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103m 원숭이 같이 지혜롭게(마 10:16-17, 2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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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3m
마 10:16-17, 26-31
원숭이 같이 지혜롭게
[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17] 사람들을 삼가라 그들이 너희를 공회에 넘겨 주겠고 그들의 회당에서 채찍질하리라
[26]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31]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육십갑자에 의하면 올해가 병신년입니다. 병자는 붉은색이고, 신자는 원숭이이니 붉은 원숭이입니다. 병신년은 어감은 좋지 않지만, 알고 보면 길한 해입니다. 병신육갑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심한 욕입니다. 우리가 빈정거리는 말로 써왔기에 그렇지, 그 말 자체는 전혀 욕이 아닙니다. 병신은 병신년이고, 육갑은 육십갑자의 준말입니다. 병신육갑은 육십갑자 중에서도 33번째 해인 병신년이 가장 돋보인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누가 좀 설치거나 잘난 체 하면 병신육갑 한다고 한 겁니다. 잘 나지도 못한 게 병신육갑 행세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왜 육십갑자에서 원숭이 띠인 병신년을 으뜸으로 칠까요? 원숭이는 무엇보다 지혜를 상징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대부분의 진화론자들은 원숭이가 진화해서 사람이 되었다고 믿습니다. 그리고 사람과 원숭이를 영장류라 해서 같이 봅니다. 실제 사람과 원숭이는 유전인자 구조라든가 체내 대사구조, 해부학적 특징이 95%나 같다고 합니다. 그래서 원숭이 해인 병신년을 육십갑자 중에서 으뜸으로 본 겁니다.
오늘 본문에는 주님이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로우라고 했습니다. 왜 원숭이가 아니고 뱀일까요? 제 생각에는 이 말씀을 하신 해가 마침 계사년이어서 그런 말씀을 하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올해처럼 병신년이었으면 원숭이처럼 지혜로우라고 했을 겁니다. 물론 성서적으로는 뱀이 지혜의 상징이 맞습니다. 가장 지혜롭다는 사람을 뱀이 미혹해서 타락하게 했습니다. 사람을 이겨 먹은 게 뱀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너희는 뱀처럼 지혜로우라고 한 겁니다. 오늘은 원숭이 해의 첫 주일인 만큼 뱀을 원숭이로 치환해서 원숭이 같이 지혜로우라고 하신 말씀으로 보고 상고해 보겠습니다.
본문은 주님이 제자를 세상으로 내보내시며 경계하고 당부하신 말씀입니다. 16절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이게 당시 세상을 바라보신 주님의 시각입니다. 주님은 결코 세상을 맹목적으로 바라보시지 않습니다. 세상을 과대평가하지 않으셨습니다. 냉정하게 보셨습니다. 세상을 그야말로 이리가 득실대는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정글로 보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올해 또 이런 세상에 나가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 주님이 지금도 얼마나 염려하시겠습니까? 그래서 뱀 같이 지혜로우라. 올해가 원숭이 해이니까 원숭이 같이 지혜로우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새해에도 이리들이 설치는 세상에 나가 살며, 보다 안전하고 평안하고 복 되게 살기를 바라신다면, 주님이 당부하신 대로 뱀 같이, 원숭이 같이 지혜롭게 사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뱀 같이, 원숭이 같이 지혜롭게 산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먼저 비둘기 같이 순결하게 사는 것입니다. 16절을 다시 봅니다.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비록 이리가 득실대는 세상에 살지만, 비둘기 같은 신자들의 정체성을 잃지 말고 살라는 것입니다. 믿음의 순결을 지키고, 영혼의 정절을 지키며 악한 세상과는 구별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비둘기가 순결을 상징합니다. 주님이 요단강에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이 주님 머리 위로 강림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비둘기가 비둘기가 아닙니다. 비둘기는 힘차게 하늘을 날며 순결하게 살아야 하지만, 요즘은 땅에서만 삽니다. 다 닭처럼 살이 쪘습니다. 그래서 잘 못 납니다. 요즘 비둘기를 보십시오. 얼마나 지저분한지 모릅니다. 우리도 세상에 나가 오직 땅의 것만 연연하면 비둘기가 아니라 닭둘기가 됩니다. 그런데 그것은 결코 바람직한 삶이 아닙니다. 비록 죄 많은 세상에 나가 살지라도 비둘기의 고유한 정체성을 지키며 사는 게 주님이 바라시는 지혜로운 삶입니다. 세상에 발을 디디고 살지만, 세상과 타협하거나 동화되거나 짝이 되어 살지 않고, 세상과는 구별되는 삶을 살아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동일성을 지키며 사는 것이 혼미한 시대를 지혜롭게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 원숭이 해에 원숭이처럼 지혜롭게 사시되, 무엇보다 비둘기 같은 지혜로움을 삶을 사십시오.
다음은 사람을 조심하며 사는 것입니다. 17절입니다. “사람들을 삼가라.” 여러분은 이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이 대목을 볼 때마다 당황스럽습니다. 주님이 세상을 이리들이 득실대는 곳으로 규정하셨는데, 어떻게 주님이 ‘사람을 조심하라’고 할 수 있습니까? 이것은 무서운 주님의 현실주의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이상주의자라고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주님은 극단적인 이상주의자였습니다. 주님은 공생애 일성이 하나님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주님은 냉혹한 현실주의입니다. 어떻게 주님 입에서 사람을 경계하라는 말이 나올 수 있을까요? 사람과 무조건 함께 하라, 무조건 믿으라고 해야 맞는 것 아닙니까? 주님은 절대 맹목적인 이상주의자가 아니라, 오히려 냉정한 현실주의자였습니다. 세상에는 이리의 탈을 쓴 사람이 많으니 일단은 의심부터 하고 조심하라는 겁니다. 이게 바로 이 세상을 뱀 같이, 원숭이 같이 지혜롭게 사는 법입니다. 올해는 특히 사람을 조심하십시오. 믿을 사람이 없습니다. 함부로 사람을 믿으시면 안 됩니다. 왜 우리가 사람을 경계합니까? 처음부터 이리의 탈이 아니라 양의 탈을 쓰고 나오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 우리 앞에 나올 때는 발톱을 숨기고 빛의 천사를 가장하며 나옵니다. 목사도 조심하셔야 합니다. 목사도 사람입니다. 저도 감시하셔야지 경계를 소홀히 하시면 안 됩니다. 일단 의심하십시오. 특히 빛의 천사를 자처하는 사람일수록 사기꾼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거룩한 척하는 사람들을 특별히 경계하십시오. 그래서 뱀처럼, 원숭이처럼 지혜롭고 신중하게 인관관계를 맺으십시오. 사람에게 덜 당하고 덜 상처 입는 새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다음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26절 상반절입니다.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경계는 하되 두려워는 말라고 합니다. 어떻게 교활하고 잔인한 이리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28절입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세상은 무섭습니다만, 세상보다 더 무서운 분이 계십니다. 세상은 나의 영혼까지는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만, 하나님은 절대적인 두려움의 대상입니다. 정말 두려워할 대상인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세상이 주는 상대적인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28절 말씀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우리가 아직도 세상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불신앙의 소치입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은 성령이 아니라 사탄이 주는 마음입니다. 우리를 좌절하게 하고 멸망시키기 위해 사탄이 불어넣는 마음이 두려움입니다. 가장 강한 분은 하나님입니다. 부디 새해에는 용감하고 담대하고 씩씩하게 사십시오.
마지막으로 29절 이하입니다. “[29]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30]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31]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우리가 절대 두려워해서는 안 될 이유는 미물의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절대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참새보다 귀한 너희야말로 하나님이 얼마나 잘 보호하시겠느냐는 말씀입니다. 얼마나 지당하고 명쾌하고 복된 말씀입니까? 얼마나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말씀입니까? 늘 말씀드리듯 참새는 하나님께 그저 피조물일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에게 단순한 피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은 창조주일 뿐 아니라 아버지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각별한 관계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더 참새보다 완전하고 완벽하게 보호하시겠습니까? 참새보다 얼마나 더 깊은 애정으로 돌보시겠습니까? 그러니 왜 실망하고 좌절하며 주저앉느냐는 것입니다. 주님은 날아가는 새를 보라, 저들의 백합화를 보라. 얼마나 건강하고 아름다우냐. 하나님이 백합화보다 새보다 귀한 너희를 그냥 방치하시겠느냐는 것입니다.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다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새해에도 희망을 가지라는 겁니다.
부디 병신년 새해 첫 주일 아침, 뱀처럼, 원숭이처럼 지혜롭게 살라고 당부하신 주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커다란 깨달음과 복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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