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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221m 주님의 고독(요 16:32-33)

20160221m

요 16:32-33

주님의 고독


[32]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33]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면서 그때마다 당신이 창조한 피조물에 대해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소감을 말씀한 대목이 나옵니다. 빛을 창조하신 다음에, 궁창을 창조하신 다음에, 풀과 나무를 창조하신 후에도, 달과 별을 창조하시고도, 공중의 새와 물고기와 각종 짐승을 창조하신 후에도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마지막 날 사람을 창조하신 후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창세기 2장 18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다른 피조물에 대해서는 보시기에 좋았다고 했는데, 아담을 지은 후에는 그가 혼자 사는 게 고독해 보여 별로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담의 그 고독에 대한 처방으로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담을 마취시킨 후 갈빗대를 뽑아 하와를 만드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고독한 존재로 창조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고독을 이기는 방편으로 서로를 사랑하게 하셨습니다. 그 고독을 이기는 방편으로 자기의 갈빗대를 찾는 의미 있는 만나게 하시고, 그럼으로써 더불어 살게 하셨습니다. 실제 아담은 자기 앞에 나타난 여자를 보고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했습니다. 한순간에 우울증이 날아가 버렸다는 겁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실은 인간은 본래 홀로 태어난 존재고, 더불어 살기 전에 홀로 살았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태생적으로 고독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나 고독하여 울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고, 이웃이 다 내게 등을 돌리고, 나와 마음을 열고 대화해야 할 가족, 친지, 친구가 내게 마음을 닫으면 우리는 고독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인간은 누구나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 사실이 또한 우리로 하여금 궁극적인 고독을 느끼게 합니다. 우리가 죽음 앞에서 배우는 것은 우리가 혼자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홀로 죽어야 합니다. 삶도 마찬가집니다. 아무도 내 대신 내 인생을 살아 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누구나 결정적인 순간에는 언제나 홀로입니다. 병들면 홀로 앓아야 하고, 아프면 홀로 그 아픔을 겪어야 합니다. 중요한 선택, 어려운 결정, 모두 나 홀로 내려야 합니다. 여기에 바로 인간의 실존적인 허무와 고독이 있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주님도 고독한 분이었습니다. 본문 32절 상반절입니다. “보라 너희가 다 각각 제 곳으로 흩어지고 나를 혼자 둘 때가 오나니 벌써 왔도다.” 주님의 고독한 최후가 다가왔다는 고백입니다. 그동안 주님을 따라다닌 사람이 많았습니다. 수백 수천씩 떼 지어 주님을 따라다녔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다 떠났습니다. 사랑하는 제자들마저 주님을 버리고 줄행랑을 치게 될 순간이 박두했다는 겁니다. 이때 주님의 심경이 어떠했을까요? 홀로 달려야 할 십자가가 문 앞에 놓여있습니다. 따라서 어느 때보다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시점인데, 모두 주님을 버리고 떠난 겁니다. 바울도 그랬습니다. 그는 좀처럼 인간적인 정서를 드러내지 않는 편인데, 생애 마지막에 쓴 디모데후서에서는 그의 고독함을 토로합니다. 디모데후서 4장에 보면 너는 어서 속히 내게 오라고 애원하듯 쓰고 있습니다. 다 떠났으니 너는 마가를 데리고 속히 오되 겨울 전에 오라고 합니다. 백발이 성성한 채 지하 감옥에 갇혀 있는데, 사람들은 그가 석방될 기미가 안 보이자 다 떠났습니다. 오죽하면 한 때 자기를 버렸던 마가까지도 데리고 오라고 하겠습니까? 믿음 좋은 사람도 고독합니다. 주님도, 대사도인 바울도 고독했습니다. 그 주님의 뒤를 따르는 우리도 필연적으로 고독합니다. 주님 가신 골고다의 길은 언제나 좁기에 찾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고독은 거의 운명적입니다. 그렇다면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고독을 어떻게 하면 될까요? 주님은 그 고독을 어떻게 극복하셨을까요?


주님은 사람은 다 나를 버려도 하나님 아버지는 나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고독을 이기셨습니다. 32절 하반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나와 함께 계시느니라.” 이것이 우리가 배워야 할 고독의 비책 첫 번째입니다. 인간을 고독해서 구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입니다. 아담의 원초적 고독도 하나님이 해결하셨습니다. 다 나를 떠나고 버리고 돌아서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더는 고독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아무리 많은 사람이 내 주변에 있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않으면 나는 여전히 고독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은 언젠가는 나를 떠납니다. 사랑하는 가족, 친구, 이웃도 다 시한부로 나와 함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염려 마십시오. 우리는 절대 외롭지 않습니다. 주님은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누구든 이 사실을 확신하면 주님처럼 고독하지 않고, 이 사실을 망각하면 필연적으로 고독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시편 23편 4절입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 죽음 앞에서도 고독하지 않습니다. 야곱이 눈 먼 아버지를 속이고 장자권을 취한 뒤에 형이 무서워 하란으로 도망치는 중입니다. 얼마나 고독하고 무서웠겠습니까? 벧엘에서 주님의 약속을 듣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겠고 반드시 아비 집으로 돌아오게 하리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그러자 야곱이 이렇게 말합니다. 창세기 28장 16절입니다.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이렇게 야곱이 고독과 무서움을 극복합니다. 마찬가집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한다는 확신이 야곱처럼, 주님처럼 얼마든지 고독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로 고독을 이기십니다. 본문은 33절로 끝나는데, 17장 1절을 보면 이렇게 나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이르시되 아버지여...” 주님은 아버지와 나와 함께 계신다고 확신했을 뿐만 아니라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심으로 고독을 이기셨습니다. 주님은 고독할 때마다 기도하셨고, 기도로 고독을 극복하셨습니다. 사실 기도는 고독할 때 가장 절절합니다. 보다 기도가 정직해집니다. 우리는 고독이라는 골방에서 기도할 때만 하나님 앞에서 벌거벗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독을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고독은 우리가 하나님과 진실히 교제할 수 있는 골방입니다. 주님도 밤이나 새벽에 홀로 기도하셨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그것 모두는 주님이 얼마나 외로운 삶을 이기셨는지에 대한 단서입니다. 여러분, 지금 고독하고 외로우십니까? 기뻐하십시오. 주님처럼 기도하시면 고독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고독은 고뇌하며 외로워하라고 있는 게 아니라 기도하라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째서 기도가 고독의 처방입니까?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나 혼자만의 독백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속 깊은 대화가 기도입니다. 하나님과의 소통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하며 고독해 하는 사람 보셨습니까? 주님도 보십시오. 제자들마저 다 떠나간 그 고독한 자리에서 하나님과 긴 대화를 합니다. 요한복음 17장은 복음서에 나오는 주님의 기도 중 가장깁니다. 주님이 홀로 하나님을 대면하여 이렇게 기도하심으로 고독을 이긴 것처럼 기도로 인생의 소외감, 단절감을 이기십시오. 


주님은 힘껏 십자가의 길을 가심으로 고독을 이기셨습니다. 17장 전체를 가득 채우는 긴 기도가 끝나면 18장 1절로 이어집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제자들과 함께 기드론 시내 건너편으로 나가시니 그 곳에 동산이 있는데 제자들과 함께 들어가시니라.” 주님이 가셨다는 기드론 시내 건너편 동산은 겟세마네입니다. 그 다음은 골고다입니다. 주님은 겟세마네에서 피땀 흘리며 기도하셨고, 그 다음에 골고다로 가셨습니다. 비록 좁은 고난의 길, 죽음의 길이었지만 그게 바로 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길이고, 하나님이 분부하신 길이었기에 기도하며 그 길로 나아가셨고, 그랬기에 그 고독한 길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끝까지 지는 게 고독을 이기는 길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이 분부하신 길을 열심히 걷는 사람에게는 차라리 고독이 사치일 수 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은 ‘다 이루었다’입니다. 주님은 아버지께서 명하신 것을 다 이루셨기에 정작 본인은 고독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이 아담에게 처방하신 아내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상상해 보면 주님은 고독하셨지만, 그 고독이 마음의 병이 될만한 겨를이 없었을 겁니다. 본문 마지막 절을 보십시오.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주님이 세상을 이기셨다는 것은 고독을 이기셨다는 말씀도 됩니다. 우리도 자기 십자가를 충실히 지고 주님 가신 길을 열심히 가므로 주님처럼 세상도 이기고 고독도 이기는 복 있는 성도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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