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교회 아카이브

삼일절과 <귀향>

지난 삼일절 오후 영화 <귀향>을 보고 왔습니다. 


<언니야, 이제 집에 가자!>는 평범한 말이 그렇게도 슬픈 말일 줄을 미처 몰랐습니다. 


참 재미없는 영화, 재밌으면 안 되고 작은 웃음조차도 허용하지 않는 몹시 아픈 영화였습니다. 없었던 일로 하기에는 너무나도 있었던 일인 불편한 영화, 살아 있는 소녀들을 죽여 소각하고, 어린 조선 소녀들을 향해 <너희는 사람이 아니라 황군을 위한 암캐들>이라고 내뱉는 일본인들이 소름끼치도록 무섭고 섬뜩한, 그러나 꼭 봐야 할 영화였습니다. 그래서 이 영화는 <위안부를 강제 동원한 적이 없다>는 일본 정부에 대한 <반박문>이자, 만리타국에서 가장 억울하게 죽어간 위안부 소녀들의 영혼에 부치는 우리 모두의 뒤늦은 <사죄문>입니다. 영화는 위안부 피해자 강일출(86세) 할머니의 증언과 강할머니가 그린 <태워지는 소녀들>이라는 제목의 그림을 소재로 만들어진 생생한 고발입니다.


1943년 열네 살의 정민이는 아직 철모르는 소녀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일본군의 손에 이끌려 다른 수많은 소녀들과 함께 머나먼 중국 무단강 위안소로 끌려가 너무나도 끔찍한 지옥의 고통과 감당할 수 없는 처절한 아픔을 겪게 됩니다. 조선인 소녀들이 하루에 상대한 일본군은 평군 30-40명, 적게는 20명 많을 때는 50명, 오끼나와에서는 하루 100명까지도 상대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수만 명이 죽어나갔고, 성병에 걸리면 생체 실험실로 보내지거나 사살 당해 소각 처리되었습니다. 전쟁에 패망한 직후에는 위안부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소녀들을 집단으로 사살하고 그 시신을 불태우기도 했습니다. 


주인공 정민의 14세도 너무 어린데, 지금까지 확인된 최연소 조선인 위안부 피해자의 나이는 11세였습니다. 그런데도 강제성이 없었다니... 자발적으로 몸 팔러간 매춘부들이었다니... 일본에서는 11세의 어린 아이도 스스로 몸 팔러 전쟁터에 나간답디까?


영화는 비록 무겁고 아프고 슬프지만 관객들에게 맹목적인 애국심을 강요하거나 진보와 보수로 편가르기를 하지는 않습니다. 일본을 대놓고 비난하거나 섣불리 생존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로하려들지도 않습니다. 영화를 만든 조정래 감독은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만든 인권 영화>라고 했습니다. 영화 장면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배경음악 <가시리>도 관객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며 더욱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구약 사사기 19장에는 한 여인이 기브아의 불량배들에게 끌려가 밤새도록 윤간을 당하다 결국은 집 앞까지 와서 쓰러져 죽는 참혹한 사건 하나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어느 레위인의 첩이었던 그 여인은 남자의 안위를 대신해 그렇게 희생된 것인데 우리의 위안부 소녀들을 생각케 하는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땅의 수많은 어린 딸들이 밤새도록 밖에서 불량배들에게 짓밟히며 윤간을 당했는데도 우리는 사사기의 레위인처럼 오직 자신만이 살겠다고 기브아를 떠날 채비에만 연연하지 않았는지 다시 한 번 반성해 볼 일입니다.

 

97주년 삼일절을 맞아 한없이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으로 이 땅의 수많은 위안부 소녀들, 적국을 위해 전쟁터에 끌려 나가 산화한 청년들, 만세와 독립을 외치다 스러져간 숱한 민초들의 희생 앞에 깊이 머리를 조아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