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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20160217w 사사기 강해 6</p>
<!-- paragraph:p0002 -->
<p class="p1">삿 6:25-4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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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04 -->
<p class="p1">[25] 그 날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네 아버지에게 있는 수소 곧 칠 년 된 둘째 수소를 끌어 오고 네 아버지에게 있는 바알의 제단을 헐며 그 곁의 아세라 상을 찍고 [26] 또 이 산성 꼭대기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규례대로 한 제단을 쌓고 그 둘째 수소를 잡아 네가 찍은 아세라 나무로 번제를 드릴지니라 하시니라 [27] 이에 기드온이 종 열 사람을 데리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대로 행하되 그의 아버지의 가문과 그 성읍 사람들을 두려워하므로 이 일을 감히 낮에 행하지 못하고 밤에 행하니라 [28] 그 성읍 사람들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본즉 바알의 제단이 파괴되었으며 그 곁의 아세라가 찍혔고 새로 쌓은 제단 위에 그 둘째 수소를 드렸는지라 [29] 서로 물어 이르되 이것이 누구의 소행인가 하고 그들이 캐어 물은 후에 이르되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이를 행하였도다 하고 [30] 성읍 사람들이 요아스에게 이르되 네 아들을 끌어내라 그는 당연히 죽을지니 이는 바알의 제단을 파괴하고 그 곁의 아세라를 찍었음이니라 하니 [31] 요아스가 자기를 둘러선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바알을 위하여 다투느냐 너희가 바알을 구원하겠느냐 그를 위하여 다투는 자는 아침까지 죽임을 당하리라 바알이 과연 신일진대 그의 제단을 파괴하였은즉 그가 자신을 위해 다툴 것이니라 하니라 [32] 그 날에 기드온을 여룹바알이라 불렀으니 이는 그가 바알의 제단을 파괴하였으므로 바알이 그와 더불어 다툴 것이라 함이었더라 [33] 그 때에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이 다 함께 모여 요단 강을 건너와서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친지라 [34]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이 그의 뒤를 따라 부름을 받으니라 [35] 기드온이 또 사자들을 온 므낫세에 두루 보내매 그들도 모여서 그를 따르고 또 사자들을 아셀과 스불론과 납달리에 보내매 그 무리도 올라와 그를 영접하더라 [36] 기드온이 하나님께 여쭈되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거든 [37]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 마당에 두리니 만일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주변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을 내가 알겠나이다 하였더니 [38] 그대로 된지라 이튿날 기드온이 일찍이 일어나서 양털을 가져다가 그 양털에서 이슬을 짜니 물이 그릇에 가득하더라 [39] 기드온이 또 하나님께 여쭈되 주여 내게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말하리이다 구하옵나니 내게 이번만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 원하건대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40] 그 밤에 하나님이 그대로 행하시니 곧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었더라</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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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06 -->
<p class="p1">지난 시간에는 이스라엘 제5대 사사 기드온에 관해 두 가지를 짚어봤습니다. </p>
<!-- paragraph:p0007 -->
<p class="p1">첫째, 누구나 평안할 때 더 많이 기도하고 더 하나님과의 관계를 바르게 가져가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언제나 일이 터지고 나서 하나님께 징계를 당해 남의 나라에 종살이를 하면서 8년, 18년, 20년 동안 죽을 고생을 하고 나서야 하나님께 회개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패턴이 기계처럼 반복되었습니다. 드보라 시대 40년 동안 평안했는데, 드보라가 죽자 이스라엘이 다시 타락하고 하나님이 미디안 손에 그들을 7년간 붙입니다. 그제서야 이스라엘이 회개하자 하나님이 기드온을 세우십니다. 그러나 이미 이스라엘은 미디안에게 다 빼앗긴 뒤였습니다. </p>
<!-- paragraph:p0008 -->
<p class="p2"><br></p>
<!-- paragraph:p0009 -->
<p class="p1">둘째,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용사는 아닙니다. 기드온은 300명으로 미디안 13만 5천을 섬멸한 지휘관이었지만 내성적이고 소극적이며 조금은 비겁한 사람이었습니다. 숨어서 타작했고, 하나님의 소명을 받았지만, 내 집은 가장 작은 집이요 자신은 가장 작은 자라며 소명을 회피합니다. 하나님이 그를 ‘너는 큰 용사’고 하시며 격려하셔서 전설적인 지휘관이 됩니다. 아무리 약하고 비겁해도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누구나 기드온처럼 위대한 리더가 됩니다. 이 점을 우리는 놓치면 안 됩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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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 paragraph:p0011 -->
<p class="p1">이번 시간도 기드온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본문 25절 이하입니다. “[25] 그 날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네 아버지에게 있는 수소 곧 칠 년 된 둘째 수소를 끌어 오고 네 아버지에게 있는 바알의 제단을 헐며 그 곁의 아세라 상을 찍고 [26] 또 이 산성 꼭대기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규례대로 한 제단을 쌓고 그 둘째 수소를 잡아 네가 찍은 아세라 나무로 번제를 드릴지니라 하시니라.” 너부터 네 집의 모든 우상을 척결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자꾸만 남을 생각합니다. 자기가 듣는 말씀을 자신에게 적용해야 하는데, 남을 떠올립니다. 우리 남편, 우리 아내, 어느 권사, 집사가 저 말씀을 꼭 들어야 한다며 안타까워합니다. 자신이 듣는 말씀은 모두 자신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다윗과 사울의 큰 차이 가운데 하나는 이겁니다. 다윗은 늘 하나님 면전에서 살았고, 사울은 늘 다윗을 의식했습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자기를 인정하면 기뻐했고, 범죄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면 가슴 아파했습니다. 그러면서 서둘러 회개하고 하나님께 사죄를 빕니다. 그런데 사울은 왕이면서 늘 다윗을 의식하고, 추적하고, 미워하며 살았습니다. 다윗의 불행이 그의 기쁨이었습니다. 다윗의 행복이 그의 불행이었습니다. 다윗처럼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을 성찰하며 개혁하며 살아야 복 있는 인생이 됩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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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그러면 성도가 자기 개혁에서 제일 먼저 손대야 할 부분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명령하신 첫 번째 자기 개혁의 과제는 25절 하반절에 나옵니다. 우상 소탕입니다. 기드온의 아버지가 요아스인데, 그는 우상숭배에 열심이었습니다. 자기 집에 바알의 단을 만들고 거기에 아세라 목상을 세워 두고 섬겼습니다. 므낫세 지파요 정통 하나님의 백성인 집에 우상의 제단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의 집만 이랬겠습니까? 그 시대 사람들이 이렇게 신앙적으로 타락했었다는 겁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이스라엘이 이렇게 형편없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집니다. 이름만 바뀌고 대상만 달라졌지 지금도 우리 안에는 각종 바알의 제단과 아세라 목상이 있습니다. 절대 우리 안에 바알의 제단과 아세라 목상이 있어서는 안 되는데 있습니다. 이것부터 척결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나라를 구원하는 큰 사명을 맡기기 전에 먼저 자기 개혁을 하라시며 우상 척결을 명하십니다. 하여간 내게 하나님보다 소중한 것이 있다면, 내가 지금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더 기대하고 신뢰하는 게 있다면, 그것이 바알이요 아세라입니다. 그것을 다 헐고 찍어내야 합니다. 부디 내 안에 있는 우상의 단을 헐므로 나부터 개혁되고 나부터 새로워지는 은혜가 있기를 진심으로 기원해 마지 않습니다. 그게 기드온에게 명하시고 바라시는 하나님의 당부입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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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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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다음은 믿음이라는 것은 결국 순종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기드온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기드온은 참으로 소심하고 겁이 많았습니다. 27절을 보십시오. “이에 기드온이 종 열 사람을 데리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대로 행하되 그의 아버지의 가문과 그 성읍 사람들을 두려워하므로 이 일을 감히 낮에 행하지 못하고 밤에 행하니라.” 기드온은 우상을 척결하라는 하나님의 명을 받고 겁이 나서 낮에는 감히 시행하지 못하고 떨면서라도 밤에 결행합니다. 이게 바로 믿음입니다. 겁이 나고, 부담스럽고, 나 혼자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명하심에 기드온은 순종합니다. 어떤 이는 그렇게 떳떳하게 하지 못할 바에야 나는 안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힘껏 순종하는 게 아름답습니다. 무엇이든 걸작을 만들려고 하시지 말고, 어설프고 세련되지는 못해도 부족한대로 힘껏 주님 말씀에 순종하는 거기에 복이 있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기드온의 이야기는 그 사실을 우리에게 역설하고 있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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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28-29절을 보면 아침에 일어난 성읍 사람들이 깜짝 놀랍니다. 탐문해보니 기드온의 소행이었습니다. 분노한 사람들이 기드온을 끌어내 죽이려고 합니다. 율법에 의하면 우상숭배자는 돌로 쳐 죽이게 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사람들이 우상을 척결했다고 기드온을 죽이려고 합니다. 당시 사회가 이렇게 잘못 되어 있었습니다. 타락한 사회는 언제나 그렇습니다. 제대로 사는 사람, 정직한 사람을 바보로 취급합니다. 질서를 지키며 사는 사람이 오히려 비난을 듣고 욕을 먹습니다. 기드온이 바로 그런 위기에 몰렸습니다. 영적으로 병든 사람이 길길이 날뛰고 있을 때, 요아스가 아들을 변호하고 나섭니다. 요아스의 대중연설이 아주 기가 막힙니다. 31절입니다. “요아스가 자기를 둘러선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바알을 위하여 다투느냐 너희가 바알을 구원하겠느냐 그를 위하여 다투는 자는 아침까지 죽임을 당하리라 바알이 과연 신일진대 그의 제단을 파괴하였은즉 그가 자신을 위해 다툴 것이니라 하니라.” 바알이 살아 있는 신이라면, 기드온이 바알의 제단을 훼손했으니, 바알이 직접 기드온을 심판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기드온이 별명을 얻습니다. &lt;여룹바알&gt;, 바알을 이긴 자라는 뜻입니다. 용기도 없고 자신도 없고 낮에는 못하고 밤에라도 종들을 동원해서 하나님의 명에 순종을 하자 &lt;여룹바알&gt;이라는 이름을 얻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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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2"><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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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못난 짓입니다. 그것은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 사사기 6장이 왜 이렇게 길어졌습니까? 기드온의 사사 이야기가 다른 사사에 비해 장황해졌습니까? 기드온이 계속해서 하나님을 시험하느라 이렇게 길어진 겁니다. 36절 이하에는 유명한 양털 시험이 나옵니다. 기드온은 자신이 나가서 싸우는 게 하나님의 뜻이면, 밤사이에 양털에만 이슬이 맺히게 하시고, 다른 땅은 마르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양털을 가져와 그릇에 물을 짜봤더니 한 대접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여전히 확신이 없는 겁니다. 다시 요청합니다. 이번에는 거꾸로 양털만 마르고, 땅만 젖게 해달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재차 그 요구를 들어주십니다. 하나님의 인내심이 대단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고 했습니다. 주님도 도마에게 보지 않고 믿는 게 복되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정 못 믿겠다고 하면 표징을 보이십니다. 확신을 주십니다. 그러나 그런 믿음은 결코 좋은 믿음은 아닙니다. 절박한 이스라엘의 여러 가지 사정을 감안하셔서 하나님이 기드온을 꼭 사사로 세워 그를 통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로 하셨기에, 기드온이 두 차례나 표적 요구를 하지만, 하나님이 응하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 자체를 일반화하면 안 됩니다. 보지 않고는 못 믿겠다던 도마에게 주님은 와서 보고, 못 자국과 창 자국에 손 넣어 보라고 합니다. 봐서 믿는 것보다 보지 않고 믿는 게 복되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주님은 증거를 보이시면서도 도마에게 책망하십니다. 도마가 주님을 뵙고 비로소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하자, 너는 나를 보고 나서야 신앙고백을 하느냐, 보지 않고 그런 신앙고백을 하는 게 복되다고 합니다. 주님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고 하셨습니다. 신비한 표적보다는 말씀으로 확신을 가지기 바랍니다. 표적이 아니라 말씀을 붙잡고 씨름하십시다. 말씀이 우리 신앙의 진정한 근거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사람이 복된 성도입니다. 우리는 사사기 6장에 소개된 기드온을 통해 이 사실을 확인해야겠습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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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class="p1"><br></p>
<!-- paragraph:p0021 -->
<p class="p1"><br></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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