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20160306m 주님의 흔적(갈 6:17-18)

20160306m 

갈 6:17-18

주님의 흔적


[17]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18]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아멘


여기서 바울이 지니고 있다고 한 예수의 흔적은 원어로 <스티그마>입니다. 원래 이것은 쇠도장, 쇠인장을 불에 달궈 말이나 짐승의 엉덩이에 찍는 화인입니다. 고대 희랍이나 로마 문화권에서는 노예, 전쟁포로, 신전의 물건을 훔치다 붙잡힌 파렴치범의 이마나 어깨에도 찍은 화인이기도 합니다. 17세기 미국에서는 간통죄를 범하면 평생 가슴에 주홍글씨를 달고 살게 했습니다. 나다나엘 호손 <주홍글씨>가 바로 그런 얘깁니다. 유부녀 여주인공이 젊고 유능한 목사와 사랑에 빠져 아기를 낳습니다. 그래서 결국 평생 지울 수 없는 낙인인 주홍글씨를 가슴에 찍힙니다. 그런데 바울이 본문에서 말씀하는 흔적이 바로 스티그마입니다. 


바울이 말한 예수의 스티그마는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은 바울이 문신하듯 스티그마를 자신의 몸 어디엔가 찍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중세 수도사들 가운데는 실제 그렇게 해석하고 이해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불에 달군 쇠인장으로 자기 몸에 예수라는 화인을 찍고 그 상처, 흔적을 평생 지니고 산 사람도 있었습니다. 요즘 방송이나 신문에서 스티그마 효과라는 말을 씁니다. 한 번 낙인을 찍히고 나면 좀처럼 벗어나기 힘든 현상을 가리킵니다. 한 번 전과자가 되면 거기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바로 이런 게 스티그마 현상입니다. 


스티그마는 소유를 뜻하는 낙인이었습니다. 짐승에게 찍은 낙인은 소유권 확인을 위한 조치입니다. 바울이 몸에 그리스도의 흔적을 가졌다는 것은 나야말로 확실한 주님의 소유라는 고백입니다. 화가나 서예가는 그림이나 글씨를 다 그리거나 쓴 후 낙인을 찍습니다. 그걸로 이 그림이나 글씨가 누구의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3장에 보면 짐승의 스티그마 666이란 숫자가 나옵니다. 마귀가 자기 백성 이마에 자신의 고유 숫자 666을 찍는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마에 666 스티커가 붙은 사람은 다 자기에게 속한 것입니다. 왜 666입니까? 마귀도 삼위일체여서 그렇습니다. 사탄, 마귀, 적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이마에는 어떤 스티그마가 찍힙니까? 777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입니다. 사람들의 이마에는 666아니면 777이 찍혀 있습니다. 조직원들이 몸에 어떤 문신을 가지고 있느냐가 그 사람의 소속을 결정합니다. 스티그마가 그 사람이 누구의 소유냐를 결정합니다. 바울이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녔다고 한 것은 내 이마에 777이라는 스티그마를 가졌으므로 나야말로 확실한 주님의 소유라는 고백입니다. 중요한 것은 바울뿐 아니라 우리의 이마에도 777이라는 스티그마가 찍혀 있습니다. 우리 눈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언제나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주님도 당신의 영안으로 우리 몸에 새겨진 주님의 스티그마로 정확히 확인하시고 우리를 당신의 소유로 챙기고 관리하십니다. 이 사실을 확신하십시오. 여러분도 바울처럼 담대하게 내 몸에 주님의 흔적을 가졌노라 고백하시며 감사하십시오. 


바울의 스티그마는 주님을 위해 당한 고난의 흔적입니다.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기 육체에 채웠다는 고백입니다. 십자가의 흔적입니다. 성 프랜시스의 전기를 보면, 한 번은 높은 산에 올라가 고행하며 기도하는데, 어느 날 갑자기 온몸에 전율과 고통이 오며 양손과 양발에 소위 성흔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십자가의 못자국이 나타난 겁니다. 프랜시스는 거룩한 고난의 흔적을 체험한 후 더욱 깊이 주님의 십자가를 이해하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마태복음 7장 22절 이하를 보면 주님의 최후 심판 말씀이 나옵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이들은 직업 성직자들입니다. 이들의 고백은 다 사실입니다. 최후 심판대 앞에서 어찌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그런데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3절입니다.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아니 주님의 이름으로 큰 교회에서 목사노릇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기적을 행했다는데 그게 어째서 불법이란 말입니까? 놀랍게도 그들은 그 큰일을 통해 영광만 누렸지, 돈만 챙겼지, 누구도 자기를 부인하며 자기 십자가를 충실히 진 사람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몸에는 어디에도 주님의 고난의 흔적이 없었습니다. 여러분, 자기 몸에 십자가의 흔적, 고난의 스티그마가 없으면 그것은 다 불법이요 사기입니다. 주님의 흔적이란 고난의 흔적, 십자가의 흔적인데, 그들은 평생 예수의 이름을 팔아 호의호식하고, 복음을 팔아 영광만 누렸기에 그들의 몸 어디에도 고난의 흔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너희는 나와 상관 없으니 내게서 떠나라고 선고하셨습니다. 


반면에 바울은 고난을 많이 당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에 나오는 기록을 보면 온갖 박해와 위협, 죽음 직전의 위기까지 다 겪습니다. 그래서 실제 그의 몸은 아마 성한 데가 없었을 겁니다. 바로 그것입니다. 자기 몸에 십자가의 흔적이 있어야 진정한 주님의 제자입니다. 주님은 홀몸으로 나를 따르지 말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아무리 큰일을 하고 대단한 실적을 냈다고 해도 고난의 흔적이 없으면 그것은 가짜입니다. 괜히 마지막 심판대에서 왜 나를 모른다고 하느냐며 주님께 대들지 마시고 늘 바울처럼 고난의 스티그마를 지니고 사십시다. 혹 여기까지 오며 그동안 주님 때문에 마음에 모진 상처를 입고, 주님 때문에 영혼의 깊은 아픔을 겪은 분이 계시다면, 그게 바로 주님의 스티그마요 십자가의 화인입니다. 억울해 하기보다는 오히려 자랑스러워하시며 그 깊은 트라우마를 이기시기 바랍니다. 


스틸버그 감독의 출세작 <죠스>를 보면 상어를 잡기 위해 해안경비대장, 상어잡이 전문가, 해양학자가 먼 바다로 나갑니다. 몇날 며칠 상어를 찾아다니며 지루하고도 무료한 시간을 보냅니다. 하루는 술을 마시다가 상어잡이 무용담을 신나게 얘기하며 상어에 물린 상처를 서로 자랑합니다. 해안경비대장은 뭍에서 근무했기에 상어와 싸운 영광의 상처가 없어 난처해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저는 훗날 우리가 주님 앞에 갔을 때도 그와 같은 일이 벌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다들 제 몸에 없는 스티그마를 찾으려고 쩔쩔맬 겁니다. 절대 아무런 상처도 없이 편하게 믿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행운이 아닙니다. 가볍게 믿는 것만이 대수가 아닙니다. 어떻게든 내 몸에 주님의 흔적을 가져야 합니다. 존 번연이 쓴 <천로역정>을 보면 천신만고 끝에 구원의 여정을 끝낸 기독도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이 모든 상처와 아픔의 이 흔적을 주님 앞까지 가져가리라.> 그때는 내 몸의 스티그마가 영광스런 훈장이 됩니다. 


부디 사순절에 모두가 주님의 남은 고난을 자신의 육체에 채우심으로 바울처럼 늘 주님의 흔적을 지고 사는 복 있는 성도가 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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