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1206m 기다림의 계절(사 6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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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06m
사 61:1-3
기다림의 계절
[1]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이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대강절이 무슨 뜻입니까? 영어로는 어드벤트(Advent)라고 하는데, 이 말은 오심이라는 뜻의 라틴말 아드벤투스(Adventus)에서 왔습니다. 매주 촛불을 하나씩 밝혀가며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절기라는 뜻입니다.
왜 우리가 기다려야 합니까? 주님은 반드시 기다리는 자에게 오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가운데 우연히 성탄하실 주님을 뵐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대강절이 필요합니다. 2000년 첫 성탄 때 가장 큰 감격으로 아기 예수를 자신의 품에 안은 사람은 시므온과 안나입니다. 시므온은 주님을 뵙기 전에는 절대 죽지도 않겠다고 하며 주님을 기다렸습니다. 무서운 집념으로 죽음마저도 유보하며 버틴 사람입니다. 안나는 무려 84년간이나 예루살렘 성전에서 주야로 금식하며 주의 오심을 기다렸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아기 예수를 안고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했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은 수많은 사람들로 붐볐지만, 성탄하신 주님을 품에 안은 사람은 딱 두 사람뿐이었습니다. 왜냐면 그 두 사람만 주님의 성탄을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5장에 나오는 38년 된 환자도 마찬가집니다. 당시 베데스다 연못가에는 수많은 환자가 있었지만, 주님은 오직 그 한 사람을 지목해서 찾아가셨습니다. 그 이유는 그 사람이 거기에서 가장 딱한 환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는 자기의 가족, 친구마저도 떠난 그 자리에서 주님을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자기 의지로 그 환자를 찾아 가셨다기보다는 그 환자가 주님을 호출한 겁니다. 주님은 올해 당신을 기다리는 사람을 찾아 오십니다.
결코 아무에게나 오시지 않고 반드시 기다리고 준비된 자에게 오셔서 베푸실 주님의 성탄의 은혜를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1절입니다.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주님이 성탄해서 가장 먼저 하시는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왜 주님이 가장 먼저 이 일을 하실까요? 예나지금이나 상처 받은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지금으로부터 약 2700년 전의 말씀인데, 그때도 그만큼 마음에 상처를 입고 사는 사람이 많았다는 뜻입니다. 이사야 1장 5절 이하입니다. “[5]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패역을 거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6]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거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부드럽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이사야 시대 수많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이렇게 만신창이었음에도 어디서도 싸매거나 고침을 받지 못했다는 겁니다. 이것이 어찌 지금으로부터 2700년 전의 이사야 시대만이겠습니까? 이것은 오늘 우리의 적나라한 실상입니다. 마음에 상처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올해만 해도 우리는 수많은 아픔과 상처를 마음에 입었습니다. 겉만 멀쩡하지 속은 다 시커멓게 탔습니다. 마음의 상처가 다 그대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가족 때문에, 교우 때문에 상처 입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오시면 그런 마음의 상처부터 고쳐주신다고 합니다. 이사야 42장 3절입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갈대는 잡초입니다. 성가신 풀입니다. 하찮은 풀인데 그게 상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그것마저도 꺾지 않으신다고 하십니다. 사람이나 짐승은 약자나 상한 자를 절대 용납하지 않습니다.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법칙입니다. 주님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하찮은 풀 한 포기, 성가신 잡초인 갈대도 싸매고 고쳐주십니다. 여러분의 상처 받은 마음을 치료받고 싶으십니까? 올해도 주님이 오셔서 여러분을 어루만지고 싸매기만 하면 반드시 치유됩니다. 올해도 주님의 성탄과 함께 따뜻한 가슴으로 새로워지기를 빕니다.
다음은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주십니다(1절 하반절). 실제 이사야가 이 말씀을 선포할 때는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앗수르에 포로로 잡혀가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690년이 지나 주님이 성탄할 즈음에는 이스라엘이 로마의 식민지가 되어 온갖 수탈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이사야의 이 말씀이 얼마나 희망과 격려가 되었겠습니까?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자유인임에도 포로가 아닌가, 그 어떤 것의 종이 아닌가 라는 물음에 아니라고 쉽게 답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우리 가운데 몇이나 돈이나 탐욕, 명예로부터, 두려움으로부터, 악습으로부터 자유하며 살아갈까요? 지금도 병마에 포로가 되어 고통 가운데 계신 분도 있습니다. 이것은 다 우리의 모순입니다. 우리는 소속이나 신분이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런데도 현실은 여전히 마귀가 부리는 대로 죄 지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도 여전히 세상의 종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아픔이고, 날마다 겪는 우리의 혼란이고 분열입니다. 내 의지나 내 노력, 내 힘으로는 어느 것 하나로부터도 자유하지 못합니다. 올해도 새로이 성탄하실 주님을 꼭 만나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요한복음 8장 36절입니다.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 성탄하실 주님을 뵙고, 그 주님이 우리에게 자유를 주시면 우리는 더는 마귀의 종으로 살지 않아도 됩니다. 주님은 모든 것을 단 번에 해결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자유하게 하시면 우리는 누구나 자유인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은 슬픈 자를 위로하십니다. 2절 하반절 이하입니다.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슬픔 대신에 기쁨을 주시고, 근심 대신에 우리로 하여금 찬송을 부르게 하십니다. 우리는 기쁘게 살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근심 없이, 슬픔 없이, 아픔 없이 사는 사람은 없는 것 같습니다. 살다 더러 슬픔을 만날 때가 있지만, 위로를 받으면 그나마 견딜만 하고 살만 합니다. 그런데 갈수록 이게 더욱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자살하는 사람도 그 마지막 순간에 누군가 그를 위로해 주고 이해해 주면 그 최악의 고비를 이길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군대라는 곳이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주위에서 위로해 주는 이 없을 때가 가장 힘들다고 합니다. 누가 우리를 위로해 주겠습니까? 남편, 아내, 가족, 교우들입니까? 그들이 정말 위로가 되었습니까? 오히려 그 사람들이 나를 외롭고 슬프게 만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주님이 오시면 슬픔을 기쁨으로, 근심을 찬송으로 변화시켜 주신다고 합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성탄하실 주님을 만나면 누구나 슬픔이 기쁨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올해도 대강절이 여러분에게 복 된 절기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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