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316w 사사기 강해 10 (삿 9: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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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16w 사사기 강해 10
삿 9:1-21
[1] 여룹바알의 아들 아비멜렉이 세겜에 가서 그의 어머니의 형제에게 이르러 그들과 그의 외조부의 집의 온 가족에게 말하여 이르되 [2] 청하노니 너희는 세겜의 모든 사람들의 귀에 말하라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 명이 다 너희를 다스림과 한 사람이 너희를 다스림이 어느 것이 너희에게 나으냐 또 나는 너희와 골육임을 기억하라 하니 [3] 그의 어머니의 형제들이 그를 위하여 이 모든 말을 세겜의 모든 사람들의 귀에 말하매 그들의 마음이 아비멜렉에게로 기울어서 이르기를 그는 우리 형제라 하고 [4] 바알브릿 신전에서 은 칠십 개를 내어 그에게 주매 아비멜렉이 그것으로 방탕하고 경박한 사람들을 사서 자기를 따르게 하고 [5] 오브라에 있는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 가서 여룹바알의 아들 곧 자기 형제 칠십 명을 한 바위 위에서 죽였으되 다만 여룹바알의 막내 아들 요담은 스스로 숨었으므로 남으니라 [6] 세겜의 모든 사람과 밀로 모든 족속이 모여서 세겜에 있는 상수리나무 기둥 곁에서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으니라 [7] 사람들이 요담에게 그 일을 알리매 요담이 그리심 산 꼭대기로 가서 서서 그의 목소리를 높여 그들에게 외쳐 이르되 세겜 사람들아 내 말을 들으라 그리하여야 하나님이 너희의 말을 들으시리라 [8] 하루는 나무들이 나가서 기름을 부어 자신들 위에 왕으로 삼으려 하여 감람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우리 위에 왕이 되라 하매 [9] 감람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게 있는 나의 기름은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나니 내가 어찌 그것을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 한지라 [10] 나무들이 또 무화과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와서 우리 위에 왕이 되라 하매 [11] 무화과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의 단 것과 나의 아름다운 열매를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 한지라 [12] 나무들이 또 포도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와서 우리 위에 왕이 되라 하매 [13] 포도나무가 그들에게 이르되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내 포도주를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우쭐대리요 한지라 [14] 이에 모든 나무가 가시나무에게 이르되 너는 와서 우리 위에 왕이 되라 하매 [15] 가시나무가 나무들에게 이르되 만일 너희가 참으로 내게 기름을 부어 너희 위에 왕으로 삼겠거든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를 것이니라 하였느니라 [16] 이제 너희가 아비멜렉을 세워 왕으로 삼았으니 너희가 행한 것이 과연 진실하고 의로우냐 이것이 여룹바알과 그의 집을 선대함이냐 이것이 그의 손이 행한 대로 그에게 보답함이냐 [17] 우리 아버지가 전에 죽음을 무릅쓰고 너희를 위하여 싸워 미디안의 손에서 너희를 건져냈거늘 [18] 너희가 오늘 일어나 우리 아버지의 집을 쳐서 그의 아들 칠십 명을 한 바위 위에서 죽이고 그의 여종의 아들 아비멜렉이 너희 형제가 된다고 그를 세워 세겜 사람들 위에 왕으로 삼았도다 [19] 만일 너희가 오늘 여룹바알과 그의 집을 대접한 것이 진실하고 의로운 일이면 너희가 아비멜렉으로 말미암아 기뻐할 것이요 아비멜렉도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려니와 [20] 그렇지 아니하면 아비멜렉에게서 불이 나와서 세겜 사람들과 밀로의 집을 사를 것이요 세겜 사람들과 밀로의 집에서도 불이 나와 아비멜렉을 사를 것이니라 하고 [21] 요담이 그의 형제 아비멜렉 앞에서 도망하여 피해서 브엘로 가서 거기에 거주하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기드온은 영웅입니다. 굉장한 무용담의 주인공입니다. 그런데 그에 대한 성경의 평가는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특히 그의 말년에 대한 평가는 부정적입니다. 왜냐면 그가 자신의 성공 이후에 여생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본문의 주인공인 아비멜렉이라는 아들을 보면 그 사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우선 아비멜렉은 아비의 죄가 그대로 자식에게 대물림된 경우입니다. 기드온은 전쟁에서 승리한 후 수많은 아내와 첩을 두었습니다. 거기서 난 자식도 많았습니다. 딸은 그 수를 알 수 없고, 아들은 70명이나 되었습니다. 기드온은 또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막대한 부를 축적했습니다. 겉으로는 왕이 되라는 주문을 사양하는 척 했지만 본심은 야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총애하던 첩의 아들에게 내 아버지는 왕이라는 뜻의 아비멜렉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결국 아비멜렉은 왕권에 눈이 멀어 패륜을 저지릅니다. 형제 70명을 한자리에 모아 다 죽입니다. 막내인 요담만 극적으로 살아남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자신이 왕이 됩니다. 아비 기드온의 정치적 야심이 그의 아들 아비멜렉에게 대물림되면서 끔찍한 형제살상이 일어난 겁니다. 죄는 그 당대로 끝나지 않기에 무섭습니다. 아버지가 거짓말을 하면 자식들도 거짓말을 합니다. 부모가 악하면 자식도 악합니다. 우리가 어떻게든 경건하고 정직하게 살고, 밝고 건전한 정서로 살아야할 이유는 우리 당대보다는 다음 대를 위해서입니다. 기드온을 보십시오. 그의 야심이 아들에게 얼마나 비극적으로 나타났습니까? 출애굽기 20장 5절이나 신명기 말씀 그대로입니다. 우리는 저주가 아니라 반드시 축복을 대물림해야 합니다. 우리의 후손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를 계승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부모나 그 윗대가 잘 해야 합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지역감정의 말로는 파멸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아비멜렉이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 최대한 이용했던 게 세겜의 지역감정이었습니다. 그는 세겜 출신입니다. 그의 외가가 세겜입니다. 그는 외가쪽 사람들을 이용해 왕이 되었습니다. 1절 이하입니다. “[1] 여룹바알의 아들 아비멜렉이 세겜에 가서 그의 어머니의 형제에게 이르러 그들과 그의 외조부의 집의 온 가족에게 말하여 이르되 [2] 청하노니 너희는 세겜의 모든 사람들의 귀에 말하라 여룹바알의 아들 칠십 명이 다 너희를 다스림과 한 사람이 너희를 다스림이 어느 것이 너희에게 나으냐 또 나는 너희와 골육임을 기억하라 하니.” 이런 호소가 주효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그의 어머니의 형제들이 그를 위하여 이 모든 말을 세겜의 모든 사람들의 귀에 말하매 그들의 마음이 아비멜렉에게로 기울어서 이르기를 그는 우리 형제라 하고.” 4절 이하를 보십시오. “[4] 바알브릿 신전에서 은 칠십 개를 내어 그에게 주매 아비멜렉이 그것으로 방탕하고 경박한 사람들을 사서 자기를 따르게 하고 [5] 오브라에 있는 그의 아버지의 집으로 가서 여룹바알의 아들 곧 자기 형제 칠십 명을 한 바위 위에서 죽였으되 다만 여룹바알의 막내 아들 요담은 스스로 숨었으므로 남으니라.” 6절입니다. “세겜의 모든 사람과 밀로 모든 족속이 모여서 세겜에 있는 상수리나무 기둥 곁에서 아비멜렉을 왕으로 삼으니라.” 4절에서 방탕하고 경박한 사람을 샀다는 것은 부랑자들, 조폭들을 형제들을 살해하기 위해 고용했다는 뜻입니다. 우리나라의 지역감정과 빼닮았습니다. 혈연, 지연, 학연을 우선시하는 사회는 반드시 실패합니다. 사사기 9장 22절 이하를 보면 세겜 사람들이 아비멜렉과 함께 같이 망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치셔서 그들이 서로 배신하여 망하게 하십니다.
또한 우리는 성도가 이 세상을 책임지지 못하면 엉뚱한 사람이 나타나 차지하게 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성도는 빛으로 소금으로 그 당대를 책임져야 합니다. 각 시대는 그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몫입니다. 아비멜렉의 시대를 보십시오. 다른 나무들이 다 제 몫을 사양하니 엉뚱한 가시나무가 나타나 형제들을 몽땅 살해하고 민족을 능멸했습니다. 아비멜렉의 살육을 피해 용케 목숨을 구한 기드온의 막내 아들 요담이 그리심산 꼭대기에 올라가 천인공노할 아비멜렉의 만행을 고발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일종의 우화가 나옵니다. 어느날 나무들이 모여 왕을 뽑는데,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는 사양하자 엉뚱하게 가시나무가 왕이 되었다는 겁니다. 앞의 세 나무의 사양은 겸손이 아닙니다. 책임회피입니다. 그들이 사회적 책임을 제대로 감당했다면 가시나무가 출현할 여지가 있었겠습니까? 서로 책임을 회피하니 가시나무가 왕이 된 겁니다. 한 사회 안에도 감람나무, 포도나무, 무화과나무가 제 몫을 다하지 못하고 자기 책임을 회피하면, 반드시 가시나무가 출현합니다. 가시나무가 하는 짓은 뻔합니다. 아비멜렉과 같습니다. 지역감정을 부추겨 권력을 잡고, 조폭들을 사서 폭력을 휘두르고, 정적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며 죽입니다. 닥치는 대로 남을 찔러 상처내고 피 흘리게 합니다. 요즘 우리 사회의 문제도 가시나무 때문에 많은 사람이 상해를 입습니다. 다음 달이면 총선입니다. 걱정입니다. 국민들이 가시나무의 출현을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에 가시나무가 많습니다. 피 눈물을 흘리게 하는 가시나무들이 사방에서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은 이게 다 감람나무,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탓입니다. 이들이 제 몫을 감당하지 못했기에 온통 가시나무가 세상을 차지한 겁니다. 우리 시대와 나라의 현실에 대한 책임을 그리스도인으로서 통감합시다. 우리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성찰합시다. 나의 무책임, 책임회피, 무관심이 결국은 가시나무를 불렀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회개합시다. 그래야 우리 사회에 희망이 있습니다. 남을 탓하거나 남의 몫으로 돌리지 않고 내가 감당하고 책임져야 할 내 몫이라 생각하며 최선을 다합시다. 이 시대를 내가 힘껏 책임집시다. 그런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이러한 당부가 바로 주님이 우리더러 빛이 되라 소금이 되라고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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