거리로 주님을 뒤좇읍시다. 


베드로가 실패한 이유는 하인들과 함께 앉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26장 58절 하반절입니다. “그 결말을 보려고 안에 들어가 하인들과 함께 앉아 있더라.” 베드로가 지금 마치 강도를 잡듯이 주님을 붙잡아 와서 희롱하고 모욕하고 때리며 온갖 몹쓸 짓을 하고 있는 무리 틈에 끼어 앉아 숯불을 쬐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그들과 한통속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시편 1편은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함께 앉아 불 쬐고 앉았습니다. 성도는 거룩한 백성인데, 그들은 구별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세상과 타협하거나 함께 놀아나면 안 됩니다. 구별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언제나 자신의 현주소를 확인해야 합니다. 주님 곁인가 하인들 틈인가를 점검해야 합니다. 혹 세상 사람들과 함께 숯불을 쬐며 주님께는 가끔씩 곁눈질만 하고 있지 않은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그 하인들 틈에서 결국은 세 번씩이나 주님을 부인하고 저주했습니다. 


그러면 베드로가 그 참혹한 실패를 맛 본 후에 어떻게 그 위기에서 헤어났을까요? 베드로의 위대한 점이 바로 이 대목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실패할 수 있습니다. 육신의 한계로 넘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때마다 놀라운 순발력으로 그 실패를 극복하며 오뚜기처럼 다시 일어났습니다. 이게 베드로의 최대 장기입니다. 


그는 먼저 주님의 말씀을 생각합니다. 75절 상반절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언제나 주님의 말씀을 생각하는 사람은 절대 망하지 않습니다. 깊은 나락에 떨어진 베드로가 닭소리를 듣는 순간 주님 말씀을 생각하자 번쩍 제 정신이 든 겁니다. 베드로가 얼마나 대단합니까? 우리는 설교를 듣고도 잘 못 깨닫는데, 베드로는 미물의 닭소리를 듣고도 깨닫고 정신을 차립니다. 그래서 저 유럽에서는 교회 첨탑에 장닭을 많이 달아놓습니다. 십자가 위에 달기도 하고, 어떤 교회는 십자가는 없고 닭만 있습니다. 베드로처럼 회개하라는 겁니다. 


그는 또한 이렇게 합니다. 75절 하반절입니다.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자리를 박차고 나가 눈물로 회개했다는 뜻입니다. 주님을 세 번이나 저주하고 부인한 베드로나 가룟 유다나 주님을 배반했다는 점에서는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통곡하며 회개한 반면에 유다는 자살했습니다. 


부디 베드로에게서 영적 순발력을 배웁시다. 혹 넘어졌을지라도 즉시 회개하고 다시 제 자리를 회복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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