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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122m 네가 어디 있느냐?(창 3:8-10)

20151122m

창 3:8-10

네가 어디 있느냐?


[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10] 이르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향해 부단히 묻고 계신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이 질문 앞에 서야 하고, 진지하게 답해야 합니다. 아담으로부터 우리에게 계속되고 있는 하나님의 원초적인 질문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는 <아담아 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입니다. 9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아담이란 히브리말로 사람이란 뜻이니까,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란 말은 인생아 네가 어디 있느냐란 말과 같습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물론 이것은 아담의 현주소를 묻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공간적 위치를 묻는 게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묻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언제 아담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셨습니까? 범죄한 직후입니다. 우리는 8절부터 봤습니다만, 3장 6절 이하를 보십시오. “[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7]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8] 그들이 그 날 바람이 불 때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아담과 그의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9]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 절대 따먹지 말라고 당부한 선악과를 따먹고 나서 하나님의 낯이 두려워 동산 나무에 숨었을 때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시며 아담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확인하신 겁니다. 범죄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집니다. 아담을 보십시오. 선악과를 범하기 전까지만 해도 아담은 하나님이 두렵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낯을 피해 달아나거나 숨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게 본래 하나님과의 정상적인 관계입니다. 하나님이 두려우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피해 숨으면 안 됩니다. 범죄하기 전에는 아담도 그렇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았습니다. 그런데 범죄하자 그 건강하고 아름다운 하나님과의 관계가 망가졌습니다. 금단의 열매를 따먹는 순간 하나님이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아담은 나무 사이에 숨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두려운 존재가 된 겁니다. 달아나고 있는 아담을 하나님이 추적하시며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담을 추궁하려는 게 아니라, 본래의 관계로 돌아오라고 촉구하시는 말씀입니다. 인생은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고 건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이후는 다 망가지고 맙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 성경이 말씀하는 죽음이란 어떤 것입니까? 성경은 물리적인 호흡이 멎은 것을 죽음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생물학적 죽음을 잠잔다고 합니다. 나사로가 죽었을 때 주님은 <내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고 하셨습니다. 분명 죽은 지 나흘이 지났음에도 잠잔다고 하셨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 때도 <너희가 어찌하여 슬퍼하며 우느냐 이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잠잔다>고 했습니다. 조문을 왔던 사람들이 다 비웃었다고 했습니다. 그때 주님이 <달리다굼>하시며 마치 잠에서 깨우듯이 소녀를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이렇게 성경은 호흡이 멎은 상태를 죽었다고 하지 않습니다. 부활을 전제로 하기에 잠잔다고 한 것입니다. 성경이 말씀하는 진정한 죽음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선악과를 금하실 때 경고하신 말씀은 <따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창세기 2장 16-17절입니다.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이런 경고에도 불구하고 아담은 선악과를 따먹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자리에서 요절했습니까? 임금이 사약을 내리면 그걸 마시는 즉시 피를 토하고 죽습니다. 아담도 하와도 하나님이 금하신 금단의 열매를 따먹고 피토하고 죽은 게 아니라 무려 930세까지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선악과를 범하면 반드시 죽는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그저 겁주기 용이었습니까? 실제 아담은 선악과를 따먹는 순간 죽었습니다. 성경은 인간의 진정한 죽음을 생물학적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상태로 봅니다. 요한계시록 3장을 보면 주님이 사데 교회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자로다> 아담이 바로 그랬습니다. 살았지만 실상은 죽은 사람이었습니다. 여전히 호흡은 하지만 실상은 더는 산 자가 아니라 죽은 자였습니다. 왜냐면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담을 보십시오. 범죄하자 즉각 하나님이 무서워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과의 관계가 망가졌다는 뜻입니다. 그 말은 아담이 살았다는 이름은 가졌으나 영적으로는 죽은 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망가지면 참 생명의 줄이 끊긴 상태이기에 죽은 자나 진배없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탄탄한 사람은 죽어도 죽은 게 아닙니다. 자는 겁니다. 언젠가는 다시 깨어납니다.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계십니까? 지금도 바르고 온전한 관계를 잘 유지하십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낯을 피해 끊임없이 달아나는 가운데 올해도 여기까지 오셨습니까? 하나님이 두려우십니까? 지금도 하나님을 피해 숨고 싶으십니까? 오늘 진지하게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달아나고 싶다면, 오늘 <네가 어디 있느냐?>는 하나님의 육성을 들으시고 빨리 하나님과의 관계를 정상화하십시오. 이것이 우리의 살 길입니다. 


둘째는 창세기 4장 9절의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이것은 가인이 동생 아벨을 돌로 쳐죽인 직후에 하나님이 가인에게 하신 질문입니다. 이 물음 역시도 아벨의 소재를 물으신 게 아니라 그 둘의 관계를 물으신 겁니다. 형제와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의 현주소를 물으신 겁니다. 


가인은 그 질문에 모른다고 답합니다.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입니까? 하며 대드는 수준으로 답했습니다. 제가 아벨과 무슨 관계가 있습니까? 라고 답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도 건강하고 아름답게 관리해야 하지만, 이웃과의 관계, 형제와의 관계도 잘 가져가야 합니다. 가인처럼 시기와 질투와 분노로 반목하다 결국 돌로 쳐죽이고는 도리어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라고 하며 발뺌을 하면 그 인생은 절대 복 되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보십시오. 십자가는 종과 횡이 교차합니다. 종적인 하나님과의 관계도 건강해야 하고, 횡적인 이웃과의 관계도 건강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가 교차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4장 11-13절을 보십시오. “[11]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12]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13]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이웃과의 관계, 형제와의 관계가 망가지면 땅에서 이런 저주를 받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지금도 부단히 우리를 향해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시며 우리의 형제와 이웃 관계를 확인하고 계십니다. 여러분의 형제와 이웃과의 관계는 어떻습니까? 오늘 정직하게 나와 형제, 나와 이웃과의 관계를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은 아우만이 아니라, 나의 모든 인간관계를 묻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네 부모, 네 자식, 네 남편, 네 아내가 어디에 있느냐는 물음입니다. 이 물음에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내가 그들을 지키는 자입니까 하고 답하시겠습니까? 가인처럼 대답한다고 나의 모든 책임이 면제됩니까? 가인이 아무리 시침을 떼도 하나님은 ‘네 아우의 피소리가 땅에서부터 호소한다’고 하십니다. 가인에게는 아우인 아벨을 돌보고 사랑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형제와 자식, 남편과 아내, 이웃을 돌볼 책임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눈 치켜뜨고 되레 하나님께 반문하는 것은 다 악한 짓입니다. 주님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하나님과의 관계와 이웃과의 관계가 모든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 신구약 성경의 핵심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는 또 한 가지 치명적인 게 있습니다. 북녘의 동포들입니다. 우리는 분단문제, 남북의 화해문제를 풀지 않으면 절대 복 받는 민족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네 형제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묻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저 북녘 사람들은 우리의 주적이라고 한결같이 대답해 왔습니다. 그들과의 형제됨을 애써 부인해왔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원수로 대적하던 북녘 형제와 화해하지 않으면 우리는 절대 복 받지 못합니다. 다시 한 번 오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는 주님의 음성을 들읍시다. 그래서 모든 관계를 점검하고 회개하고 결단하는 복 된 성도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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