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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2011년 6월 12일 주일낮예배/성령강림주일</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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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본문: 행 11:15-18</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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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제목: 물세례 성령세례</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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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15]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16]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17] 그런즉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하더라 [18] 그들이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이르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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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b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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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성령강림절입니다. 여러분은 물세례는 받으셨지요? 그러면 성령세례는 다 받으셨습니까? 성령세례 받으신 분 손 들어 보세요. 성령세례를 못 받으신 분도 계십니까? 물세례는 받았는데 성령세례는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모르겠다는 분은 안 계십니까? 물세례는 받았는데 성령세례를 못 받으신 분이 많으시네요. 성령세례를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모르시는 분도 계십니다. 이것은 진지한 문제입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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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b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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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물세례가 무엇입니까? 그 뜻은 죄와 허물을 물로 씻는다는 뜻입니다. 물속에 내 옛사람을 수장한다는 뜻입니다. 요즘은 교회에 나오면 6개월쯤 지나면 교회에서 물세례를 받게 합니다. 교회가 일 년에 한 두 차례 세례의식을 가집니다. 교인들 앞에서 신앙고백을 하고 죄사함 받았다는 확신을 고백하면 세례를 받습니다. 초대교회 때는 세례가 제도가 아니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신앙을 고백하면 즉각 물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길을 가다가도 주님을 영접하면 물 있는 곳에서 세례를 집례했습니다. 물세례라는 말은 회개라는 말과 같이 사용되었습니다. 이교도가 기독교로 개종할 때, 개종이란 말과 그 의미가 같았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제도화되고 세례의식도 하나의 예식이 되면서 일 년에 한 두 차례 세례식을 가집니다만, 원래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회개, 신앙고백, 개종이라는 뜻과 세례는 같은 의미였습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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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b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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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요즘은 물세례가 교회의식이 되고 제도가 되면서 교회에 일정기간 출석하고 교회가 정해놓은 기회에 세례를 받을 수 있는데, 물세례를 미루지 마십시오. 기회가 주어질 때 받으셔야 합니다. 물론 의식이기에 물세례 자체가 사람들을 깨끗하게 하거나, 구원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회개한 사람에게 주님을 영접한 사람에게 교회가 그 사실을 공인해 주는 겁니다. 결혼식 하지 않고 동거에 들어가 평생 부부로 살 수도 있습니다. 혼인신고만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결혼식은 중요합니다. 이게 하나의 형식이고 예식이지만, 결혼식을 하고 가정을 꾸립니다. 마찬가지로 물세례를 안 받고도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지만, 회개한 사람에게 교회가 공인해 주는 의식이긴 하지만, 이 의식은 중요하고 필요합니다. 그러니 기회가 주어질 때 이유 없이 미룰 필요는 없습니다. 이철후 성도님 보십시오. 작년 6월 20일 등록하시고, 11월 24일 성례주일에 세례를 받고, 지난 5월 22일에 쓰러지셨습니다. 다시 회복되시긴 어려울 것입니다. 오래지 않아 소천하실텐데, 그분이 만일 세례를 받지 않았다면, 세례 받지 않고 이 세상을 떠날 뻔 했습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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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b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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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그러면 성령세례는 무엇입니까? 기독교에 입문해서 물세례를 받고 기도생활 잘하고, 주일 성수 잘하면 그때 받는 게 성령세례입니까? 성령세례는 사도행전에 두 번 나옵니다. 한 번은 1장 5절에 나옵니다. 주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또 한 번은 오늘 본문입니다. 11장 16절입니다. “내가 주의 말씀에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신 것이 생각났노라.” 이것은 베드로의 말입니다. 베드로가 고넬료 가정의 성령체험을 보고 주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이 난 겁니다. 즉 사도행전 1장 5절의 말씀이 생각났다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사도행전 1장 5절과 11장 16절에 두 차례 성령세례라는 말이 나옵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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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b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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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즉 당시 고넬료 가정의 성령체험이 주님이 말씀하신 성령세례라는 겁니다. 그러면 베드로가 공인한 고넬료 가정의 성령세례는 무엇입니까? 언제 임했습니까? 17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에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그들에게도 주셨으니.” 그 선물이 바로 성령세례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사도들을 가리킵니다. 사도들이 처음 예수를 믿을 때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인 성령세례를 고넬료 가정에도 허락하셨다는 겁니다. 시제를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세례는 언제 어떤 사람이 받는 것인가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처음 믿을 때 주신 성령세례를 하나님이 고넬료 가정에도 주시더라는 겁니다. 고넬료 가정이 베드로를 청해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 임한 성령세례는, 베드로의 말에 의하면, 우리가(사도들이) 처음 믿을 때 주신 성령세례라는 겁니다. 오늘 본문이 이 일 후에 베드로가 예루살렘 교회에 와서 보고하는 과정입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세례나 고넬료 가정이 받은 성령세례나 같더라는 보고입니다. 15절도 보십시오. “내가 말을 시작할 때에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시기를 처음 우리에게 하신 것과 같이 하는지라.” 즉 베드로가 설교를 시작할 때에 성령이 임하시는데, 처음 자기들(사도들)에게 하신 것과 같더라는 겁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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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b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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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그러므로 성령세례는 사도들의 경우나 이방인이었던 고넬료 가정의 경우나, 예수를 처음 믿을 때 주어진 선물이라는 겁니다. 예수 잘 믿을 때 주시는 선물이 아니라, 처음 예수를 믿을 때 주시는 선물이 성령세례라는 겁니다. 흔히 우리는 생각하기를, 물세례는 교회에 나오면 받을 수 있고, 성령세례는 일정한 요건이 충족되어야 받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처음 예수를 믿을 때 이미 성령세례를 받았는데, 우리는 아직도 성령세례를 못 받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면 초자연적 체험이 우리에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령과 초자연적인 현상은 항상 함께 하지는 않습니다. 기계적이지 않습니다. 다행히 성령세례를 받을 때 방언이라도 하면, 성령세례를 받았나보다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는 잘 모릅니다. 그래서 제가 처음에 성령세례 유무를 확인할 때도 잘 모른다고 하신 겁니다. 성령세례의 가장 확실한 증거는 초자연적 은사보다는 신앙고백에 있습니다. 예수를 주로 시인하는 신앙고백이 성령세례의 증거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습니다. 우리에겐 성령이 역사하셔서 예수를 주로 고백하게 된 겁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예수를 주로 시인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성령의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예수를 주라고 시인하지 못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성령세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남다른 재주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성령이 그렇게 하신 겁니다. 고린도전서 12장 3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이것이 성령세례의 가장 확실한 물증입니다. 성령의 세례 없이는 누구도 회개할 수 없습니다. 요한복음 16장 8절입니다.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우리는 다 내가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이게 가능한 이유는 내 안에 성령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죄가 무엇인지, 회개가 왜 필요한지 성령이 우리에게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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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그러니까 엄밀하게 얘기하면 물세례보다 성령세례가 앞섭니다. 우리가 물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회개해야 하는데, 회개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성령이 내게 강림하셔야 합니다. 내 의지로는 안 됩니다. 내 능력으로는 안 됩니다. 성령이 강제하셔야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고백할 수 있습니다. 내가 구원 받기 위해서는 내게 주님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결단하게 하는 이가 바로 성령입니다. 성령세례와 물세례는 불가분리의 관계이나, 엄밀히 말하면 성령세례가 물세례보다 앞섭니다. 그러므로 여건과 형편, 상황에 따라 물세례가 없을 수는 있어도 성령세례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 물세례는 못 받아도 천국 가는 데 지장은 없습니다. 예수를 믿고 천국 가는 사람 중에 성령세례를 못 받은 사람은 없습니다. 성령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물세례를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물세례가 하나의 의식으로 보이지만, 성령세례 때문에 서약하고 신앙고백을 하며,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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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여러분, 성령세례에 대한 확신을 가지셔야 합니다. 성령세례에 대한 오해와 혼란이 없어야 합니다. 이미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성령세례를 다 받았기에 성령세례를 달라고 기도할 필요는 없습니다. 여러분 안에 성령이 계십니다. 여러분은 걸어 다니는 성령의 전이요 집입니다. 여러분이 깨닫지 못해 성령과 소통하고 교감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이미 성령은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지금도 부단히 계시하고, 감동을 주시며, 깨닫게 하시고, 회개하게 하십니다. 우리가 때가 많이 묻어 우리 영성으로 느끼지 못할 뿐입니다. 성령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영성이 둔감해서, 투명하지 못해서 그것을 감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감동을 묵살하기도 하고, 때론 고의적으로 성령의 감동을 짓누릅니다.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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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br></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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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성령 충만이라는 말은 성령세례라는 말과는 다른 뜻입니다. 성령세례는 성령내주라는 말과 같습니다. 성령 충만은 이런 뜻입니다. 에베소서 5장 18절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성령세례는 내게 성령이 강림하는 사건이고, 성령 충만은 성령이 내 안에 꽉 차는 상태를 뜻합니까? 아닙니다. 성령은 물량적인 분이 아닙니다. 성령은 인격체이십니다.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성령 충만은 내게 강림하신 성령을 양적으로 이르는 말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성령께 내가 복종하는 정도를 뜻합니다. 성령의 계시에 내가 반응을 보이고 순종하는 정도를 이르는 말입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께 내가 얼마나 복종하고 순종하느냐의 정도가 바로 성령 충만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성령은 한 분 하나님이시지 양적인 분이 아니십니다. 성령 충만은 내 안에 계신 성령께 내가 충실히 응답하며 사는 삶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성령 충만하지 못한 삶은 내 안에 계신 성령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것이고, 성령 소멸로 이어집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감동을 묵살하면 안 됩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을 근심하게 하고 훼방하며 소멸하게 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과 보다 긴밀하게 교통하고 소통하십시오. 성령의 계시와 역사에 전적으로 순종하고 복종하십시오. 성령의 감동에 민감하게 반응을 보이십시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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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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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 설교 보기: <a href="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AHqg1KVsSDY$">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AHqg1KVsSDY$</a></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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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v><br></div></sp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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