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221n 주님의 모범(요 13: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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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21n
요 13:1-17
주님의 모범
[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3]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5]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8]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9]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11]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12]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본문은 주님이 최후만찬석 상에서 제자들에게 교훈한 것입니다. 15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주님의 모든 삶은 우리도 다 그렇게 살게 하려는 하나의 본입니다. 주님의 삶은 우리를 위해 친히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보이신 하나의 모범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모범을 통해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사랑입니다. 1절입니다.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원래 자식은 부모를 버려도 부모는 자식을 사랑합니다. 요즘은 부모가 자식을 살해하고 그 시신까지 유기하기도 하고, 최근에는 목사부부가 어린 딸을 때려죽인 뒤에 방안에 수개월 방치한 엽기적인 사건도 있었습니다만, 원래는 자식은 부모를 버려도 부모는 자식을 끝까지 사랑하는 게 동서양의 전통이자 미덕입니다. 자식이 내다버린 늙고 병든 부모를 보십시오. 시설에서 외롭게 근근이 살아가면서도 자식에게 누가 될까봐 자식의 소재지를 가르쳐 주지도 않습니다. 이게 부모의 마음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도 다 주님의 사랑을 받을만한 자격이 없는 자식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습니까? 없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주님의 사랑을 받아 마땅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자식에게 버림을 받고도 그 자식을 끝까지 사랑하는 부모처럼 주님은 우리에게 늘 배신을 당하면서도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주님은 배신자인 가룟 유다의 발까지 씻기십니다. 주님은 이렇게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는데 우리는 그게 안 됩니다. 우리의 사랑은 너무도 편협하고 변덕이 심하고 계산적이고 이기적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사랑은 그야말로 영원한 사랑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주님을 저주하고 내다버려도 주님은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고 용서하십니다. 주님이 모범을 보이신 이 사랑을 배워야 합니다.
주님의 섬김을 본받아야 합니다. 팔레스타인에서는 종이 하는 중요한 소임 가운데 하나가 주인이나 손님의 더럽고 냄새나는 발을 씻기는 일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친히 그 일을 행하심으로 남을 섬기는 종의 도를 실천해 보이셨습니다. 주님은 선생이십니다. 제자들이 다 예수님께 주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럼에도 선생이 제자들의 발을 씻겼습니다. 14절 말씀입니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여러분, 주님이 모범을 보이신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주님을 섬기고 또 형제와 이웃을 섬겨야 합니다. 우리로 하여금 남을 섬기며 살라고 주님이 친히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누구도 남을 섬기려 하지 않습니다. 목사들도 입으로는 종이라고 하지만, 생활 속에서는 남의 섬김을 받으려고 하지 남을 섬기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주인은 주님뿐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꾸만 주인 노릇을 하려고 합니다. 천국에서는 누가 큰 자입니까? 남을 섬기는 자입니다. 이 땅에서 남을 성심성의껏 섬기는 사람은 천국에서 큰 영광을 누리는 자가 됩니다. 우리는 늘 말씀을 보고 들으면서도 그렇게 살지 못합니다. 주님이 다시 한 번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 앞에서 남을 이렇게 섬기되 내가 모범을 보인 것처럼 이렇게 섬기며 살라고 시범을 보이셨습니다. 우리도 삶으로 진심으로 남을 섬깁시다. 이웃을 섬깁시다. 형제를 섬깁시다. 그 사람이 진정으로 큰 자입니다. 그 사람이 진정한 주님의 제자입니다.
주님은 끝까지 남을 이해하셨습니다. 7절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비록 지금은 몰라도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라며 베드로를 이해하셨습니다. 사실 8절 말씀을 보면 이 때 베드로의 태도는 매우 완강했습니다. 그로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주님의 행동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절대 내 발만큼은 씻길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런 베드로를 포용하셨습니다. 언젠가는 이런 나를 너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믿으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뜻과 방법이 때로 납득이 되지 않으십니까? 주님의 분부가 때로는 용납할 수 없습니까? 그래도 수용하십시오. 베드로처럼 절대 안 된다고 하지는 마십시오. 언젠가는 이해할 수 있으리라는 믿음으로 일단은 순종하는 게 옳습니다. 가족이나 이웃에 대해서도 마찬가집니다. 일단은 수용하십시오. 비록 불합리하고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도 용납하십시오. 주님처럼 말입니다. 주님은 언젠가는 네가 이해할 것이라며 베드로의 완강한 태도를 용납하십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만약 주님께 이런 이해심이 없었다면, 과연 우리가 용서받고 주님 앞에 나와 신앙생활 할 수 있었겠습니까? 주님은 우리가 반항하고 범죄하고 실수하고 회개하고 돌아서서 또 그 죄를 범하더라도 언젠가는 잘 할 수 있을 거라며 이해하고 받아주십니다. 그래서 주님 앞에 나와 이렇게라도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겁니다. 주님처럼 우리도 언젠가는 제 무지와 허무, 잘못이 얼마나 큰지를 깨달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해하고 용서하는 삶을 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것을 기대하시며 친히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부디 주님이 보이신 모범이 우리에게 은혜와 도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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